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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속에 묻힌 무덤들, 그리고 돌을 깎는 손들

사막의 속삭임: 바람과 태양 아래의 무덤들

by 나그네 한

노동자의 마을을 지나 사막 쪽으로 걸어 나왔다. 뜨거운 햇살이 이마를 강하게 두드렸고, 발밑에서는 땅이 건조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초입에서는 아직도 닭이 울고, 어린아이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놀고 있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수록 세상은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논과 밭이 끝나고, 손으로 곡식을 베는 농부들의 모습도 점점 뒤로 사라졌다. 바람에 바삭거리며 부서지는 옥수숫대,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구부정한 농부들의 모습. 그들의 손은 거칠고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었지만, 손끝에서는 마른 잎 하나하나를 정리하는 세심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들의 하루는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시작해, 다시 해가 저물 때 끝난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해가 하늘 한가운데 있을 때, 이 길을 걷고 있었다.


길가에는 한 마리의 당나귀가 서 있었다. 낡은 나무 바퀴를 단 수레를 끌고 있는 이 작은 동물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묵묵히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일강에서 멀어질수록 땅은 점점 메말랐고, 짐마차의 바퀴 자국은 거친 돌바닥 위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벽화가 그려진 마을 담장을 지나며 잠시 멈춰 섰다. 벽에는 선명한 색감의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순례자의 모습, 머리에 물항아리를 이고 가는 여자들, 그리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성지순례를 떠나는 남자, 물을 길으러 가는 여자, 먼 도시로 날아가는 이방인. 그들의 삶이 한 벽 안에 담겨 있었다. 그중 한 장면, 빵을 굽는 여인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불길이 피어오르는 작은 화덕 앞에서, 밀가루 반죽이 손끝에서 빚어지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걸까? 순례자가 되어 길을 떠나온 듯한 이 발걸음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이렇게 조금씩 세상이 바뀌는 풍경을 지나면서,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막은 가까워지고, 드디어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황량한 절벽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왕들의 계곡과는 다른, 보다 조용하고 황량한 공간. 여기에 묻힌 이들은 과연 무엇을 꿈꾸었을까?




룩소르 서쪽, 해가 강렬하게 내리쬐는 사막산. 나일강을 따라 펼쳐진 푸른 들판이 아득하게 멀어지고, 거칠게 깎인 사막 바위산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마치 여기가 세상의 끝인 것처럼, 삶의 흔적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화려한 장식도, 정교한 조각도 없다. 남아 있는 것은 바람과 모래뿐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바위틈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그것이 사람이 조성한 무덤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한때 권력을 가졌던 귀족들의 마지막 흔적이, 이제는 바람과 모래 속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무덤이라 하면 웅장한 기둥이나 무너진 신전 같은 것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 남아 있는 건 단출한 입구와 거친 절벽뿐이다. 마치 자신들의 흔적을 숨기려 했던 것처럼. 이들은 왜 이 외진 곳을 택했을까? 강변에서 멀어질수록 삶의 기운은 점점 옅어지는데, 그들은 왜 이곳에 잠들길 원했을까?


왜 이들은 이 험준한 산의 구석구석을 무덤의 자리로 선택했을까? 나일강 계곡의 풍요로운 들판과 가까우면서도, 완전히 분리된 듯한 이곳. 파라오들은 거대한 신전과 함께 사후세계를 준비했지만, 귀족들은 왕들의 계곡을 피해, 이 한적한 곳을 택했다. 파라오처럼 영원을 꿈꾸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후손들에게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무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바람이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먼지바람이 부드럽게 지나가고, 태양 아래에서 바위들은 더없이 고요하다. 그러나 이곳을 걷다 보면,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노동자의 마을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여기까지 이어진 것처럼, 과거의 시간도 지금 이 순간과 맞닿아 있다.


그들이 바라보았던 세상은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 그리고 그들이 꿈꾸었던 영원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사막 바위 사이를 지나며 낮은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곳에 서면, 처음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멈춘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바람 소리가 들린다. 바위를 스치며 흐르는 바람, 사막을 떠돌다 내게로 온 바람. 발밑에서는 작은 돌멩이들이 부서지는 마찰음이 조용한 공기를 가득 채운다.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본다. 저 멀리 나일강이 흐르고, 초록빛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 너머에는 삶이 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일상을 살아가는 움직임, 그리고 오늘도 반복될 노동과 휴식이 있다. 하지만 여기, 내가 서 있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한때 권력을 가졌던 귀족들도 결국 자연 속 한 조각이 되어버렸다.


이곳에 무덤을 남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강변에서 멀어질수록 삶은 점점 희미해지는데, 왜 이들은 저 아래 푸른 들판이 아닌 이 황량한 산 위를 택했을까? 여기가 조용해서? 아니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영원히 기억되고 싶어서?


나는 무덤 앞에 서서 돌을 만져본다. 거칠다. 수천 년 동안 태양에 그을리고 바람에 깎인 돌이다.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을 돌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결국 남길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 산을 오르며 외로움을 느꼈다. 사방이 텅 비어 있고, 어디에서도 사람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이곳을 선택한 건, 고독 때문이 아닐까? 시끌벅적한 세상을 뒤로하고, 조용히 떠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결국 남은 건 바람과 돌뿐이다. 화려한 부조도, 영원히 기억될 이름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발밑의 모래를 살짝 쓸어본다. 내 손끝이 스친 자리, 거기에도 누군가의 발자국이 있었을까? 아니면 이 바람이, 내가 떠난 뒤 내 흔적까지 지워버릴까?


그런데 이상하다. 이 황량함이 어쩐지 위로가 된다. 결국,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남는 거라면. 바람이 불고, 태양이 뜨고, 다시 또 누군가 이 길을 걸을 거라면.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이 고요한 풍경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귀족의 무덤 밖, 조각가들

사막의 태양 아래, 바람은 조용히 흐르고 있지만, 이곳엔 여전히 손을 움직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귀족들의 무덤은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왔고, 오늘날에도 이곳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먼 과거, 돌을 깎아 무덤을 만들었던 석공들의 후손일지도 모를 사람들. 그들은 여전히 손으로 돌을 다듬으며, 지나간 시대의 흔적을 오늘로 끌어오고 있었다.


거친 바위산 아래, 터번을 두른 한 남자가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 깊이 팬 주름, 그리고 선글라스 너머로 나를 관찰하는 눈빛. 그는 나를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서 왔는가?"
나는 그 남자를 보며 웃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그냥… 이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요."


그는 손을 들어 멀리 산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무덤들 말인가? 저곳에 누가 묻혔는지 아는가?"
"네, 이곳에는 귀족들이 묻혔다고 들었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귀족들만 있었던 게 아니야. 이 무덤을 만든 석공들도, 글을 새긴 서기관들도, 벽화를 그린 화가들도 여기에 있었지. 왕들은 신과 함께 영원을 꿈꿨지만, 그들을 위해 일했던 이들은 조용히 사라졌어."


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뭔지 아는가?"


그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비슷해. 무덤 속 주인은 바뀌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기서 일하고 있지."


그가 웃으며 말을 마칠 즈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작은 조각상을 깎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그는 맨발로 나무 의자에 앉아 작은 조각칼로 돌을 다듬고 있었다. 바스테트 신상을 손에 들고 정성스레 다듬는 모습은, 수천 년 전 이곳에서 무덤을 장식했던 장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건 바스테트야."
그가 손에 든 작은 석상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는 조심스레 조각을 손에 쥐었다. 매끈하면서도 거친 촉감.
"직접 만드신 건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돌을 깎으며 신을 만들었지. 난 뭐, 그 전통을 이어가는 거야."


"무덤을 위한 건 아니지만, 어쩌면 이곳을 기억하게 하는 또 하나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네요."
그가 씩 웃으며 조각을 다시 다듬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군."


나는 조용히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귀족들의 무덤을 떠나지 못한 영혼들처럼, 혹은 이곳을 떠나지 않기로 한 사람들처럼, 이들은 사막 한가운데서 돌을 깎고, 시간을 새기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먼지에 덮인 흰색 천막이 보였다. 발굴단의 텐트였다. 안쪽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무언가를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발굴 작업 중이신가요?"
한 연구자가 먼지를 툭툭 털며 고개를 들었다.
"네, 날씨가 좋아서요. 그래도 너무 덥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태양이 너무 뜨겁네요. 무덤 안쪽에서 뭐 특별한 거라도 발견하셨나요?"
그는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은 도자기 조각과 파편들이 나왔어요. 이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겠죠."


내 말을 걸긴 했지만, 그들은 무언가를 발견했음에도 아직은 보안상 공개할 수 없다는 듯했다. 그는 애써 말을 돌리며 서류를 정리했다. 나는 더 깊이 묻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텐트에서 나와 다시 무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햇살이 바위를 비추고, 바람이 황량한 산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나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이집트의 재상이었던 레크미레와 라모세의 무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그들의 삶과 일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사진: 나그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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