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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의 조건

진짜 가짜와 진짜 진짜의 것들

by 숲속의조르바


요즘 명품 어쩌고 하는 것들을 보다가 브랜드의 조건에 대한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자랄 땐 명품이나 브랜드라는 말보다 메이커라는 말이 나름 비싸고 좋은 것들을 통칭했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 신발에 고고하게 박힌 로고에 따라 자신감과 자존감은 비례했던 것 같다. 사실 시골이라 그런 것이 아니고 브랜드라는 것이 태동하던 80년대는 도시도다르지 않았다. 응답하라1988을 보면 추억이 새록하다.


이런 마음을 잘 아는지 브랜드들은 로고가 엄청 크게 인쇄된 티셔츠나 가방을 쏟아 냈고, 더불어 교묘하거나 혹은 아주 엉성하고 허술한 모조품까지 쏟아져 나왔다.


메이커에 눈 뜨고 충성하기 시작한 7-80년대생 꿈나무들은 커서 옷, 시계, 가방, 자동차를 넘어 아파트와 동네라는 브랜드, 나아가 대학교와 직업군까지 충성하는 일편단심을 보였다. 자연스레 후손들도 그렇다. 그때도 그랬듯 메이커는 일종의 계급장이 된다.



다들 말로는 개성을 중시한다면서 모두가 다 아는 같은 그것들을 추종하는 모양새다. 이로 인해 A급, B급, S급 등의 짝퉁이 활개를 친다. 짝퉁의 가격도 만만찮다고 들었다.



예전에 유럽 여행을 하던 중 나름 비싸게 주고 산 옷 하나를 돌아와서도 주구장창 입었는데, 그 동네에서는 나름 유명했지만 국내에는 수입이 되지 않아 대부분 모르는 브랜드였었다. 아무도 몰라주니 메이커로서의 위신이 통 서질 않았다.


남들이 알아봐 줘야 비소로 메이커가 된다. 메이커의 조건이다. 아무리 비싸고 좋아도 알아봐주는 이가 없으면 듣보잡이 된다. 세상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품질 때문에 명품을 산다라고 하기도 하는데 가슴에 손을 얹었으면 한다.


두해 전 겨울에 이스탄불을 여행하다가 예상보다 날이 추워서 누구나 알만한 영국 명품 브랜드의 패딩 조끼를 거금 3만 원쯤 주고 샀다. 이스탄불의 시장을 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온갖 명품 브랜드들이 양양 오일장 난전의 산나물처럼 여기저기 말그대로 널려있다.


나는 두 대의 차가 있는데 한대는 삼각별이 달린 검은 차이고, 한대는 쨍한 파란색의 경차다. 귀국 후 검은 차를 타고 그 조끼를 입고 다니면 아무도 짝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당당히 입고 다녔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파란 경차를 타면 스스로도 누가 짝퉁으로 보면 어쩌나 생각했다.


이처럼 우리는 그 자체가 아닌 주변의 것들을 근거로 나름 합리적으로, 분석적으로 판단한다는 착각에 사는 지도 모른다.


살면서 다양한 명품 같은 사람과 짝퉁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짝퉁은 진짜인 척하려는 의도를 가졌을 경우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진짜 명품이 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후지거나 제대로 엉망인 진짜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닿는다.


아주 드물게 내 진가를 몰라주는 남들의 탓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명품이냐 짝퉁이냐가 아니고 그것을 골라내는 안목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검은 차처럼, 둘러싼 것들에 휘둘려 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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