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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국밥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콩나물국밥과 나의 운명론

by 강씀
콩나물국밥하면 어느 지역이 떠오르세요?


아무래도 전주 아닐까요? 저는 콩나물국밥을 정말 좋아해요. 처음 콩나물국밥을 먹던 때를 지금도 기억할 정도로요. 제가 열 살 때 일이에요. 저희 가족과 삼촌네 가족이 함께 여름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마침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는데요. 두 개의 식당 앞에서 삼촌이 제게 물어봤어요.



설렁탕 먹을래, 콩나물국밥 먹을래?



참고로 저는 새로운 음식에 도전을 안 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먹어봤던 설렁탕을 먹겠다고 했지요. 근데 삼촌은 콩나물국밥집으로 가시더라고요. 이럴 거면 왜 물어보신 거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기억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콩나물국밥집에 들어갔는데요. 저는 그냥 콩나물국이랑 밥을 먹는 줄 알고 별 기대가 없었어요. 왠지 잔뜩 심통 난 상태로 뾰로통하게 밥을 기다렸죠. 얼마 뒤, 펄펄 끓는 뚝배기가 나왔어요. 뚝배기에 밥을 말아서 나왔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점이 없어 보이는 콩나물국밥이었어요. 그래도 배고프니까 국물만 살짝 떠서 한 입 먹어 보았는데요. 세상에! 이건 그냥 콩나물국이 아니더라고요.



국물 한 입에서부터 콩나물의 개운함이 그대로 전해지면서요. 동시에 처음 맛보는 감칠맛과 고소함이 느껴졌어요. 한 숟갈 깊게 뜨면 밥과 함께 섞여 나오는 오징어들도 너무 쫄깃했고요. 해산물의 감칠맛과 콩나물의 시원함이 합쳐지니 어마어마한 상승작용을 발휘하더라고요. 국밥 특유의 짭짤함까지 모든 게 완벽했던 저의 첫 콩나물국밥이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콩나물국밥을 사랑하는 꼬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가 10살이었는데요. 그날 콩나물국밥을 두 그릇 먹었고요. 저를 마음대로 콩나물국밥집에 데려 온 삼촌에게 감사했어요. 제게 콩나물 국밥을 선물해 줘서요.



이후에도 콩나물국밥은 한 끼 식사로 즐겨 먹곤 했는데요. 20대 중반, 크론병을 얻은 뒤로는 질기고 억센 콩나물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한동안 포기했던 음식이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만나게 된 여자친구의 고향이 전주더라고요. 운명이었죠, 콩나물국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요.








시간이 흘러 저희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며 장인어른, 장모님을 뵈러 전주를 여러 번 오가게 되었고 자연스레 전주의 음식을 먹을 기회도 많아졌어요. 저는 콩나물국밥만 좋아해서 몰랐는데 전주에는 정말 맛있는 음식이 많더군요. 어쩌다 보니 다른 요리들만 잔뜩 먹게 되면서 콩나물국밥을 미루기를 몇 달째, 드디어 콩나물국밥을 먹는 날이 찾아왔어요.



아내와 처음 찾은 콩나물국밥집은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왱이집이었어요. 워낙 유명한 곳이라 이미 알고 있는 곳이었죠. 먹기 직전 아내가 말하길, 왱이집이 제일 맛있는 콩나물국밥집은 아니라고 했는데요. 흠, 저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물론 제대로 먹었다고 하기에는 살짝 애매해요. 당시 저는 크론병으로 인한 불편은 없었지만 지레 겁먹고 나물은 먹지 않던 때라서요. 아내에게 모든 콩나물을 주고 국물과 밥만 먹었거든요. 콩나물이 빠진 콩나물국밥은 굉장히 앙상했지만, 국물만으로도 너무 시원 칼칼하고 맛이 좋았습니다. 제일 맛있는 집이 아니라기에는 너무도 훌륭했어요.



콩나물국밥을 먹는 중에 아내가 '왜 전주 콩나물국밥이 맛있는지'를 알려줬는데요. 예전에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라는데요. 전주는 물이 좋아서 예로부터 콩나물이 맛있어서 콩나물국밥이 유명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내는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며 민망해하면서도, 희한하게 같은 프랜차이즈인데도 전주에서 먹을 때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덧붙였어요. 저도 분명 납득되는 정보가 아님에도 왠지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은 정말 무언가 특별했거든요.









콩나물국밥을 먹을 날만 기다리던 것도 옛날 일이에요. 전주가 고향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저는 요즘에도 콩나물국밥을 정말 자주 먹고 있어요. 명절에 가족끼리 모였을 때 가기도 했고요. 아내가 좋아하는 추억의 콩나물국밥집을 가기도 하고요. 군산에 놀러 갔다가 추천받아서 군산의 콩나물국밥을 먹기도 했어요. 아, 집 앞의 프랜차이즈 콩나물국밥집도 외식하고 싶을 때 휘리릭 편하게 먹고 오기 너무 좋고요.



이름은 같은 콩나물국밥인데 맛은 제각기 달랐어요. 어디는 더 개운했고요. 어디는 맛이 더 풍부했고요. 참 신기했어요. 그런데 부부는 역시 입맛까지 닮아가는 걸까요? 저 같은 경우는 처가 식구들이 몇십 년 넘게 다닌 콩나물국밥집이 제일 맛있더라고요. 아내가 어릴 때부터 살았고 아직도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살고 계신 집 근처 동네에 있는 가게인데요. 김이나 밥이나 그냥 먹고 싶은 만큼 떠먹는 인심 좋은 곳이었어요.




이제는 저도 콩나물을 잘 먹어요.


전주를 오가며 콩나물국밥을 자주 먹다 보니, 자꾸만 콩나물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콩나물을 먹기 전에는 아내도 저도 걱정이 많았는데요.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었더니 놀랄 만큼 아무렇지 않았어요. 그리고 역시 콩나물을 씹으며 그 아삭함이 느껴질 때 비로소 콩나물국밥은 완성되더라고요.



아내 덕분에 콩나물국밥을 다시금 즐겨 먹게 되면서 되찾은 게 정말 많아요. 콩나물을 비롯한 질긴 나물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고요. 어릴 때의 추억과 건강도 되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저희 부부는 동네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었어요. 이제 저도 제 뚝배기에 나온 콩나물을 다 먹고요. 리필을 해주지 않는 게 아쉬울 만큼 잘 먹어요.



곧 설날이에요. 전주에 내려가면 저는 또 콩나물국밥을 먹을 거예요. 예전에는 콩나물 하나도 먹지 못할 정도로 건강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건강하거든요. 비록 크론병 환자지만 콩나물 정도는 후루룩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니까요.



'먹을 수 있다는 행복한 기적' 브런치북에는 크론병 환자로서 가진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되는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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