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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Oct 10. 2021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무는 연대기

<눈 속의 에튀드>서평,  다와다 요코/최윤영 옮김 (현대문학,2020)

일본어와 독일어로 글을 쓰는 다와다 요코(1960~)는 종종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거명될 만큼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견작가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이후 독일로 건너가 독일어로 글을 쓰며 ‘언어와 언어 사이를 줄타기하며 인식의 세계를 항상 낯설게 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눈 속의 에튀드>(현대문학, 2020)는 2012년 <눈의 연습생>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어로 발표되고 이후 독일어로 쓰인 장편소설로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책은 독일어 번역본이다. 2006년 베를린 동물원에서 태어나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아기 북극곰 ‘크누트’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작가는 고향을 벗어난 북극곰 3대에 걸친 이야기를 직조해냈다.


책은 3부로 이루어져 할머니 곰, 그의 딸 ‘토스카’, 그리고 토스카의 아들 크누트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냉전시대 소련에서 서커스의 곡예사로 일하던 곰은 라틴댄스를 추던 중 부상으로 인해 행정직원으로 전직하게 되고, 자서전을 쓰게 된다. 이로 인해 위험에 처하고 결국 서독으로 망명한 곰은 이후 캐나다로, 다시 동독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간다. 그의 딸 토스카는 발레리나로 활약하기를 원하지만 극장측과 불화하면서 결국 서커스단으로 터전을 옮긴다. 맹수조련사 바바라와 팀을 이룬 토스카는 이후 ‘죽음의 키스’라는 공연으로 큰 인기를 얻는다. 토스카는 아들 크누트를 낳지만 양육을 거부하고, 엄마에게 버림받은 크누트는 사육사 마티아스의 돌봄을 받으며 자란다. 인간에게 양육된 크누트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다와다의 소설에서 곰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말을 하고 자서전을 쓰기도 하며 인간과 교감한다. 작가는 인간의 관심사를 동물을 통해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독자가 북극곰의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는 익숙한 감각을 낯설게 만들어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세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다와다 특유의 세계관을 경험하게 한다.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이상한 느낌을 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주로 의견을 외부에 전달하기 위해서 언어를 사용했다. 이제 언어는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안에 있는 부드러운 부분을 건드린다. 마치 내가 뭔가 금지된 것을 하는 기분이었다.’(p.36)


토스카와 바바라의 연대는 인간과 동물간의 경계를 넘어서 영혼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한다. 자신의 일을 하기위해 자식을 다른 이에게 부탁하게 되는 둘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며 글로 남긴다. ‘첫 번째 키스 이후에 바바라의 인간 영혼이 한 조각 한 조각 내 몸 안에 녹아들어 왔다. … 영혼은 대부분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일상의 이해 가능한 언어뿐 아니라 많은 망가진 언어 조각들, 그리고 언어의 그림자들과 아직 단어가 되지 않은 이미지들이었다.’(p.271) 토스카와 바바라의 소통은 성대를 통해 청각으로 전달되는 형태가 아닌 영혼을 통한 교감이다.


곰의 시선에서 서술했기 때문에 소설은 종간의 경계를 허물면서 신비롭고 낯선 세계로 독자를 인도하지만 때로 화자의 입장을 혼돈할 수 있는 빌미를 주기도 한다. 아마도 역자는 이런 측면을 고려해 곰이 쓴 부분은 기울임체로 표기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독해가 힘들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료로서 동물의 마음을 상상하며 읽어나간다면 환경문제, 디아스포라, 동물 보호, 여성의 사회활동 등 다양한 층위의 화두를 던지는 다와다 요코의 이 작품을 보다 더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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