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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 삶을 기억하는 방법

귀족의 무덤(3): 네넴이펫&나크트- 신을 위한, 사람을 위한

by 나그네 한

세네페르의 정원에서 붉은 포도송이를 따라 걷던 기억이, 멘나의 벽화 속 강과 들판을 지나던 눈길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그 두 무덤은 삶을 그리는 무대 같았다. 사람들은 거기서 일하고, 노래하고, 사랑했다. 죽음은 마치 커튼 뒤로 잠시 사라진 삶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제 또 다른 공간으로 향한다. 한참을 골목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조용하고도 차분한 기운이 서서히 나를 감싼다. 이곳은 분명히 다르다. 들어서는 순간,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기도의 무덤, 아메넴이펫의 장소다.


아메넴이펫 Amenemopet 무덤 입구 전경 (TT41번 무덤)


이 이름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익숙한 숭고함을 품게 되었다. 그는 제18왕조 시대, 신왕국의 중심 룩소르에서 카르낙(Karnak) 신전의 제사장이자 서기관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신전은 단지 제사를 드리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정치와 행정의 핵심이자, 국가의 종교적 중심이었다.


아메넴이펫은 그 신전에서 신의 뜻을 기록하고, 제사의 질서를 관리하며, 하늘과 땅 사이의 통로가 되는 역할을 했다. 그의 무덤은 삶의 업적을 자랑하는 대신, 경건한 기도와 예배의 흔적들로 채워져 있다. 벽면에 새겨진 손짓은 하늘을 향해 들려 있고, 그림자마저도 조용히 신 앞에 무릎 꿇은 듯한 분위기다. 나는 무덤의 첫 공간에서, 한 남자가 수천 년 전에도 신 앞에 자신을 낮추며 살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머문다.


그의 손은 돌로 새겨졌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신앙의 떨림이 전해진다.


손을 들고 기도하는 '아메넴이펫'의 부조


그림자처럼 조용히 무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 보았던 멘나와 세네페르의 무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색채는 눈부셨고, 사람들은 수확을 하고, 춤을 추고, 잔을 부딪쳤다. 그러나 지금 내가 선 이곳은 다르다. 시간이 멈춘 듯,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지는 공간.


나는 그 앞에 멈춰 섰다. 거기, 벽면 깊이 새겨진 인물 하나가 있었다. 머리를 가지런히 빗은 남자. 가슴 앞으로 양손을 높이 들어, 어딘가를 향해 기도하고 있다. 말이 없지만, 확연한 움직임이 보인다. 그 손끝에, 눈에 보이지 않는 떨림이 있었다. 숨을 멈추고 바라보자, 그의 기도가, 마치 들려오는 듯했다.


“오 위대한 아문이시여, 내 심장을 재단 위에 올리오니, 진실함으로 심판하시고, 나를 기억하소서. 내가 당신의 집에 기름을 바르고, 향을 피우던 자였음을 잊지 마소서.”


이것은 단순한 제사 장면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신 앞에 선 것이 아니라, 죽은 자가 살아 계신 신 앞에 서 있는 순간이었다. 그는 지금도 무릎을 꿇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엎드려야 할 것만 같았다.


제사장의 손은, 자신의 생을 걸고 드리는 기도의 손이었다. 그 손 안에는 무덤에 갇힌 기억이 아니라, 영원을 향한 간구가 있었다. 이 순간, 나는 단지 한 장의 부조 앞에 서 있는 관람객이 아니었다. 장례의 마지막 순간, 그의 지인들 틈에 서 있는 자가 되었다. 모든 이가 돌아간 후, 혼자 남은 누군가가 무덤 앞에 조용히 손을 얹고, 속삭이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 자리에 당신이 있음을, 기도하던 그 손을 기억하겠습니다.”


돌은 침묵 했지만, 그 속의 기도는 지금도 살아 있다. 돌에 새긴 손이, 오늘도 신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무덤 깊숙한 방 안,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다. 단단한 석회석으로 조각된 아메넴이펫과 그의 아내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무덤을 지키는 자처럼 엄숙하지만,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놀랍도록 인간적이다.


서로 나란히 앉아, 세월을 함께 통과한 부부. 그 손과 무릎, 눈빛과 어깨 위에는 “동행”이라는 말이 조용히 얹혀 있다. 무덤 벽면에는 아메넴이펫의 이름이 여러 번 반복되어 새겨져 있다. 마치 절박한 기도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고대 이집트에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죽음을 넘어 존재를 지속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다. 이름이 불리는 한, 그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의 아내와 함께 새겨진 이름은 이승과 저승을 함께 걷는 영혼의 쌍을 증언한다.


사라질 것을 알기에, 더 단단히 새겼을 그 이름. 그 앞에 서는 순간, 나는 처음 보는 이름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읽는다.


“아메넴이펫.”





합셉수트 신전을 멀리서 조망한 전경


아메넴이펫의 무덤을 나오는 순간,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숨을 고르듯, 마음도 고요해졌다. 그의 무덤은 하나의 성소처럼 느껴졌다. 신을 섬긴 제사장의 삶, 그 신성함이 벽마다 서려 있었고, 그 공간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마치 기도의 끝에 앉아 있는 듯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 난 무덤과 멀지 않은 어느 돌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눈앞에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펼쳐진 합셉수트의 신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장대한 기둥들과 정돈된 테라스의 선들이 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기도처럼 나의 눈과 마음을 이끌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거대한 땅은 신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을 위한 것이었을까. 죽은 자를 위해 남긴 기도들이 산 자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건 아닐까.


나크트Nakht (TT52번 무덤) 입구에 있는 석상

그러나 이어지는 다음 무덤, '나크트Nakht'의 방으로 향하면서 공기는 달라졌다. 어둡고 조용했던 예배의 장소를 지나 빛과 색이 살아 있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감각.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서, 살아 있던 자의 삶으로 나는 조용히 옮겨간다.


기도로 완결된 무언가에서, 삶으로 다시 열린 무언가로. 두 무덤은 닿아 있으면서도, 그 목적은 전혀 달랐다. 아메넴이펫의 무덤이 신과 죽음, 그리고 기억의 성역이었다면, 나크트의 무덤은 일상과 기쁨, 그리고 살아 있던 몸의 찬가였다.



마크트 무덤의 벽화들 - 곳곳마다 기쁨이 표현되고 있다.


돌계단을 따라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나를 맞이한 건 색의 세계였다. 벽화는 살아 있었다. 붉고 푸르고 노란색들이 지금 막 칠해진 것처럼 선명했고, 벽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듯 손짓했다.


이곳은 "나크트(Nakht)"의 무덤. 그는 고위 서기관이자 점성술사였고, 당대 천문을 관측하며 신전의 달력을 기록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벽화가 말해주는 그의 삶은 그저 기록하고 계산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었다. 향기로운 꽃을 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 곡식을 거두는 농부의 손길, 하프를 타는 여인들의 미소가 그의 무덤을 채우고 있었다. 무덤은 죽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살았던 순간을 기억하는 곳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마치 한 고대인의 삶의 박물관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룩한 기도의 공기에서, 이제는 풍요와 축제, 그리고 인간의 몸짓으로 가득한 또 다른 세상으로 나는 발을 내딛는다.



“곡식은 잘 자랐는가?”
나크트가 묻는다.


“예, 주인님. 햇살이 좋았고, 물길도 끊기지 않았습니다.”

농부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한다.

그의 어깨 뒤로는 소들이 밭을 갈고, 아이들이 웃으며 볏짚을 던진다. 바크트는 벽 속의 인물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존재처럼 무덤 속 파라다이스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듯했다.


“창고는 비지 않게 하라.”

그의 말은 바람처럼 벽을 타고 흐르고, 그 말이 닿는 곳마다 끝없는 수확이 이어진다. 벽에 그려진 모든 장면은 기도의 응답이었다.


삶의 마지막에서 올려진 소망 –
‘굶지 않게 하소서, 기쁨이 끊기지 않게 하소서’ –

그 기도는 지금, 이곳에서 현실이 되었다.


나크트의 무덤에는 노동이 축복이고, 대화가 음악이고, 움직임이 기도다.


그리고 어느 벽면, 한 무리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말없이 다가와 향을 피우고, 부채를 흔들며
한 줄의 노래를 속삭인다.


“당신이 다시 웃기를, 당신이 다시 향기를 기억하기를…”


하프의 선율이 바람처럼 퍼진다. 그 곁에서 바크트는 눈을 감는다. 향은 그에게 살아 있던 시절의 사랑과 축제를 떠올리게 한다. 여인의 손이 향수병을 들어 올릴 때, 이 무덤 안은 향기와 기억으로 가득 찬다.


기도의 소리는 아직 남아 있고, 삶의 소리는 그것을 감싸 안는다. 이곳은 더 이상 죽음을 위한 방이 아니다. 이곳은 삶을 계속 살아가는 무대다. 바크트는 이제 다시 시작된 계절 속에서 자신만의 영원을 살아간다.



나크트의 무덤을 걷다 보면, 이곳이 단지 그를 위한 공간만은 아님을 느낀다. 이곳에는 수많은 이들이 함께 존재한다.


밭을 가는 농부, 포도를 수확하는 소년, 향을 나르는 여인,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춤을 추는 악사와 하프 연주자, 그리고 무언가를 점검하며 손짓하는 감독관까지. 그들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이 무덤을 살아 있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바크트는 그들 가운데 있다.


이 무덤은 마치 하나의 이상적인 마을 같았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노동은 고통이 아니라, 가치 있는 행위로 그려진다. 그림 속 아이들은 장난을 치기도 하고, 어른들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노인도, 젊은이도, 여인도 함께 있는 이 풍경은 그 자체로 "이집트인이 꿈꾼 ‘이후의 삶’"을 보여준다. 바크트는 자신만의 안락함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는 ‘함께 살아가는 영원’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죽음 이후에도 일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서로를 도우며, 계절은 돌고, 기쁨은 나누어진다.


이곳은 저승이 아니라, 삶이 다시 태어난 장소다. 하늘의 별들 아래에서, 강물과 꽃향기 속에서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 다시 살고 있다.





귀족의 무덤 정상에서...


죽음은 기억의 또 다른 이름이다



두 개의 무덤을 나섰을 때, 나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무언가 슬픈 것도, 두려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듯했다. 마치 아주 오래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온 것처럼. 아메넴이펫의 무덤은 신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는 제사장의 기도로 가득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지우고, 신을 기억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반면, 나크트의 무덤은 가족과 친구, 일상과 향기, 웃음과 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기억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서로 다른 두 무덤.


그러나 그 둘 모두, 결국은 ‘기억’이라는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사람은 모두 사라지지만 무언가를 기억하게 만드는 삶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집트인에게 무덤은 죽음을 기록한 곳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무덤은 삶을 다시 말하는 방언(方言)이었고, 시간을 건너 전해지는 한 편의 시였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끝이라 여기지만, 그들에게 죽음은 기억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지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에게, 언젠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진: 나그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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