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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Sep 06. 2023

아이 때문에 더 불행한 삶이라고?

5화. 연약한 엄마에게 필요한 '심리적 산소'

'너 아니었으면 진작에 이혼했지'


지연(가명)이가 엄마에게 들은 말 중 가장 상처가 되었던 말이다. 엄마는 아빠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종종 토로해 왔다. 속상한 마음에 '그렇게 싫으면 이혼하지 왜 참고 살았어?' 하니, 그때 돌아온 엄마의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 때문에 이혼을 못했다니. 나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았다니? 


'나 때문에!' 엄마 인생이 불행했다고 결론짓는듯한 그 한마디는 곱씹을수록 상처가 되었다. 죄책감은 상처보다 더 컸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며 엄마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프다.


나쁜 의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 키우느라 그 좋은 직장을 그만뒀다.' 라거나 '너랑 네 동생 낳고 내 건강이 다 망가졌어.' , '너 생기고 나서 포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와 같은 어머니들의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자녀의 여린 마음을 한방에 부술 만큼. 그 진심을 이해해 보기도 전에 이미 가슴에 날카롭게 박혀버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불행하게 한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생각. 죄책감과 동시에 내 존재가 불편해진다. 나는 누군가에게 괴로움을 주는 존재구나. 태어난 것부터 잘못이구나.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나는 대체 왜 태어난 거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괴로움을 준 존재라는 사실은 너무 슬프다. 설령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불행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위의 아픈 말들은 제각기 다른 내용이지만 '내가 너를 키우려고 이만큼 희생했어. 나를 이만큼 포기했어.'라는 문장으로 묶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이해해 보고 싶다. 그 말의 가장 아래에는 이런 마음이 있지 않을까. '너를 잘 키우고 싶어서 나 이만큼 애썼어.' '나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더 아래에는 '나를 좀 알아줘', '나를 좋은 엄마라고 인정해 줘'...


어머니들 또한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로 서툰 말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야 마는 작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건 이제 갓 엄마가 된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더욱 그런 마음을 갖기 쉽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는데 모두 몰라주는 것 같을 때. '나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하고 어떻게든 소리치고 싶지 않은가. 고생하고 희생한 것에 비해 현실이 그것에 못 미칠 때 의도치 않게 외부로 원인을 돌리는 것도 인간의 흔한 모습일 것이다.


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기르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꿈을 접기도 하고, 아이만 아니었으면 진작 갈라섰을 것 같은 남편과도 잘 지내려 애써본다. 그뿐인가. 잠을 포기하고 여행을 포기하고 날씬한 몸매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선순위에 밀린 많은 것들이 때로는 아주 아쉽고 때로는 시간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한 삶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죄책감은 덤이다.)  너무 힘들 땐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가, 작디작은 아이를 보며 이내 그 마음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아니, 내려놓고 할 새도 없이 밥을 차리고, 아이를 씻기고 장난감을 주워 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서툰 부모의 아픈 흔적을 지워내고 싶어서


그럼에도 내가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아이에게 똑같이 전해줄 수는 없다. 이 어려움들은 모두 내 몫일뿐 아이에게는 잘못도 책임도 없으니까. 아이를 키우며 갖게 되는 큰 과제 중의 하나는 바로 상처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것이 아니던가. 서툰 부모를 통해 갖게 된 아픈 흔적들을 내 선에서 잘 매듭짓고 싶을 것이다. 그러려면 나의 수고를 알아달라며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아이에게 떠넘기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아야겠다. 어린 날의 우리가 그러했듯 아이는 죄가 없으니. 


'아이 때문에 내 삶이 더 불행했다.'는 말(생각)에 대해 살펴보자. 이 말이 불편한 이유는 주체가 빠져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이가 주어졌고 그 때문에 내 삶이 피해를 입은듯한 뉘앙스이다. 아이를 낳고 기른 건 성인인 자신의 선택이었을 텐데 그 주체가 쏙 빠져있는 것 같다. 주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모두 엄마이기 이전에 '나'여야 한다. 엄마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나로서 서있지 않을 때, 내가 너무 작아져 있을 때 외부를 탓하는 경향이 커진다. 하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다하며 살아온 삶이라면 타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설령 지금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말이다. 성인이 된 후 내 삶에서 일어난 수많은 선택들과 그 선택들이 모여 만든 지금의 모습이 모두 내 몫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나를 지키는 것, 나를 단단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행기 탑승 안전가이드에서는 응급상황이 되면 보호자가 먼저 산소호흡기를 쓰라고 한다. 아이를 먼저 씌우다가 엄마가 위험해지면 아이를 돌볼 존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면 아이 또한 지킬 수 없다. 건강하고 또렷한 나 없이 건강한 엄마가 되어줄 수 없다는 얘기다. 


육아가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아이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다.' 또는 '불행하다.'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능동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엄마로서의 삶은 내 삶의 일부일뿐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엄마'라는 자아 또한 내가 선택한 역할 중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나의 선택을 통해 마주하게 된 현실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삶을 불행하다고 단순화하는 일도, 그게 아이 때문이라고 화살을 돌리는 실수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기꺼이 선택했고, 나에게는 이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것들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 심리적 산소를 통해 자기(self)를 단단하게


그런데 이 게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연이처럼 엄마의 말에 상처를 받은 자녀들이 이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에게 상처 주는 아픈 엄마들의 내면은 무척 연약하다. 다른 말로는 자기(self)가 안정되게 발달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라는 존재가 나로서 이 삶에 뿌리를 단단하게 내려야 출산 이후의 대변혁의 시기에 무너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엄마'라는 역할에 매몰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와 자신을 발달시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self)가 건강하게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정신분석가 하인츠코헛은 자기 심리학에서 자기 구조의 발달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셀프가 건강하게 발달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에 공감적으로 지지해 주고, 인정해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존재를 자기 대상(self-object)이라고 한다. 우리가 아이에게 공감적으로 반응해 주고 아이의 행동과 감정을 지지해 줄 때 아이는 건강하게 자기 자신을 발달시켜 간다. 그때에 자기(self)를 건강하게 발달하도록 돕는 주변의 공감적 인정과 지지는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심리적 산소'가 된다. 


그렇다. 엄마가 된 우리(그리고 우리의 엄마들이)가  미처 다 성숙하지 못한 나 자신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심리적 산소' 즉, 누군가의 지지와 인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는 이가 많을 리 없다. 이제 와서 내 부모에게 자기 대상이 되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같이 육아를 해나가는 남편과 서로 주고받는 인정과 지지는 무척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육아 동료들의 존재도 그런 역할을 한다. 지금은 이웃 간에 정을 나누는 게 많이 없어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 이웃이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엄마들이 서로 아이를 봐주기도 하고 같이 아이를 보며 고충을 나누는 시간을 종종 목격했으니까. 아마도 그 시간들이 서로를 지켜주었으리라. 같이 힘들어하고 고민하고 그걸 나누면서 서로를 지지해 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은 온라인 맘카페가 긍정적으로 기능한다면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충을 토로하고, 위로하고 위로받는 커뮤니티. 같은 경험을 하는 동료로서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어느 정도는 도와주고 있는 듯하고,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심각할 정도로 내면이 약해져 있어 주변의 자원만으로 자기(self)를 구축하는 것이 어렵다면,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 (정신건강전문의 혹은 심리상담사) 그러나 만약 주변 환경을 통해 어느 정도 지지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들(자기 대상 self-objcet)을 통해서 내가 나 자신을 지지하고 돌보며 자기를 튼튼하게 세우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건강한 '나'위에 건강한 '엄마'를 세우자.


그리하여 나중에 아이에게 우리가 들었던 아픈 말 '너 때문에 이것도 포기했고 저것도 포기했고 이혼도 못했고 그래서 힘들었다.'을 전하기보다는 '사는 건 녹록지 않았지만 너 덕분에 내 인생에서 도망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고. 너 덕분에 용기 내서 살 수 있었다고. 덕분에 더 멋지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나아가 내 아이를 만난 건 내 삶의 큰 행운이라고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 마음은 성인이 된 아이에게 상처가 아닌 인생을 살아가는 척추가 되어줄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에게는 분명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오겠지.




5화 끝. 



엄마는 너 덕분에 삶에서 덜 중요한 것들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지.

와우. 무사히 5화를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요ㅠㅠ) 매주 연재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매일매일 실감하지만 구독자분들이 보내주시는 댓글과 하트 덕분에 힘내서 즐겁게 쓰는 요즘입니다. 또한 제 글에 제가 영향을 받아서 요즘 육아가 확실히 더 의미 있고 덜 무거워졌어요. 연재를 마무리할 때 즈음엔 육아의 (마음만) 고수가 되어있으려나요? ㅎㅎ 여하튼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모두들 편안하세요. 













오늘도 돌아온 유튜브 채널 홍보. 


이너피스를 위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아 봅니다. 김혜령작가의 유튜브 채널 -> 바로가기(클릭) 

명상지도자이신 마인드트립 이현정 대표님과, 명상유튜버이자 성우이신 마음숨 선생님과 함께 마음과 명상에 대한 공부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그중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은 내용을 마음숨 선생님께서 유튜브에도 조금씩 올려주고 계세요.  마음숨 채널 -> 바로가기(클릭)


구독과 좋아요를 부탁드리며 뇌물로 쿠키영상(?)을 올립니다. (마지막 5초가 킬링포인트!)

내가 탈 수 없다면 내가 밀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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