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 카페로그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아주아주 오래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와서 공부하기 싫던 학생들에게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 준 적이 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저 말을 뱉어낸다면 어김없이 꿀밤이나 등짝스매싱이 하사되곤 했었다.
왜 어른들은, 그리고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아이들의 성적에 목을 맬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성적은 좋은 대학과 안정적인 고수익의 직장과 직업으로 이어지고 상대적으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을 몸소 체험하거나 지켜본 결괏값 때문일 것이다. 혹은 자신 스스로 공부를 안 해서 힘든 인생을 보낸 이유일 수도 있다. 의사나 변호사, 한의사 등이 되라고 등 떠미는 이유가 정의구현이나 인류애 차원이 아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임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돈이 최고라고들 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한다. 그 말은 결국 돈이 전부라는 소리로 들린다. 자본주의 세상이니 지극히 당연하고 맞는 말일 것이다.
네덜란드 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어도, 가정은 살 수 없다. 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은 살 수 없다. 책을 살 수 있어도, 지식은 살 수 없다. 의사는 살 수 있어도, 건강은 살 수 없다. 직위는 살 수 있어도, 존경은 살 수 없다. 피는 살 수 있어도, 생명은 살 수 없다. 관계는 살 수 있어도, 사랑은 살 수 없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가진 돈이 모자란 것이 아닌지 확인해 보라는 혹자의 말을 곱씹어 본다. 명치끝이 아린 말이다. 네덜란드의 현자도 돈이 조금은 모자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든다.
행복을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은 과연 얼마쯤일까 생각해 보다가 나는 무엇을 행복 해하는가를 정의하는 것이 먼저고, 그것을 사는데 얼마가 드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그다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한 번쯤은 해외를 여행하는 행복을 이십여 년 정도 꾸준히 돈으로 사고 있고, 한 달에 두세 번쯤 친구를 만나 삼겹살에 소주 한잔 즐기는 행복을, 일주일에 두어 번쯤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즐기는 행복을 사고 있다. 2년쯤의 주기로 최신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를 가지는 행복을 돈으로 사고 있다. 싸면 만원 이내, 비싸면 수백만 원쯤이다. 다행히 내 행복은 카드도 잘되고 할부도 잘된다. 더 행복한 것은 종종 누가 이런 행복을 사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호기롭게 “얼마면 돼?”라고 물어봐 주기라도 한다면 “양양 카페로그 커피는 5천 원이야”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