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새겨진 이름들: 장인들의 숨겨진 이야기
낡고 가파른 계단이 어두운 땅속으로 이어진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좁은 벽에 부딪혀 울려 퍼진다. 좁은 공간은 한 사람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협소하다. 이곳은 아네르카(Anherkha)의 무덤(Tomb No. 359).
이곳은 한때 손과 도구로 돌을 다듬던 노동자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장소다. 왕들의 이름이 새겨진 화려한 무덤들 뒤편에서, 그 이름을 새긴 장인들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이 무덤을 만들었던 이들은 왕과 신들을 위해 조각을 새겼지만, 정작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작은 낙서 몇 개뿐이었다. 나는 이 어두운 길을 따라 내려가며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은 밤늦게까지 도구를 쥐고 벽을 다듬다가, 하루가 끝나고 마지막 순간, 벽의 작은 틈에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새겼을지도 모른다.
그 이름을 새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곳에서 살았고, 이곳에서 일했다."
그들의 손길이 벽에 남아 있다면, 그 마음도 남아 있지 않을까?
좁은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그들이 이곳을 오갔던 모습을 상상했다. 오늘도 돌을 다듬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일하는 노동자들. 바위 위에 정을 대고 망치를 치던 그 소리가 아직도 벽에 스며 있는 것만 같다. 무덤 벽을 바라보며 손을 뻗어보았다. 혹시라도 그들의 손길과 맞닿을 수 있을까? 어쩌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 벽을 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무덤은 아네르카Anherkha의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 뒤편에 숨어 있는, 이 벽을 깎고 조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곳에서 일했던 '센네젬', '이네르카우', '카' 같은 사람들의 흔적은 남아 있을까? 그들의 손끝이 남긴 마지막 선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벽을 짚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벽돌 하나하나마다, 손으로 깎아낸 흔적들이 있다. 이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남긴 손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남긴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무덤의 벽화들은 장엄했다. 고대 이집트의 전통적인 형식대로, 사후세계의 여정을 그린 그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에 작은 흔적들이 보였다. 나는 벽에 바짝 다가가 손전등을 비추었다. 처음엔 눈에 잘 띄지 않던 글자들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벽의 틈새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글자들.
누군가는 벽을 지나치며 자신의 이름을 새겼고, 또 누군가는 간단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대부분의 기록은 무덤 주인인 아네르카Anherkha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 작은 낙서들은 무덤을 만든 사람들이 남긴 것이었다..
아네르카(Anherkha)는 20 왕조 시기의 왕실 장인이었다. 그는 데이르 엘 메디나(Deir el-Medina)에서 살면서 왕실의 무덤을 조각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조각했던 거대한 왕들의 무덤과 달리 그의 무덤(TT359)은 크고 화려하지 않았다. 그가 왕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정작 그의 무덤은 그와 가족들이 스스로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무덤을 신성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벽화 속에서 그는 가족과 함께 신들에게 경배하고, 사후세계의 풍요로운 삶을 기대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왕실 장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이름 없는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가 남긴 무덤은,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남긴 작은 낙서들로 더 풍성해졌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왕과 귀족들의 삶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의 삶을 새긴 그림이었다. 사진 속 벽화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밀을 거두고 있다. 그들의 손끝에서 싹튼 곡식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풍요로움을 전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했던 장인들도, 이런 생명의 순환처럼 자신의 흔적이 남길 바랐던 걸까?
그들이 남긴 흔적은 단순한 삶의 기록만이 아니었다. 사진 속 장면처럼, 그들은 신에게 기도하며 사후의 삶을 꿈꾸었다. 벽을 보며 간절히 두 손을 모은 이들이 새긴 글자 속에서, "우리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는 작은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센네젬(Sennedjem)은 여기 있었다."
"이네르카우(Inherkhau), 그는 최고의 장인이었다."
"카(Kha)와 그의 동료들은 이곳에서 일했다."
이름들이 벽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이것은 누군가가 살아 있었다는, 존재했다는 흔적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벽에 새겨진 것이다. 나는 손을 뻗어 글자들을 가만히 따라 그렸다. 거칠고 투박한 선들... 정확한 서체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이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살았고, 이곳에서 일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가 그 흔적을 찾아주기를. 이제, 나는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본다.
무덤 안으로 더 들어서자, 벽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신성한 장면들이었다. 오시리스의 심판을 받는 순간, 태양신 라의 배를 타고 가는 여정, 하늘을 나는 매의 형상. 왕과 귀족들의 무덤에서도 익숙하게 보았던 것들이지만, 어딘가 달랐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들의 세계 한편에 너무도 인간적인 장면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한 남자가 가족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들은 사후세계에서도 함께할 것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왕족들의 무덤이 권위와 위엄을 강조했다면, 이곳에는 그보다 더 다정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벽화 속 인물들은 손을 맞잡고 있었고, 아내는 남편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사후세계에서조차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길 바랐던 것일까.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마친 후, 그들이 꿈꾼 것은 신의 은총이 아니라 익숙한 사람들과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런데 벽 한편에서 낯익은 풍경을 발견했다. 밀을 거두고, 곡식을 추수하는 장면. 왕족의 무덤이라면 신들이 하사한 풍요로운 음식을 묘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직접 손으로 거둔 곡식이 벽에 새겨져 있었다. 사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에는 노동의 고됨이 묻어나지 않았다. 죽음 이후의 삶이란, 이승에서 해오던 것을 계속하는 것이라 믿었을까? 아니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그 속에서 고통이 없는 세계를 꿈꾼 것일까. 사후세계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가장 익숙한 것들이 그대로 이어지는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봤던 태양신 라의 배에도 익숙한 모습들이 보였다. 보통 왕과 신들만이 타는 그 배에는 평범한 장인과 노동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무덤을 조각했고, 왕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벽을 채웠다. 그런데도 죽음 후에는 오직 왕과 귀족들만이 태양신의 배를 타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 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벽화 속에서 그들은 직접 신의 배에 올라탔다. 왕을 위해 무덤을 지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노동이 그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다고 믿었다. 그러니 사후에도 자신들 역시 신과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때였다.
무덤을 지키는 한 남자가 나에게 그의 이름을 다시 알려주었다. 이네르카우(Inherkhau). 그도 이곳에서 돌을 다듬고, 무덤을 조각했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이 무덤의 벽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단순한 장인이 아니었다. 신전 건축에 참여했고, 죽음 이후의 삶을 강하게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이네르카우는 여기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나는 존재했다"는 증거였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었을 것이다. 긴 노동을 마친 후,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듯 찾아오는 것.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만나고, 신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나며, 또 하나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 사후세계란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늘 평온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곳의 벽에는 어둠과 혼돈을 상징하는 존재도 함께 남겨져 있었다. 칼을 든 고양이가 거대한 뱀과 대치하고 있었다. 뱀의 몸은 뒤틀려 있었고, 그 위로 우뚝 솟은 나무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양신 라를 위협하는 혼돈의 존재, "아포피스(Apophis)"였다. 밤마다 태양신의 배를 삼키려 하지만, 결국 패배하고 다시 아침이 밝아온다.
그러나 이번엔 태양신 라의 화신인 ‘큰 고양이(Miw-aa)’가 아포피스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생명을 상징하는 돌무화과 나무(sycamore fig tree)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생명나무로 여겨진 이 나무는 사후세계의 영생과 재탄생을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이 벽화는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혼돈과 맞서 싸워야 하는 끝없는 신화적 전투를 상징하고 있었다. 태양신 라는 매일 밤 저승을 지나며 아포피스와 싸워야 했고, 신성한 고양이 미우-아아(Miw-aa)는 그의 대리자로서 악을 무찌르는 존재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었고, 그 길은 반드시 평탄한 것만도 아니었다. 그러나 벽화는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결국 빛이 승리할 것이라고.
벽화를 바라보며 문득,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신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 하는 일이 가치 있고, 언젠가 끝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평온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믿음. 그들의 벽화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덤 안으로 들어서자, 벽에 그려진 연회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집트의 장인들이 남긴 벽화에는 신전과 왕의 위엄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쁨도 함께 담겨 있었다. 긴 노동의 시간 끝에 그들은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포도주를 기울이며 음악과 춤을 즐겼다. 단순한 생존을 넘어, 순간을 기념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
우리는 흔히 고대 이집트의 노동자들을 ‘왕의 무덤을 짓던 일꾼’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의 사회를 이루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단순한 ‘일꾼’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친구와 어울리며 삶의 작은 기쁨을 누렸던 존재들. 노동이 전부였던 삶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공동체가 있었다. 벽화 속 사람들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왕실의 연회 장면에서는 귀족들이 거만한 자세로 앉아 하인들에게 음식을 받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곳의 연회는 다르다. 친구들끼리 서로 마주 보며 웃고, 한 사람이 잔을 기울이면 다른 사람도 함께 따라 웃는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시종이 아닌, 동등한 사람들끼리의 모임. 음악가들이 하프를 연주하고, 여인들은 춤을 춘다. 그들의 손짓은 가볍고 유려하다. 마치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는 듯.
나는 한 남자의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이 벽화를 그렸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센누템(Sennutem).
왕실의 무덤을 조각했던 장인이었고, 사후세계를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잔치를 벌이며 웃고 있다. 그는 생전에도 동료들과 함께 나무 그늘 아래에서 빵을 나누고, 맥주를 마셨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과 함께할 거라 믿었다 그런데 문득, 벽화 속 인물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잔치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조용히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단순히 살아내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순간을 기념하며 살았어.”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들처럼 일과 삶을 자연스럽게 조화롭게 즐기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을 기념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그 질문을 안고, 천천히 벽화를 따라 걸었다.
우리는 대개 왕과 귀족들의 삶을 따라 역사를 읽는다. 거대한 신전, 웅장한 무덤, 그 속에 잠든 강력한 군주들. 하지만 그 돌 하나, 벽 하나를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장엄한 신전을 세우고도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 왕의 무덤을 조각했지만 그들의 손길은 가려진 사람들. 하지만 이곳, 노동자들의 무덤에는 그들 스스로 남긴 흔적이 있다.
나는 벽을 따라 걸으며, 벽화 속 한 남자와 마주쳤다. 그는 다름 아닌 아멘나흐트(Amennakht). 왕실 장인으로서 신전을 지었고, 무덤을 조각했던 사람. 그러나 그가 꿈꾼 것은 신전의 돌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무덤 벽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남겼다. 역사책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름이지만, 이 벽화는 그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아멘나흐트는 단순한 장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무덤의 벽에 직접 낙서를 남긴 사람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일했다. 나는 내 손으로 이 무덤을 조각했다." 이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나는 존재했다."라는 증거였다.
그러고 보니, 이네르카우도, 센네젬도, 카도 모두 같은 신념을 가졌던 것 같다. 왕과 신들을 위해 살아갔지만, 마지막에는 스스로의 이름을 새겼다. 기록되지 않은 이름들이, 여기 이렇게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벽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파라오의 무덤 뒤편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기록했다. 왕들의 무덤이 권위를 말하고 있다면, 이 무덤들은 ‘존재한다’고 외치고 있다.
역사는 왕들의 이야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위해 벽을 쌓고, 신전을 조각했던 이들의 흔적이, 바로 우리가 찾아야 할 이야기이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만든 유산, 그 뒤편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야말로, 역사의 또 다른 중심이 아닐까.
나는 이곳을 떠나며, 조용히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린다. "누가 역사를 만드는가?"
왕들의 이야기가 새겨진 돌들 뒤편에서, 그 이름을 조각한 이들의 손길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흔적을 기억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나는 이 마을을 떠나 이제 귀족들의 무덤으로 향할 것이다. 왕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장인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이제 왕과 함께 제국을 운영했던 자들의 흔적을 따라갈 시간이다. 그러나 귀족들의 무덤에서 마주하게 될 것은 단순히 권력자들의 삶만이 아니다. 그들의 벽에는 자신을 받들었던 시종과 노예, 연회를 즐겁게 했던 악사, 그리고 생전의 호화를 유지해주었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도 함께 남아 있다. 왕국을 다스렸던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일상도 그 안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제국 속에서 서로 얽혀 살아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엿보게 될 것이다. 다음 여정에서도, 왕의 그림자 속에서 권력을 쥐었던 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뒤에서 조용히 삶을 지탱했던 또 다른 이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벽화 속에서, 우리가 지금껏 지나쳐 온 사람들의 얼굴과 닮은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 나그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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