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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Sep 20. 2023

관대한 엄마가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

7화. 자기 비난은 겸손이 아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내면의 심판관 


어렸을 땐 너그럽고 관대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많은 부모님들이 그렇듯 내 부모님도 엄격하신 편이었고, 덕분에 그게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를 작아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딸아이를 키운다. 나는 과연 관대한 엄마가 되었을까? 사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이렇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 마냥 관대한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아간다. 하지만 이 것만은 확실하다. 아이에게 관대해지는 것보다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  때때로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날카롭고 가혹한 기준을 들이댄다. 어린 시절의 부모님보다 선생님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가 내 안에 있다. 심판관이 살고 있다.


오랜 시간 상담을 받으며 깨달았던 건 '자기 비난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 불안감의 큰 뿌리이기도 했다. 매 순간 나를 감시하고 혼내는 눈. 알아차릴수록 정말 지독하다 싶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시선이었다.


엄격한 자아는 시시때때로 언성을 높인다. '왜 이렇게 게을러!' '왜 이렇게 덜렁대'부터 '너 이따위로 살면 인생 망하는 거 한순간이야'같이 엄청난 위기감을 주는 말까지. 육아를 하면서 잔소리는 늘어났다. 육아와 살림이 힘에 부칠 때마다 '다른 엄마들 다 하는 건데 뭐가 힘들다고 엄살이야.'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을 때면 '너 요리솜씨가 형편없어서 그렇지'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다치거나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옷을 따뜻하게 입히지 않아서, 습도 조절을 잘 못해서, 아이 컨디션 조절을 잘 못해줘서 그런 거라고 나는 나를 나무랐다. 심지어 잠든 아이를 보면서도 '이렇게 천사 같은 아이한테 왜 버럭 한 거야' 하는 따가운 말이 들려온다. 하루종일 고생했을 나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내어주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이다. 


엄마가 되고 난 후부터는 어쩜 이렇게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은지 신기할 정도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혹은 아주 작은 실수 앞에서도 나는 나부터 비난한다. 덕분에 자책감은 매우 익숙한 감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꽤 오래전 (내가 임신도 하기 훨씬 전) 친한 언니 H가 임신했을 때 식사자리에서 했던 말을 기억한다. 슬픈 표정으로 만삭의 배를 쓰다듬으며 '난 가난한 엄마야'라고 했다. 아이에게 많은 걸 해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좀 놀랐다.(심지어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언니네 부부도 우리 부부처럼 양가 어른들께 큰 도움 받지 않고 살림을 차리고 또 부지런히 가꿔나가는 그저 평범한 가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언니는 크게 사치를 부린다거나 욕심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 언니도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과열된 사교육이나 십 대들의 명품에 대한 관심, 너도나도 쉽게 가는 듯 해보이는 해외여행까지.. 어지간한 경제력으로는 평범함에도 못 미칠 것 같긴 하다.  


경제력만의 얘기는 아니다.  워킹맘으로 지내는 게 벅차 10년 가까이 재직해 온 직장을 그만둘지 고민하던 동생 S는 나와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아직도 나밖에 모르는 것 같아 언니,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했나 봐.'라고 했다. 아이를 위한다면 퇴사가 맞는 것 같은데 일을 놓지 못하는 자신이 이기적인 것 같다는 것이다. 정말 그건 이기적인 걸까?  정작 가장 힘든 건 자신일 텐데 스스로에게 가장 낮은 점수를 주는 그 시선이 참 아팠다. 그러면서도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엄마로서 얼마나 부족한지 술술 늘어놓는다. 잘하고 있는 부분은 잘 떠오르지 않아도 못해주고, 서투른 부분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말한다. 보통의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도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나면 더 엄격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게 되는 듯하다. 장점이나 재능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평범함은 가난이 되어버리고 만다. 물론 그만큼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생명을 돌보는 일에 무조건 '나 잘났어' 나 최고야' '대충대충 해버려!'과 같은 자세로 임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자신의 '부족'에만 포커스를 맞추며 피할 수 없는 우울이나 자책감에 정통으로 타격을 받으며 자신을 힘들게 한다면 그건 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우울과 불안을 강화시키는 자기 비난


 시작은 '내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좋은 것만 주고 싶고, 최대한 실수를 줄이고 싶은 마음. 너무나 자연스럽다. 또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뭔가 부족한 게 없나, 혹시라도 실수한 건 없나 자신을 살피는 건 나쁜 게 아니다. 겸손하고 늘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성숙하고 멋진 엄마인가. 하지만 습관적인 '자기 비난'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아이에게도 자신에게도 역효과일 수 있다. 과도한 자기 비난은 겸손과 결이 다르다. 너그럽게 대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항상 '문제투성이'로 전제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엄격하게만 자신을 대한다고 해서 부족함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지속적으로 비난하고 책망하는 사람은 오히려 문제에서 도피하는 경향이 있어 그 사람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떻게 더 나아질지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기보다 그저 '내가 부족해서 그래.' '다 내가 못나서 그래'라며 자신을 부정적으로 정의하는 것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비난은 마음을 병들게 하기 좋은 습관이다. 많은 마음의 병이 생각을 과도하게 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생각의 상당 부분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 자기 중심성이 몹시 강하다. 그 생각 중 많은 부분이 자책감, 후회와 같은 것이라면 그런 생각은 어쩔 수 없이 '죄책감, 무능감, 열등감, 무가치함'으로 이어진다. 이 느낌이 깊고 강하게 누적되면 마음의 병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경향은 특히나 우울에 취약한 성격적인 특성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인의 병인 '불안'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타라브랙은 '자기 비난'이 불안을 강화하는 습관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대개 부모가 그만두고 떠난 자리를 이어받아, 자신의 결함을 예리하게 상기시킨다.'라며  자기 비난의 뿌리가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에 있음을 설명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작은 실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크고 작은 일들 앞에서 우선 자신을 다그치고 보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많은 일들 앞에서 내 탓이라고 내 부족 때문이라고 고집스럽게 나를 평가하고 혼을 낸다. 그렇기에 아이를 키우며 불안감과 우울감을 자주 경험한다면 혹시 내면의 심판관의 존재가 너무 크진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힘을 빼고 그저 아이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부모가 되었을 뿐인데 자신을 엄격하게 대하는 습관이 강해지는 듯하다. 그건 다름 아닌 내 아이를 나보다 더 잘 키워보려고, 아이가 건강하게 잘되게 하려는 의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를 개선시키지 않고 그저 나에게 매일매일 벌을 주고 있을 뿐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내 마음이 병들어가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픈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면 분명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조선미 교수는 TV프로에서  '좋은 부모가 되는 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이미 아이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가급적'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데에서 이미 좋은 부모라고.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는 데에서 아이들은 오히려 불행해졌단다. 오히려 아이를 '잘'키우려는 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며 '잘'을 빼고 키우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한다. 안심이 되는 얘기다. 힘을 빼고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의 힘을 믿어주는 것. 그리고 아이와 함께 크는 자신을 격려해 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 엄마들이 할 일이며 최선이다. 


육아에 대한 높은 기준이 엄마들의 과도한 자기 비난을 만들어낸 건 아닌지 씁쓸해질 때가 있다. 아이를 너무 이상적으로 키우려고 자신을 이상적인 엄마상에 끼워 맞추려고 애쓰는 건 아닌지 나 또한 돌아보게 된다. 

 내가 아무리 나를 비난하고 애써도 그저 '나'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는 아무리 우리가 애를 써도 아이의 모습대로 클 것이다. 그렇다면 그저 내가 건강하게 아이 곁에 머무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꼭꼭 씹고 있으니 마음이 한 뼘 더 넓어지는 느낌이다. 내게도 아이에게도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너와 함께 여행하듯 걸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7화 끝.




덧붙여.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이번화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곳 폴란드도 이제 가을이 오려는지 선선해지고 있는데요. 환절기라 그런지 유난히 피곤해하시거나 아프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우리집도 예외 아님 ㅠㅠ) 건강 꼭 잘 챙기시고, 무엇보다 마음 잘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육아하시는 엄마아빠들, 그리고 자신을 돌보는 우리 모두들 파이팅입니다. 



글이 아닌 말로도 나눠요. 유튜브 채널 링크 안내


김혜령의 채널 [마음 돌보는 심리수업]

https://www.youtube.com/channel/UCIPS1otc2hDr3fbySVoAC-g


마인드트립 이현정 대표님과 마음숨 선생님과 함께 마음과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여행자'의 대화를 기록합니다.


심리, 명상채널 [마음숨]

https://www.youtube.com/@heartsum/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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