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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전시

by 숲속의조르바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 미술관을 염두에 두는 나를 보며 친구는 자기는 미술을 전혀 모르기에 이해가 안 간다며 미술관에 가면 뭐가 좋냐고 묻는다.


그때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누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찌 설명해야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렇게 설명하기로 했다.


“너가 매일 음악을 듣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내가 알기로 너는 주로 한국 발라드를 좋아하지. 빠른 댄스 음악도 좋아하고. 그리고 모르지만 클래식, 팝송, 디스코, 힙합,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 중에서 도 맘에 쏙 드는 노래가 있겠지. 혹은 장르와는 상관없이 그때그때 좋아하는 음악도 있을 수도 있지."


"누군가 좋다고 권해줘서, 유행한다고 해서, 인기 있다고 해서 들어보기도 할 테고, 길을 걷다가, 라디오에서,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음악에 끌려서 나중에 두고두고 여러 번 듣기 도하잖아."


"그리고 분명한 건 누구나 처음부터 아는 노래는 없잖아. 이것저것 듣다 보면 좋아서 다시 듣고 싶어지는 것도 생기고, 하나가 좋으면 비슷한 종류의 새로운 것들을 찾아서 들어 보고 하지."


"내 미술관 놀이도 결국 같아. 처음에는 유명하다는 그림을 찾아보다가 나를 확 순식간에 휘어잡는 그림을 만난 거지. 나를 매혹한 그림들을 보러 가고, 그 화가의 다른 그림들을 보러 가고, 내가 모르는, 나를 매혹할만한 새로운 그림이 혹시 있나 스스로 나를 내놓으러 가는 거지. 휘어 잡히러!”


상냥하고 친절해 보이려고 애쓴 예상 답변지를 작성하다 보니 내 오만한 과거가 불쑥 드러난다.


종종 주변 친구나 후배들에게 “뭘 이딴 음악을 듣냐”, “어디서 이딴 옷을 샀냐”라며 타박을 했었다. 이걸 돈 주고 사 먹느냐며 사주지도 않으면서 불평했다. 내 취향은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에 세상 친절하게 주저리주저리 하면서 타인의 취향은 단번에 깔아뭉개는 짓을 한 것이다.


잊고 있었던 채근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오래는 아니겠지만 아주 잠시라도 반성하는 의미에서 열 번 소리 내서 읽어야겠다.


내가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으면 누가 능히 나를 추하다 할 것이며,
내가 깨끗함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누가 능히 나를 더럽다 하리오.


역시나 알고만 있는 것은 하등 의미가 없다. 작은 실천 자체가 특히 나에게는 절실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호(號)나 필명을 [말고]로 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까불지 말고 나대지 말고 훈수질 말고 아는 척 말고.




IMG_6570.JPG <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 카스파프리드리히 -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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