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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음악수집가 Aug 07. 2022

어디서 코로나19에 당첨되는지 알 수 없다.

어느 코로나19 확진자의 1주일 격리기.

 정말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고 뒷목을 누가 잡아당겨 주었음 했다.


 일요일 아침, 그냥 몸살이겠거니 했다. 그날 오전의 자기 진단키트의 결과는 '음성', 그날의 아침은 컨디션이 썩 나쁘지 않았고 분명 약속시간에 맞춰서 나갈 수도 있었던 컨디션이었지만 이상하게 몸 어딘가가 고장이 난 듯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코로나19 의심) 첫째 날 오후, 전화가 왔다.

"왜 안 나왔어?"

"나 아파요.. 몸이 너무 안 좋아."

"어떻게 아픈데?"

"허리가 끊어질 거 같고... 뒷목이 당기고... 힘이 없어..."

"잠깐만 기다려봐."


"어디가 아픈지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아.. 네.. 허리가 아프고 뒷목이 당겨요."

"오한은 느껴져요?"

"네.. 조금 느껴져요."

"코로나 같은데... 뭐 키트 같은 건 써봤어요?"

"아침에 음성 나왔어요."

"20시쯤에 한번 더 해봐요. 코로나 초기 증상 같아요."


 약을 어떻게 사러 가야 하나 걱정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렁각시 누나 두 분이 숙소 우편함에 일용할 '타이레놀'과 '판피린'을 놓아주시고 가셨다. 뭐라도 챙겨 먹으라는 말과 혼자 아프면 그것만큼 서러움이 없다는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




<약을 먹기 위해서는 뭐라도 먹어야 한다.>

 

 '빈 속에 약을 먹을 수 없다!'는 정의 아래에 무엇이든 먹기 위해 먹을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과자, 컵라면, 사제 전투식량 등등 있을 것들은 다 있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사제 전투식량은 몇 달 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한 박스를 주문해놓은 것이 정말 크게 작용할 줄은 몰랐다. 맛있고 없고의 문제보다는 이거라도 먹어야 내가 약을 먹었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라면 유통기한이 적어도 1년이 넘는, 뜨거운 물만 넣어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구비해놓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컵라면이라도 괜찮다.)


 정말 감사하게도 아프다는 걸 알고 약을 비롯한 일용할 양식을 가져다준 후배들이 있어서 질리기 쉬운 간편식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장ㅇㅇ누나, 안ㅇㅇ누나, 이ㅇㅇ, 김ㅇㅇ 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격리기간 동안 제일 많이 먹었던 것은 역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사제 전투식량.. (청춘전투 만세!), 그리고 후배들이 사다 준 죽과 편의점 도시락.




<최대한 빨리 주변에게 알려야 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 전이었지만 저녁 8시가 되어서 자기진단키트 검사 결과는 처음 보는 두줄, '양성'이었다. 부랴부랴 일하는 곳에 알리고 월요일이 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일하는 곳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마주쳤던 사람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줘야 했다. 마주치지 못했던 가족들에게도 멀리사는 친구들에게도....


"코로나 걸린 거 같다."


 어쩌면 비상 싸이렌 버튼을 내가 누른 꼴이 되어버렸다. 휴가 때 만났던 모든 사람들의 안부를 재확인하고 자기진단키트를 꼭 한 번씩 해보라는 당부를 남겼다. 다행히 조금이라도 마주친 사람들은 전부 음성이었는데 그럼 난 어디서 감염이 된 거야? 이래서 코로나에 걸리면 패닉이 오는 이유겠구나.


PCR 검사를 하고 나서 다음날 '확진'통보가 이런 식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격리생활이 시작된다.


 결국 나는 화요일 아침에 코로나19 확진을 통보받았다. 홀로 일주일간 싸워야 한다.




<격리는 힘들다. 가만히 쉬는 것도 오르지 않는 컨디션도.>


 격리는 내가 사는 숙소에서 이루어졌다. 혼자 사는 곳이고 동선이 겹칠 일도 없기 때문이다. 혼자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이지만 코로나가 몸안에 들어온 이상 한 가지를 진득하게 오래 하기 힘들다.


코로나로 인한 몸의 변화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겪은 코로나의 영향은


①컨디션의 급격한 하락
②맛이 느껴지지 않음

였는데, 특히 격리 1~2일 차에서 컨디션의 급격한 하락은 만사가 귀찮아지고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쓰려는 의지도 생기지 않고 의자에 앉으면 30분을 못 버티고 침대로 돌아갔다. 그 정도로 힘들었고 주변에 코로나를 겪은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증상이었냐고 물어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는 말로 돌아왔다. 잘 조절해서 쉬고 잘 조절해서 체력을 쓰는 것뿐.


 컨디션의 하락은 몸의 변화에 제일 취약하다. 수시로 밥을 먹고 약을 먹어도 회복이 된다는 느낌보다는 중간중간에 전투를 하는 느낌이었다. 흡사 계속 펼쳐지는 분대급, 소대급의 전투랄까? 이게 3일 차 까지는 유지가 되기 때문에 계속 주기적으로 약을 먹어줘야 몸살 기운이 슬그머니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몸살 기운이 떨어져 나갈 뿐 컨디션은 그대로 나쁘다. 컨디션이 회복되기까지는 한 달 정도 걸린다고 들었는데 격리가 끝나고도 안심할 수는 없겠구나...


 컨디션의 하락과 더불어 맛이 느껴지지 않는 최악의 상황은 역시나 격리 1~3일 차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미각의 전체를 잃는 것은 아니며 밥맛은 느껴지지만 궐련형 전자담배의 맛이 느껴지지 않아서 굉장한 곤욕을 치렀다. 4일 차에 본연의 맛이 조금씩 느껴질 때 몸이 조금씩 회복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렇다고 담배가 유익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 비흡연자는 따라 하지 말자.)




 <일상으로의 회복기, 다시 모든 것을 리듬에 맞춰야 한다.>


 격리 4일 차부터는 몸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4일 차부터 컨디션이 괜찮아지고 적어도 몸살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완전한 회복은 아니다. 약간의 두통은 남아있었기에 판피린과 판콜은 식사 후에 꼭 복용을 했다. 충분한 휴식은 격리기간에 필수다. 격리기간 초반에는 기타를 칠 힘조차 없고 책을 읽을 정신상 태도 아녔기에 그저 힘을 오롯이 휴식에 사용해야 했고 회복기인 4일 차때부터 글을 쓰고 글을 읽는데 문제가 없었고 음악을 들어도 거슬리지 않은 컨디션이 되었다.


 격리가 끝나가는 시점에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시점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신체리듬을 조금 맞춰 놓는 게 좋다. 꺼놓았던 알람을 다시 켜고 제대로 기상하는 법이라던지 면도를 깔끔히 해서 짐승에서 사람으로 변신을 하는 등의 격리 장소 내에서 조금은 유동적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밖에 버리지 못했던 쓰레기도 조금씩 정리를 해놓아야 격리가 끝나는 시점부터 사람 사는 곳으로 바뀐다.


 격리 5~6일 차는 휴식이 끝나 감이 한편으로는 아쉬움으로 다가오다가도 오랜 시간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몸은 거의 다 회복되었음에도 나가면 안 된다는 규칙을 철저히 지켜야 2차 피해(감염)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괴롭다. 그래도 며칠 아니 몇 시간 안 남았다. 끝까지 잘 이겨내도록 하자.




 코로나19는 참 지독하게 전 세계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조금 있으면 이 지독한 상황은 끝날 거야'라고 했던 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그냥 짓밟아 버리게 되었고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더니 다시 재 확진이 시작되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다시 모든 것을 리듬에 맞춰야 한다. 삶도 일도 모든 살아있는 것들도! 확진이 되고 격리기간 동안 웃을일도 별로 없고 활동 반경도 줄어들다 보니 심심한 일만 가득했다. 잠시나마 코로나19에 확진이 되어서 출근하지 않던 사람들을 두고 "왜 나는 걸리지 않을까?"라고 망언을 했던 내 자신이 코로나19에 걸리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무증상이건 유증상이건 걸리면 피곤하다. 안걸리는게 축복임을 걸리고 나서 알았다. 아! 다시 걸리지는 말자. 걸리면 피곤해진다. 정말! 우리 모두 건강합시다!



※ 이번 편은 좋은음악수집가가 추천하는 음악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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