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IT - 빌려온 고양이
얼마 전,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이상하게 귀에 꽂힌 대사가 있었다.
“세상에 귀여운 것 없이 살 수는 없어.”
그냥 틀어놓고 딴 짓하다가 그 말이 왜인지 내 주목을 끌었다.
요즘 세대들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방에 인형 키링을 달고,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대화하고,
책상 위에 스티커나 귀여운 피규어나 인형들로 방을 꾸미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예전엔 이런 걸 그냥 ‘취향’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게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혹시 정말 저 애니의 대사처럼 '귀여움'은 인간에게 필요한 대상이 된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왠지 그런 것 같은 느낌에 찾아보다가 Baby Schema란 개념을 알게 되었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은 둥근 얼굴, 큰 눈, 작은 코 같은 유아적인 특징을 보면 본능적으로 끌리게 된단다.
그런 특징을 보면 보호본능과 보상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도록 뇌가 반응한다.
그러니까 귀여움은 단순히 예쁘고 말랑해서가 아니라,
우리 뇌가 그렇게 느끼도록 되어 있는 구조였다.
이 개념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퍼즐처럼 맞아 떨어졌다.
왜 요즘 따라 그런 귀여운 것에 사람들이 열광하게 되는지,
왜 작은 캐릭터 하나에 위로받는 기분이 드는지.
그냥 트렌드로 볼 게 아니라 자세히 파고보니 생리적인 반응이란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면 요즘 세대, 특히 Z세대는 늘 불안을 끌어안고 산다.
경제적 불안, 커리어에 대한 불확실성, 미래에 대한 막연한 압박감.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80% 이상이 ‘경제적 안정’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본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세대에게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이 간절한 거다.
그걸 어디서 찾냐고? 아주 작고, 말도 없고, 해롭지 않은 것들.
손바닥만 한 피규어, 가방에 매단 인형, 휴대폰 배경의 캐릭터.
그건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갈 때
잠깐이라도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감정의 구명줄 같은 거다.
이런 생각은 K-POP을 볼 때도 떠올랐다.
보통은 남자 아이돌이 굿즈 소비나 매출에서 압도적인 수치를 보여주고,
여자 아이돌은 상대적으로 ‘팬 소비력이 약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egtrQu5mTA
근데 요즘 아일릿(ILLIT) 같은 팀은 그 공식을 뒤흔드는 전략을 가지고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엉뚱하고 순수한 ‘귀여움’을 무기로 여성 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굿즈 퀄리티를 높이고, 시각적으로 Baby Schema 요소를 자극하는 전략은
소비자를 팬이 아니라 ‘감정을 반응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선택한 전략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K-POP 산업도 이 점을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귀여움은 사람의 경계를 허물고, 보상회로를 자극하며,
정서적으로 ‘이 그룹을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을 만든다.
나는 그냥 애니메이션 속 한 줄의 대사가 Baby Schema란 개념을 찾게 되고,
불안한 세대의 감정 구조와 K-POP까지 닿아버렸다.
근데 생각해보면 이 모든 연결은 그리 이상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마음이 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세상에 귀여운 것 없이 살 수는 없어.”
사실은 불안한 시대를 견디는 Z세대의 생존 방식 중 하나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