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의 무덤(1): 라크메르 & 라모세 - 두 재상의 흔적들
오후의 태양이 기울어가며 사막의 열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귀족의 무덤 산 위로 올라간 나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두 재상의 무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왕을 보좌하며 이집트 행정을 책임졌던 라모세(TT55)와 라크미레(TT100)—그들이 남긴 흔적을 직접 마주한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먼저 도착한 곳은 라모세의 무덤. 사막 속에 조용히 자리한 무덤은 겉보기에 다른 귀족들의 묘보다 컸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수많은 벽화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과 달리, 내부는 의외로 단출했다. 미완성인 듯한 벽과 비어 있는 공간들. 무덤이 끝까지 완성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남아 있는 벽화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한 시대의 격변을 증언하는 역사적 흔적들이었다. 벽을 따라 걷다 보니 이전 시대의 전통적인 장례 장면과, 새로운 태양신 아텐(Aten) 숭배 장면이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같은 무덤 안에서 두 신앙 체계가 뒤섞여 있다는 것은 단순한 예술적 변화가 아니었다. 이것은 아멘호텝 4세(아케나톤)의 종교 개혁이 시작되던 그 시기의 긴장과 불확실성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라모세의 무덤은 장례행렬과 애도하는 여인들의 모습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의 삶은 한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한 행정가의 것이었다. 아멘호텝 3세 시대의 질서를 유지하던 그는, 그의 아들 아멘호텝 4세(아케나톤)의 종교 개혁이 시작되면서 미묘한 변화의 흐름 속에 놓이게 된다. 벽화 곳곳에서 보이는 미완성된 흔적들은 그의 무덤이 완전한 형태로 마무리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끝까지 왕의 개혁을 지지했을까? 아니면, 조용히 사라지는 길을 택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무덤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무덤의 내부는 크고 웅장했지만, 완벽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한쪽 벽에는 여전히 선명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장례 행렬과 울고 있는 여인들의 벽화였다. 흰색 얇은 옷을 걸친 여성들이 얼굴을 감싸 쥐고 통곡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애도가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었고, 고위 관료의 죽음을 기리는 엄숙한 의식의 일부였다. 그 옆으로는 라모세를 기리며 공물을 바치는 신하들과 그의 위엄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벽화를 바라보았다. 권력자의 삶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흔적도 함께 남아 있었다. 무덤을 설계한 사람들, 그림을 그린 장인들, 돌을 다듬던 노동자들. 이들의 이름은 역사 속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만든 세계는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었다.
라크미레의 무덤 입구를 지나자, 어둠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 펼쳐졌다. 벽마다 빼곡히 그려진 장면들이 빛을 머금고 살아나는 듯했다. 무덤을 안내하는 인솔자는 한 손에 손전등을 들고 벽화를 하나하나 비추며 우리를 이끌었다. 그는 이곳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듯 보였다.
“여러분이 보고 계신 것은 3,000년 전의 흔적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고요한 공간에 울렸다.
“라크미레는 투트모세 3세와 아멘호텝 2세의 재상으로, 이집트 행정의 중심에 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그의 삶과 업적을 담은 무덤이지요.”
벽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한쪽에는 공식적인 장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왕 앞에서 예를 갖추는 라크미레, 다양한 공물을 바치는 관리들, 그리고 왕에게 외국 사절들이 선물을 바치는 모습들.
“보십시오. 저기 누비아 인들이 황금을 바치고 있고, 시리아에서 온 사절들은 정교한 도자기를 바치고 있습니다.” 인솔자는 손전등을 비추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신왕국 시대의 이집트입니다. 정복과 외교, 그리고 거대한 행정 체계가 움직였던 시기였지요."
조용히 벽화를 바라보던 방문객 중 누군가가 속삭였다.
“정말 세밀하게 그려졌네요.”
정말 그랬다. 벽화 속 인물들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표정과 움직임이 살아 있는 듯했다. 그림 속 재상 라크미레는 크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지만, 그 주변에는 크기만 다를 뿐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여기 보시면,”
인솔자는 벽의 다른 부분을 가리켰다.
“이건 재상의 사무실 장면입니다. 서기관들이 나무판에 기록하고 있지요. 행정은 단순히 명령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관리들과 서기관들이 기록하고, 보고하고, 전달하며 왕국을 운영했습니다.”
그의 설명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조금 다른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공식적인 의식이 아니라, 실생활을 담은 장면들이었다. 인솔자는 조용히 손전등을 비추며 말을 이었다.
“이 벽화들을 보면, 당시 행정의 모습뿐만 아니라, 이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시면, 식량을 운반하는 모습도 있고, 공물을 분류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라크미레의 지휘 아래 많은 사람들이 일하며 이집트의 중심을 이루었지요.”
방문객들은 조용히 벽화를 바라보았다. 일부는 세밀한 부조의 흔적을 따라가며 감탄했고, 일부는 천천히 공간을 거닐며 이 무덤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곱씹었다. 무덤 깊숙이 들어갈수록, 이곳이 단순한 장례 공간이 아니라, 한 시대의 기록이라는 것이 점점 더 실감이 났다.
라크미레는 왕의 최측근으로서 이집트 행정을 총괄했던 재상이었다. 그의 무덤 벽화에는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장면이 아닌, 관리들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그에게 보고하는 장면이 남아 있다.
벽화 속에서 그는 긴 지휘봉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으며, 그의 앞에는 여러 관리들이 줄을 서 있다. 이는 단순한 궁정의례가 아니라, 행정적인 업무 수행을 보여주는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재상은 왕의 명을 받아 여러 지역의 관리와 감독을 수행했고, 각지에서 온 관리들은 세금 징수, 건축 프로젝트, 노동력 동원 등의 내용을 재상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이 벽화에서도 그런 순간이 담겨 있다. 기록과 보고서를 정리하는 서기관들, 무언가를 바치는 모습, 그리고 땅에 엎드려 예를 표하는 사람들까지—이 장면 속에서 우리는 라크미레가 통치 시스템을 운영했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왕의 명을 전달하고, 행정을 조율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이 무덤을 단순한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한 시대의 역사를 증언하는 장소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무덤 깊숙이 들어서자, 한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이들의 흔적이 내 눈앞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이곳은 단순히 권력자의 안식처가 아니었다. 벽화 속에 새겨진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았고, 그 삶이 지금 이 순간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라모세의 무덤 벽화는 단순한 장례식 장면을 넘어서, 당대 이집트 사회의 다양한 계층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권력자의 삶을 기리는 공간이었지만, 그를 떠받친 사람들의 흔적 역시 지울 수 없는 형태로 남아 있었다.
벽의 상단에는 장례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남성들이 정갈한 자세로 행렬을 이루고 있었고, 그 뒤로는 흰색 얇은 옷을 걸친 여인들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절규하듯 손을 뻗고 있었다. 그녀들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진 듯했고, 격정적으로 울부짖으며 비탄에 잠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슬픔에 잠겨 있었을까?
"이리 오너라! 더 크게 울어라!"
그들 중 한 명이 손을 뻗으며 다른 여인들을 독려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고인이 남긴 유산에 대한 애도였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귀족의 장례식에서는 곡을 하는 여인들이 필요했고, 그녀들은 그것을 생업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공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한 손에 바구니를 든 남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걷고 있었고, 그 뒤로는 더 작은 인물들이 다양한 물품을 받쳐 들고 따르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 공물이야. 조심히 다뤄야 해."
한 남자가 가볍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의 팔에는 곡식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올려져 있었다. 그것은 재상에게 바쳐질 것이었고, 그의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는 그 곡식을 다시 볼 수 없을 터였다.
한편, 벽의 아래쪽을 보면 또 다른 현실이 펼쳐지고 있었다. 장례식과 귀족의 의식이 이루어지는 동안, 노동자들은 묵묵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한 남자는 두 팔을 치켜들어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의 옆에는 소를 끌고 가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소의 붉은색 피부는 강렬했고, 그 옆에 선 남자는 허리를 숙인 채 힘겹게 무엇인가를 바치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 행렬이 늦어지면 안 된다."
감독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노동자들은 재촉당하며 발걸음을 옮겼고, 공물은 계속해서 귀족에게 전달되었다.
그들의 삶은 여기에 없었다. 벽화는 권력자를 위해 그려졌고, 그들의 손길은 남아 있지만,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없었다면 이 무덤도, 이 장례식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한 발짝 물러서서 벽화를 다시 바라보았다.
울고 있는 여인들, 공물을 나르는 남자들, 노동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다른 역할을 맡았지만, 하나의 체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한 시대를 살아갔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 그들의 노동과 억압, 때로는 작은 희망과 생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귀족의 무덤에 새겨진 하층민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권력자만이 아니라,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갔던 사람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줄지어 앉아 기록을 남기는 서기관들, 공물을 분류하는 감독관들, 빵을 굽고 곡식을 나르는 노동자들, 채찍을 맞으며 돌을 나르는 노예들….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지만, 이들의 위치는 너무나도 달랐다.
서기관들은 깔끔한 가발을 쓰고 앉아 조용히 기록을 남겼다.
"오늘 공납된 가축의 수를 정확히 적어야 해. 혹여 틀리면, 재상님 앞에서 벌을 받을 거야."
그들의 목소리에는 긴장이 서려 있었다. 재상이 직접 검토하는 문서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서기관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생존은 글씨 하나하나에 달려 있었다.
그 반대편, 창고 앞에서는 노동자들이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커다란 곡식 자루를 메고 허리를 숙이는 남자들,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여자들.
"제발 좀 남겨 줘… 이렇게 많은 빵을 굽는데, 한 조각이라도 우리에게 돌아올까?"
"남으면 좋겠지. 하지만 우리가 먹을 수 있을지는 몰라."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빵을 쉽게 얻을 수 없었다. 주인을 위해 구워진 빵이었고, 재상이 받는 공물이었으며, 왕실로 보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공물에서 빠진 조각이 그들의 손에 들어오는 날이 있었다.
벽의 아래쪽을 보면 더 잔혹한 현실이 보였다. 벌거벗은 남자들이 밧줄을 어깨에 걸고 돌을 끌고 있었다. 그들의 등에는 채찍질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바닥에는 쓰러진 자들도 보였다. 감독관이 채찍을 높이 들고 외쳤다.
"서둘러라! 오늘 끝내지 못하면 내일은 더 고될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 남자의 표정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손을 땅에 짚었다.
"하루만이라도, 그냥 쉬고 싶다."
그러나 벽화 속에서는 그런 날이 오지 않았다. 그들은 영원히 돌을 나르고, 채찍을 맞으며, 곡식을 거두는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한편, 귀족들의 잔치가 펼쳐진 장면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악사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여인들이 있었다.
"높으신 분들은 오늘도 술을 마시겠지. 그리고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그래도 우리가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다행일지도 몰라. 저기, 저 사람들처럼 돌을 나르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들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가벼운 유머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달랐다. 그들은 웃으며 연주했지만, 눈빛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닥에 앉아 하프를 연주하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긴 흑발을 늘어뜨리고, 정교하게 만든 “궁형 하프(bow harp)”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섬세하게 현을 튕길 때마다, 공간 안에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이 소리가 끝나지 않기를. 연주하는 동안만이라도 나는 노예가 아니니까."
그녀의 옆에는 가느다란 피리를 부는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몸을 가볍게 흔들며, 조심스럽게 숨을 조절하며 연주를 이어갔다. 피리 소리는 하프와 어우러져, 잔치의 분위기를 한층 돋우고 있었다. 그러나 연주를 마친 순간, 그들은 다시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잔치는 귀족들의 것이었고, 그들은 단지 그 배경을 채우는 역할이었다.
나는 벽화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권력자의 무덤에서, 그를 받들던 사람들의 삶이 함께 기록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 이집트 사회에서 귀족들의 존재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그들을 떠받치는 이름 없는 이들의 삶이었을 것이다.
무덤에 새겨진 이들의 삶을 보며 생각했다. 벽화 속에 갇혀 영원히 일을 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역사의 일부가 아닐까.
나는 무덤 속 벽화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라모세와 라크미레라는 두 재상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곳에 들어섰다. 하지만 벽화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업적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통치했던 시대를 이루었던 수많은 사람들—노동자들, 농부들, 서기관들, 악사들—그들의 흔적이 무덤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라모세의 무덤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벽면의 선명한 부분과 흐릿한 흔적들이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그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끝내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도하는 여인들의 울음, 줄지어 공물을 바치는 행렬, 그리고 바닥에 몸을 던져 절하는 모습 속에는 권력자의 죽음을 기리는 형식적인 애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쪽, 무거운 짐을 나르는 노동자들, 쓰러진 자들, 채찍을 든 감독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덤 속에서도 사회의 계급은 명확했다.
라크미레의 무덤은 보다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남아 있었다. 관리들은 줄을 서서 보고를 하고, 서기관들은 빠짐없이 숫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그들의 행정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드러났다. 창고를 가득 채운 곡식, 무거운 바구니를 이고 가는 사람들, 빵을 굽는 여성들, 그리고 구석진 곳에서 채찍을 맞으며 돌을 나르는 남자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움직이지만, 벽화 속에 남은 그들의 표정은 무덤 주인의 것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무덤 속을 거닐던 내 눈에, 벽 한쪽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장면이 들어왔다. 푸른 나뭇잎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과수원.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물을 긷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땅을 다듬으며 과일을 수확하고 있었다. 고된 노동의 장면들 사이에서 이 벽화는 유난히 평온해 보였다. 이것은 라크미레가 생전에 바라던 것일까? 아니면, 사후 세계에서 그가 누리기를 원했던 이상적인 삶이었을까?
나는 문득 생각했다. 라크미레만이 이런 소망을 품었을까? 그의 무덤을 조각한 장인들, 서기관들을 위해 곡식을 재배한 농부들, 그리고 노예처럼 돌을 나르던 사람들도 이런 꿈을 꾸지 않았을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을 깎으며 먼지를 뒤집어쓴 조각사가 한숨을 내쉬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과일을 내 손으로 따 먹을 날이 올까?"
곡식을 나르던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라모세 역시 그의 미완성된 무덤 속에서 이런 소망을 가졌을 수도 있다. 끝내 완성되지 못한 무덤이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권력과 개혁의 갈림길을 넘어, 단순하고 평온한 삶을 바라는 마음이 남아 있지는 않았을까?
잔치를 위해 연주를 하던 악사들, 서기관들의 문서를 검토하던 감독관들, 돌을 끌며 채찍을 맞던 노동자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삶을 버텨갔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작은 과수원을 꿈꾸지 않았을까?
나는 무덤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벽화를 돌아보았다. 영원히 남을 것처럼 새겨진 그림들. 하지만 이곳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들이 남긴 손길이, 그들이 흘린 땀이, 이렇게 오랜 세월을 지나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는 것—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가 아닐까?
사진: 나그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