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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Aug 26. 2021

카레르를 통해 현현된 러시아 풍운아의 삶

서평 <리모노프>by 엠마뉘엘 카레르 (열린책들,2015)


엠마뉘엘 카레르(1957~)는 ‘특유의 저널리즘식 글쓰기로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으며 문단에 확고한 입지를 굳힌’ 현대 프랑스 작가다. 그는 <겨울아이>(1995), <적>(2000), <나 아닌 다른 삶>(2009), <왕국>(2014)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그중 2011년 발표한 <리모노프>(열린책들, 2015)는 실존인물 ‘에두아르드 베니아미노비치 사벤코(1943-2020)’의 인생을 추적한 ‘소설’로 르포르타주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리모노프’는 에두아르드의 예명으로 레몬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리몬’과 ‘수류탄’의 ‘리몬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 ‘소련’의 붕괴에 따른 유라시아 대륙의 혼돈 속에서 영웅이 되고 싶었던 한 사내의 인생의 격랑을 촘촘히 따라간다.


1943년 소련 우크라이나 하급 정치경찰의 아들로 태어난 에두아르드는 아버지와 같은 군인을 동경하던 소년이었지만 점차 힘과 자유, 강렬함을 좇아 갱스터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후 하리코프와 모스크바의 언더그라운드 문학세계를 거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고 <러시아 시인은 덩치 큰 깜둥이를 좋아해>라는 제목의 책을 프랑스에서 출간한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유명인이 된 그는 페레스트로이카의 기운을 타고 고국에 돌아와 정치판에 끼어든다. 발칸 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세르비아로 달려가기도 하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자 민족볼셰비키당을 창당해 소련의 부활을 꿈꾼다.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주인공 에두아르드 리모노프는 굴곡진 현대사를 자신의 의지로 헤쳐나가며 반항아, 시인, 혁명가의 인생을 살아낸다. 그는 화려하면서도 저돌적인 삶, 타인의 우러름을 받는 불꽃같은 인생을 지향한다. ‘그에게 어울리는 삶은 영웅의 삶이며, 편안하고 단란한 가족이나 소박한 기쁨, 홀로 가꾸는 내면의 정원, 이런 것들은 다 인생 낙오자의 자기 합리화’(P.109)라고 카레르는 묘사한다. 에두아르드는 어린 시절 타인을 압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죽을 때까지 견지하고 실행에 옮긴다.


두 번에 걸친 리모노프와의 인터뷰와 그의 자서전, 회고록 등에 의존해 쓰여진 이 책에는 작가 카레르의 스토리도 실려있다. 리모노프에 대한 자신의 관점 뿐 아니라 신변의 이야기까지 가감 없이 포함시키고 스스로를 비교하기도 하며 특유의 거침없고 직설적인 필체를 선보인다. ‘(리모노프의) 책을 읽어 나갈수록 나는 스스로 밋밋하고 평범한 옷을 입고 이 세상에서 조연이나 맡을 운명, 그냥 조연도 아니고 분하고 억울해하며 질투심에 불타는 조연, 주연을 꿈꾸지만 주연을 맡을 카리스마, 관대함, 용기, 그 어느 것도 없는, 오로지 인생 낙오자로서의 참담한 각성만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p.239) 독자는 카레르의 눈을 통해 언제나 주연이고 싶었던 한 인간의 갈 지(之)자 인생을 조망한다.


왜 자신에 대한 소설을 쓰느냐고 리모노프조차 작가에게 묻는다. ‘볼가 강변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수감된 일반범의 세계와 필립 스탁의 디자인 속에서 유영하는 멋쟁이 작가의 세계’(p.37)를 두루 경험한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느끼는 그에게 카레르는 동감한다. 때때로 작가조차 ‘상종 못 할 사람’으로 언급하면서도 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견지하는 것은 시대가 가능하게 한 ‘파란만장함’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현존하는 인물을 소설로 옮기는 작업은 여러 면에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을 것 같지만 적어도 카레르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듯하다. 작품을 통해 굴곡진 소련-러시아의 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책의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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