4화. "엄마, 그게 바로 엄마가 돌보아야 할 마음이에요"
이전 화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
'아이를 통해 새로운 나를 알게 되며 성장해 간다.' 좋은 얘기다. 문제는 보기 싫은 내가 자꾸 드러날 때이다. 자꾸만 짜증 내는 나. 의도치 않게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나. 불안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나. 그런 나를 아는 것만으로 성장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모습을 그저 '발견'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아이라는 타인을 통해 나를 비춰보며 몰랐던 나를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게 1단계였다면, 성장의 2단계는 새롭게 알게 된 부족한 점을 다듬고, 불안정한 내면을 돌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듬고 채우고 조절하는 작업이다. 물론 1단계(발견)만으로 충분히 변화하는 것들도 있다. '아 나에게 이런 문제가 반복되고 있었구나.' 하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거울을 보고 확인한 얼굴의 과자부스러기 정도라면 평소에 살피는 것으로 충분하겠지만, 어떤 내면의 문제들은 노력을 통해 다듬고 채워가야 한다.
이전 화에서 등장했던 자주 욱하고 짜증 내게 된다는 엄마 P의 경우를 보자. 대화를 해보니 P와 그의 남편은 둘 다 불안이 높은 편이었다. 상당히 안정지향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왔고 대입, 취업과 같은 중요한 단계마다 가장 안정적인 선택을 하며 크게 불안을 마주할 일이 없었다. 당연하다. 불안을 피하는 길만 걸어왔으니까. 이름 있는 대학, 공무원, 적절한 시기의 결혼과 출산까지. 무엇보다 부모의 기대에 최대한 부응하며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다.
인간관계도 넓지 않았다. 될 수 있는 한 모험을 피해왔고 다행히 큰 위기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바로 모험 아니겠는가? 아이가 커갈수록 통제는 어렵고 2~3살 시기는 안전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때이니 쉽지 않은 게 당연했다.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고, 멋대로 행동할 때마다 불안이 건드려졌을 것이다. 이미 녹초가 된 컨디션에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욱하는 일이 생겼다. 감정이 크게 동요될 일이 없었던 출산 이전과 달리 계속해서 내면에 파도가 들이닥치니 육아가 꽤나 힘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안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 아이를 더 엄격하게 통제하느라 소리치는 일도 잦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P 씨와 그의 남편은 그런 반복적인 감정적인 동요를 통해 자신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아 불안감이 내 안의 꽤 큰 부분이었구나. 이 두려움을 늘 보지 않으려고 애써왔구나.' 이렇게 이해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 때문에 화가 난다!'가 아니라, 아이를 마주하며 '내 안에 존재하는 불안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만약 이 두려움을 돌보지 않는다면, 즉 이전과 다름없이 늘 피하는 쪽만 선택하려 한다면, 아마 더 큰 위기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아이는 점점 더 커 나갈 것이고, 아이의 세계가 커지는 만큼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도 어쩔 수 없이 생겨날 테니까. 만약 이전과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면 자꾸만 아이를 다그치고 통제만 하게 되지 않을까. 그건 아이를 아이답지 못하게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그 시간들이 쌓이면 엄마의 성장은 둘째치고 아이가 클수록 관계는 어긋나고 멀어질 수밖에.
우리는 보기 싫어하는 내면의 어떤 부분을 타인을 통해 보게 될 때가 많다. 심리학에는 이를 '투사'라고 표현한다. 만약 몹시 외향적인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나대는 거야' 하는 마음이 강하게 올라온다면 실은 내 안에도 사람들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 또 누군가를 보며 '저 사람은 욕심이 너무 많아. 돈독이 올랐어 아주' 하며 과하게 비난한다면 내 안에 있는 욕심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일 수 있다.
참고로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타인이 가진 장점을 부러워하고 동경할 때 그 또한 내 안에 있는 것일 수 있다. '쟨 정말 밝고 사회성도 좋다 부러워.'라고 할 때 어쩌면 내 안에 있는 밝음을 보지 못한 것일 수 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나의 장점 혹은 매력을 타인을 통해 보는 경우도 꽤나 흔한 일이다. (내 아이를 보며 종종 '얘는 어쩜 이렇게 잘 웃고, 마냥 밝은 거지?' 하며 놀라곤 하는데 이 또한 내가 가진 면을 아이에게서 발견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내게도 존재할 것이다. 몹시 밝음!!!!)
그렇게 내 안에 있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외부의 것으로 돌릴 때. 혹은 외부에서 발견할 때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이 '두려움'이다. 걸음마도 언어발화도 느렸다는 아이 때문에 늘 걱정이 많았다는 엄마 J. (쓰고 보니 요즘 쉽게 볼 수 있는 부모의 모습 같기도 하다. 우리는 아이가 느린 것에 유독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대인불안 때문에 상담을 시작한 것이지만 정작 상담시간에는 아이를 보며 갖게 되는 불안감을 많이 다루게 되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미 돌 전부터 '뒤집기가 늦어서, 배밀이가 늦어서, 손을 떼고 걷지 않아서' 늘 걱정이었단다. 아이가 일곱 살인 지금은 또래들은 한글을 다 익혔는데 아직 글자에 관심이 없는 아이가 너무 답답하다고. 그래서 자꾸 재촉하게 되는 자신을 보게 된단다. 글자를 가르칠 때마다 화가 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마음처럼 따라와 주지 않는 아이를 보며 '쟤는 왜 저렇게 느린 거야' 불만스러웠고, 불만스러워하는 자신을 또 불만스러워했다. 처음엔 단순히 내가 성격이 많이 급한가. 하다가 감정적으로 너무 소진이 되면서 '이렇게까지 답답해하고 아이를 몰아붙일 일인가' 싶어 고민이 되어 상담에서도 털어놓게 된 것이다.
그 주제를 깊이 다루면서 알게 된 건 그 답답함이 '남들보다 뒤처져 보이는 자신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J는 어렸을 때부터 늘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두려웠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뿌리에는 엄마가 있었다. 칭찬에 인색했던 어머니는 J에게 은근하게 비교를 많이 했다고 한다. 주로 같은 층에 사는 또래 친구 진경이(가명) 또는 친언니가 비교대상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두려웠다. 언니만큼 똑똑하지 못한 사람일까 봐. 진경이보다 뒤처질까 봐. 그래서 내가 못난 존재인 게 확실해질까 봐. 그런 엄마의 비교와 평가는 어느새 J에게 내면화되어 매 순간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이 괜찮은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습관으로 남아버렸다. 이제는 화살이 아이에게 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J가 돌보아야 할 것은 뒤처질 것 같은 불안, 남들과 비교를 하면서 평가하는 습관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느리다며 재촉하고 채찍질할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면에서는 남들보다 느리거나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뒤쳐진 게 아니라는 믿음을 채워가야 할 것이었다. 아이를 통해 내면의 두려움을 발견할 때마다 그 두려움이 시키는 대로 아이를 다그치고 스스로를 비난할 게 아니라,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돌봐야 할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아이를 통해 엄마가 성장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부모는 아이를 통해 욕구를 채우기 쉬운 존재다. 아이는 어리고 전적으로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 아이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 싶어 하는 부모가 만나면? 한국의 과한 교육열은 어쩌면 그러한 부모의 욕망이 낳은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돈이나 학벌 때문에 서러웠던 경험이 결핍을 만들고, 잘못된 신념을 만들고('돈을 많이 벌어야만 가치 있는 인간이야. 학벌이 좋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 그것이 불안을 키웠을 것이다. (물론 모두가 같은 경로를 따르지는 않는다. 같은 경험으로도 건강한 사고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불안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쓸 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아이의 부족한 점만 다그치거나 잘난 점만 추켜세우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어려운 경제사정과 집안분위기 때문에 충분히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는 스토리는 정말 익숙한 K-스토리가 아니던가. 그것 자체가 결코 잘못된 모습은 아니지만 아이의 욕구나 기질을 존중하지 못한 채로 몰아붙이는 것이 문제를 만든다. 그렇기에 부모 자신의 불안을 돌보지 못하고 아이를 그 불안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 안의 어떤 결핍이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키우다 보면 결핍이나 상처가 또다시 아이를 상처 주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아이에게 강렬하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의 어떤 부분에 특히 욕심을 내고 어떨 때 주로 조바심이 나는가? 이렇게 어떤 상황에서 내 불안이 과하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것. 충분히 점검하고 살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우리는 언제나 어렵지 않게 아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살필 수가 있다.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시기이고 아이에게 부모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니까. (사춘기가 되면 아이의 중요한 타인은 또래친구, 이성친구로 옮겨간다.) 아이는 계속해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것이 곧 아이라는 타인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엄마의 마음 돌봄은 소중한 기회이다.
어릴 땐 부모는 마냥 커 보이고 자녀가 있는 어른들은 충분히 성숙해진 줄로 알았다. 그러나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는 항상 무언가를 알려준다.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내 안의 것들을.
어떤 날은 자꾸만 예민해지고 짜증이 올라오는 나를 보며 아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엄마, 그게 바로 엄마가 돌 보아야 할 마음이에요."라고.
아이는 나를 비춰주는 것으로 제 몫을 다 한 것이다. 그것을 채우고 다듬고 회복해 나가야 하는 것은 엄마들의 몫이다. 기꺼이 만나고 살피고 돌본다면 내 안의 불안이 혹은 결핍이 아이를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돌볼 수 있을 때 내가 자라나는 것은 물론이고 점차 커나가는 아이와의 관계도 건강하게 유지되지 않을까. 늘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선물처럼 서로를 비추고 나아지게 하는 존재로 성장해 나가겠지. 그것이 바로 아이를 통해 자신을 돌보고 완성해 가는 엄마들의 모습일 거라 믿으며.
4화 끝
이전 화는 아래 링크 참고해 주세요
https://brunch.co.kr/@kundera/289
[아이라는 타인을 마주한 여자들에게] 연재는 총20화 연재 예정입니다. 이제 5분의 1정도 왔는데 쉽지 않군요?! 그래도 부지런히 써나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소중한 유튜브 채널도 있는데요. 1년 넘게 쉬어가다가 업로드를 다시 시작하였답니다. 글도 말도 서툴지만 꾸준히 하면 나아지겠지요. 부지런히 하면서 점점 성장하고 다듬어지는 재미 좀 느껴보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글도 유튜브도 피드백 주시면 감사히 받아 먹겠습니다. 꾸벅)
* 브런치는 매주 수요일, 유튜브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유튜브 채널 <마음 돌보는 심리수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