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행운아
사실 난 혼자서도 운동을 할 수 있지만 같이 하는 것에 꽤나 익숙해져 있다 보니 연천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철원에서 운동을 해야 할 때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 같이 할 파트너의 문제였다. 하지만 걱정을 길게 가져가면 나만 손해. 걱정을 짧은 시간에 끝을 내려면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나와 함께할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뿐이었다.
한참 후에 알게 된 내용이지만 우리의 모임이 결성되기 전 나는 운동하는 사람들을 대놓고 관찰했었다. 마치 사자가 먹잇감을 노리듯이 언제든 기회를 포착하면 빠르게 치고 나갈 사람처럼.. 그걸 캐치한 팀의 리더가 될 형님은 "저 XX(나), 계속 쳐다보고 있어."라고 같이 운동하는 형님에게 귀띔을 해줬다고 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곤 하지만 당시엔 서로 뭔갈 경계하고 있었나 보다. 그만큼! 나로서는 함께 운동하는 것에 간절했다.
"저기... 같이 운동하시겠습니까?"
리스트랩을 감는 것으로 보아하니 가슴운동을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당시 나도 같은 부위를 하는 날이니 내가 먼저 돌진했다. 내가 철원에 와서 가장 잘한 행동 하나, 같이 운동할 사람을 생각보다 빨리 찾은 것이다.
어쩌다 보니 새벽에 모이는 멤버가 5명이 되었다. 팀 이름은 내가 정했다. 굳이 정할 필요도 없는데 내가 만들었다.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오짐 헬스장에서 만난 강력한 피지컬을 탑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모임을 함축하여 만든 것이 <철원오짐_청년괴수_협의회>다. 협회라고 하기엔 거창해 보이고 협의회라고 해야 조금 더 부드럽게 느껴질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철학을 담은 팀명은 꽤나 강력해 보이고 좋았다.
연천에서의 새벽반을 철원에서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겐 지금도 감사한 일, 새벽에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한들 무엇하리... 에너지를 영끌하는 것은 모인 사람들의 몫이리라. 헬스장 관장님도 새벽의 에너지를 좋아해 주시니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나의 대회 날짜가 결정되었을 때 진심으로 격려해 주고, 운동하면서 중간중간 포인트를 점검해 주고, 각 요일마다 같은 부위를 번갈아 가면서 단련해 나갈 때, 운동을 마치고 나서의 짧은 대화, 가끔 모여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나누는 담소 등등 모든 순간이 나에겐 감사한 일... 그리고 새벽은 매일 오는데 매일 나가서 또 단련하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서 하루를 이겨내는 것, 그것이 우리 모임 '철원오짐_청년괴수_협의회'다.
여담이지만 단체 티셔츠를 꾸준히 맞추자고 내가 주장하지만 허튼소리 하지 말라며 결재를 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언젠간 맞추겠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본명:이진원)은 '요정'하면 떠오를 수 있는 편견부터 박살 내놓았다. 그래서 솔직하다. 많은 팬들이 여전히 그가 없는 세상을 안타까워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내가 대학교만 들어가면 그의 공연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는 내가 대학교를 입학하고 1학년을 마쳐갈 때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겨놓은 음악은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의 말라버릴 것 같은 마음속 땅의 단비였다. 그가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나 복잡한 사연들을 노래로 풀어낼 때 나도 모르게 희열을 느끼곤 했었으니까. <행운아>는 그의 1집의 곡이기도 하면서 그가 죽기 직전까지 썼던 책의 제목이기도 했다.
나는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
내게 다가올 그 행운들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었던 거야
나는 행운아 나는 행운아
어쩌면 준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미래의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나는 다가올 모든 것들에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