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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_감미로운 삶이란

지극히 낮으신 분과 성 프란체스코와 크리스티앙 보뱅 2023.09.16.

오늘의 문장은 13세기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21세기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탁월한 문장가 크리스티앙 보뱅의 『지극히 낮으신』(이창실 옮김, 1984BOOKS, 2023)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바로 이 순간에 찾아드는, 영원한 삶에 대한 예감이다. 자기애란 환희에 취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첫 전율이다. 감미로운 삶이란 현재의 삶에서 이미 꿈틀대는 영원한 삶이다.
(중략)
 감옥 안의 그는 고래 속에 든 요나 같아서, 한 줄기 빛도 그에게 닿지 않는다. 그러자 그는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노래 속에서 빛보다 더한 것, 세상보다 더한 걸 발견한다. 자신의 진정한 집, 진정한 본성, 진정한 고향을.
 우린 이런저런 도시에서 이런저런 직업을 갖고, 이런저런 가정에 산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사실은 어떤 장소가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살고 있는 곳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곳이 아니라, 무얼 희망하는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희망하는 그곳이며, 무엇이 노래하게 만드는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노래하는 그곳이다.
-56-58p

 

저의 본업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일, 기원전에 시작된 이야기와 현재를 연결하고, 1세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일을 합니다. 해석학과 언어학과 고고학 등의 지식이 필요한 일이기에 복잡한 일이기도 합니다. 신기한 것은 우리에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쉽게 설명해 주신, 지극히 낮으신, 정확하게는 지극히 낮아지신 그분의 말을 현대의 우리가 지나치게 복잡하게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지식의 진보가 아닌 삶을 누리고 나누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 '지극히 낮으신' 분을 따르는 자들의 삶일 것이고, 그들의 삶 또한 지극히 낮은 곳으로 흐를 것입니다. (모든 종교와 사상이 마찬가지지만) 애석하게도 인간은 최초로 말한 사람의 말을, 스승의 말을 안 듣는 습성이 있다는 겁니다. 대개 저와 본업이 같은 분들이 노년에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 영원히 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존경했던 대부분의 스승은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이미와 아직 사이'입니다. 확신과 확인 사이와 같은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을 간직하며 자연계를 관찰할 때 삶은 더 농밀해집니다. 내가 진정 바라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확신한다면, 확인하기 전까진(죽기 전까진) 흔들릴 수 있겠으나 희망을 잃지 않고 감미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좀처럼 본업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최대치로 스포를 했네요. 크리스티앙 보뱅과 1984BOOKS의 책을 더 입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무엇보다 프랑스 작가는 저와 안 맞는다는 편견을 완전히 버리게 했습니다.


문득 과거의 흔적을 찾아 떠난 허수경 시인의 글이 그립고요. 그러고 보니 곧 10월이네요. 10월은 언제나 허수경입니다. 살아생전 알면 참 좋았을 작가들을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아쉽지만, 이것이 또 글쓰기의 작은 동력이 되니, 감사합니다.

덧, 1인출판(KONG출판사, 새벽감성1집, 마음시선, 꿈꾸는인생, 홀로씨의테이블, 1984BOOKS, 책과이음 등등등! 흥해라!! 예산 좀 줄이지 말고...


도서관은 내일 2시에서 6시까지 개관하는 날이지만, 1시간 일찍 문 닫고, 한인 주간 축제현장에 가려고요. 저녁엔 도서관 오지 마시고 즐기러 가세요^^

#지극히낮으신 #크리스티앙보뱅 #성프란체스코 #이창실옮김 #1984BOOKS #오늘의문장 #칭다오 #칭다오청양 #칭다오경향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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