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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될 것인가, 잊힐 것인가

귀족의 무덤(5): 카엠햇&우세르하트 - 나와 마주한 이름 없는 역사

by 나그네 한

곡식으로 제국을 지탱한 자, 그러나 이름조차 흐려진 사람


이 무덤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나는 조금 어지러움을 느꼈다. 햇살은 제법 밝았고, 바람도 살갗에 닿을 정도로 불어왔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공간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벽, 그러나 이미 그 말은 오래전에 사라진 듯한 벽. 손끝으로 가볍게 문지르면 가루처럼 부서질 것 같은 석회, 그리고 그 위에 희미하게 남은 그림의 흔적들.


이곳은 카엠햇(Kaemhat-TT 75)이라는 인물의 무덤이라고 한다.


카엠햇(Kaemhat-TT 75)의 무덤 안

그의 이름은 입구 한쪽 위태롭게 남은 비문에서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부서진 글자들이 많아, 처음엔 정확히 읽히지도 않았다. 누구일까. 이름이 들려도, 여전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벽을 천천히 따라가며 흐릿하게 보이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나는 조금씩 그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되었다. 곡식을 나르는 자들, 소떼를 몰고 들어오는 무리들, 거대한 자루를 창고 안으로 옮기는 장면, 무언가를 기록하는 듯한 손짓.


그는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제국의 식량을 손에 쥐고 있던 자, 왕과 신전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을지도.


당시 왕은 아멘호텝 3세였다고 한다. 이집트 역사상 손꼽히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 화려한 건축과 외교의 시간. 그런 시대에 이 곡창지대를 책임지는 인물이라면, 그의 권한은 꽤나 막강했을 것이다.


"기록했느냐?"
"예, 주인님. 올해는 나일이 잘 넘쳤습니다."
"자루마다 표시해 두라. 왕께서 신전 쪽으로도 보내실 것이다."


나는 남아 있지 않은 그 장면을 벽화 속 움직임으로 상상해 보았다. 말수가 적고, 숫자에 밝고, 손에 잉크가 마르지 않았을 사람. 말보다는 눈으로 주변을 조용히 살피던 사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무덤에서 가장 느껴지는 건 그의 부재다. 그의 얼굴은 지워져 있었고, 중심이어야 할 부분은 오히려 비어 있었다. 이름은 희미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 자막도 없었다. 곡식을 옮기는 인부들의 땀자국은 보이는데, 정작 그 모든 것을 지시했을 주인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왜일까?



한편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아멘호텝 3세의 뒤를 이은 아멘호텝 4세, 훗날 아케나톤으로 불리게 된 파라오는 아문 신 숭배를 철폐하고 아텐 신을 도입하면서, 기존 관료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그 과정에서 신전과 곡물, 세금 등 ‘기존 권위’를 상징하던 인물들이 기록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카엠햇이었을지도...


실제로 벽에는 일부러 긁어낸 흔적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을 법한 공간에선 석회가 일그러져 있었고, 일부는 파내진 듯 움푹 파여 있었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그의 존재를 지우려 했던 것 아닐까?


나는 그 벽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바람 한 줄기가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곁에서 소를 끌던 인부가 멈추어 서며 말하는 듯했다.


"이 자루는 카엠햇께서 직접 확인하신 겁니다."


"그분은 조용히 일하시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왕의 말씀보다 더 무거운 눈을 가지셨죠."


물론, 그 목소리는 내 안에서만 들리는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들이 진심으로 그를 따랐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비록 그는 지금 이름도 흐릿하고, 무덤의 벽화도 그리 선명하진 않지만…


나는 이 침묵 속에서 가장 강한 한마디를 들은 듯했다.


"나도 왕을 받들었노라."

그는 외치지 않았지만, 그의 무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손과 피로 물든 활, 하나의 인물 두 개의 정체성


카엠햇의 무덤을 나왔을 땐, 나도 모르게 한숨이 길어졌다. 그의 무덤에 오래 머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운이 빠졌었다. 말이 없었다. 색이 없었다. 사람도 사라진 듯했다. 이름은 겨우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이름이 불린다는 감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무언가를 기록했던 사람인데, 그의 이야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 허무함이 오래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허전한 마음은, 우세르하트의 무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우세르하트의 화려한 무덤 벽화


빛이 먼저 느껴졌다. 햇살이 무덤 안 깊숙한 곳까지 닿았고, 그 빛을 받아 벽화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의 윤곽이 명확했고, 색은 생각보다 훨씬 뚜렷했다. 검은 머리카락, 주홍빛 허리띠, 연두색 포도덩굴, 반짝이는 붉은 돼지 피… 모든 색이 이 무덤에서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나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다르지? 이곳은 마치 누군가가 매일 손질하고, 먼지를 털어내고, 정리해 둔 것처럼 정갈했다. 실제로 이 무덤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아마도 구조가 단단하고 벽이 마모되지 않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건 단지 보존 상태를 넘어선 어떤 ‘분위기’였다. 말하자면, 이 무덤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졌다.


우세르하트(Userhat - TT 56).

그는 누구였을까?


입구 근처의 비문에 따르면 그는 “궁정 제사장(Priest in the Palace)”이었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기는 아멘호텝 2세, 그러니까 투트모세 3세의 아들이자,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제국의 질서를 다지려 했던 파라오의 시대였다. 그 시기는 이집트가 ‘최고의 정복기’를 지나 이제 왕권을 안정화하고, 종교 의례를 국가 질서의 핵심으로 삼아가던 때였다.


궁정 제사장은 단순한 제사장이 아니었다. 왕궁 내부에서 신과 파라오 사이를 매개하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던 세계 속에서 가장 민감한 자리를 맡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벽을 따라가며 그가 그려진 그림들을 보다 보면, 단지 향로를 들고 의식을 인도하는 장면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때로 활을 들고 말을 몰며, 전차 위에 선다. 들판에서 짐승을 사냥하고, 화살을 날리고, 전리품을 수레에 싣는다. 정적인 제사장의 모습과, 동적인 사냥꾼의 모습이 한 무덤 안에 함께 있는 것이다.


그건 단순한 상징이 아니었다. 벽화 하나하나가 실감 나게 그려져 있었다. 당긴 활의 줄이 얼마나 팽팽했는지, 쏘아진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상상될 정도였다. 반대로 제사 장면에선 손끝이 얼마나 섬세했는지, 향로를 들고 걷는 걸음걸이까지 조심스러워 보였다. 나는 그걸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같은 사람인가요?"


이 시대의 귀족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살아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제사장은 신을 섬기되, 권력과도 가까워야 했고, 백성을 살피되, 왕의 눈을 대신해야 했다. 특히 아멘호텝 2세처럼 군사적 질서를 강조했던 왕 곁에 있었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강인함과 절제가 모두 요구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세르하트는, 단지 직책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균형 위에 놓인 사람이었는지도.

벽화 한 장면 앞에 섰을 때, 나는 그와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두 마리 말이 끄는 전차 위에서 활을 쏘고 있었고, 먼지를 일으키며 짐승들이 달아나고 있었다.

그 순간의 집중, 잡아낸 한숨, 그리고 손끝의 떨림.

‘신을 위한 고기였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고기는 왕의 제단에 바쳐질 것이다. 나는 신의 일을 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냥을 사랑한다. 내 안에 흐르는 본성은 결코 억누를 수 없다."


경건함과 본능.
절제와 충동.

그는 그 사이를 줄타기하듯 살아갔을까?


그의 눈빛은 분명 또렷했다. 벽화에 그려진 얼굴은 작고 정제되어 있었지만, 눈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나를 응시했다. 그 안에는 두려움도 없고, 과시도 없었다. 다만, 어떤 ‘자기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눈빛. 나는 그 앞에서 조용히, 오래도록 멈춰 있었다. 그의 삶은 나와 너무도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자기 안의 ‘두 얼굴’이, 때론 가장 자기 다운 모습이기도 하니까. 그는 단 하나의 역할에만 머물 수 없었던 사람.


그리고 아마… 그건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조공과 제물,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보이는 질서’



나는 무덤 안쪽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갔다.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햇살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지만, 그 빛이 바닥에 닿는 방식이 달라졌고, 벽의 색도 이전보다 더 은은하게 빛났다.

금빛으로 물든 듯한 조용한 공간. 그곳은, 분명 ‘제사의 방’이었다. 아까까지는 활시위를 당기고 전차 위에 올라 있던 그가, 이곳에선 온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손에는 향이 들려 있었고, 눈빛은 아래로 내려져 있었으며, 그 주변은 고요와 질서로 가득했다. 향의 연기가 그려진 선은 흐릿하지만, 그 흐름엔 명확한 방향이 있었다.


그는 신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이끄는 행렬은 끝이 없었다. 포도주를 들고 선 자, 곡식을 담은 바구니를 받쳐 든 자, 꽃다발을 머리에 이고 있는 소녀, 거위와 염소를 모는 소년…

모두가 이 한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이 장면은 단순히 ‘물건을 바치는 그림’이 아니었다. 이건 하나의 기도였고, 동시에 리듬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편적인 약속, 혹은 시간의 의식 같은 것이 벽화에 흐르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은 작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들 모두가 자기 자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어디서 멈춰야 하고, 언제 들어야 하며, 무엇을 드려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몸짓.

그 안엔 소리보다 깊은 침묵이 있었다.


벽 한가운데, 우세르하트가 서 있었다. 이전의 사냥꾼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제사장이 되었고, 그 눈빛은 뭔가를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예배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자신도 이 긴 행렬 중 하나라는 듯이, 앞에 있는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앞엔… 신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림엔 등장하지 않지만, 그 빈 공간이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준비는 그분을 위한 것이다.”


그제야 나는, 이 무덤이 왜 이렇게 고요하게 정돈되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누군가의 ‘삶의 마무리’가 아니라, ‘신 앞에 드리는 제사’였기 때문이다. 우세르하트는 죽음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영원을 준비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행렬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그 뒤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공과 향을 이끌고, 여전히 신 앞에 서 있는 중이다.



나는 벽화 아래 그려진 배 한 척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길고, 가늘고, 사람들로 가득 찬 배.

배는 바람에 실려 가는 것 같았고, 사람들은 똑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 배는 나일강을 건너는 배였을까?


아니면, 삶에서 죽음으로… 아니, 죽음에서 신에게로 향하는 배였을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배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그 배의 행렬, 그 배 안의 사람들, 그리고 이 무덤의 주인 모두가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었다.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물처럼, 향처럼, 기도처럼.


그날, 나는 다시 한번 이집트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에게 죽음은 멈춤이 아니라 ‘제사의 시간’이었고, ‘길 위의 의식’이었다. 그리고 우세르하트는, 그 행렬의 맨 앞에서 여전히 향을 들고 있었다.






기억될 것인가, 잊힐 것인가 – 인간의 마지막 질문


다시 귀족의 무덤 언덕 위에서...


나는 지금, 이 산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처음은 라크미레였다. 수많은 외국 사절들이 조공을 바치던 그 거대한 벽화 앞에서, 나는 이 나라의 질서가 ‘기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멘나의 논길을 걷고, 베니아의 음악을 들었으며, 콘수의 벽화에선 갑작스레 그늘 아래로 들어온 듯한 침묵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 카엠햇의 고요한 방과 우세르하트의 향기로운 제사실을 끝으로, 나는 이 귀족들의 세계를 빠져나왔다.


이 무덤들은 하나같이 작고 닫혀 있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은 컸다. 어떤 이야기는 선명했고, 어떤 이야기는 겨우 들릴 만큼 희미했으며, 어떤 건 아예 문장을 잃은 채 조각조각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흔적은 기억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단지 귀족들의 기억만이 깃든 장소가 아니었다.


벽화의 중심에는 귀족이 있었지만, 그 곁에는 늘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 곡식을 재던 사람, 물건을 나르던 하인, 향을 피우던 여인, 북을 두드리던 악사, 눈빛 한 줄 없이 서 있던 노예…

그들은 모두 말이 없었지만, 눈을 감으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함께 이 나라를 만들었소.”

“우리는 이름 없이도, 이 벽 안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소.”


이 무덤들은 왕국을 지탱한 ‘기억의 보루’였다.

이 나라의 피라미드와 신전은 왕의 이름으로 세워졌지만, 그것을 만든 것은 이름 없는 수많은 손과 발이었다. 이제 나는 그 기억들 위에 서 있다. 내가 지금 걸어 내려오는 이 길은 단지 흙과 돌의 오솔길이 아니라, 수천 년간 ‘기억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의 길이다.


나는 원래 오늘, 람세움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람세스 2세. 파라오 중의 파라오. 기록에 가장 많이 남은 이름. 이제는 그의 신전으로 가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 길목에서 나는, 카엠햇이라는 사람 앞에 멈춰 섰다. 그의 무덤은 말이 없었고, 그림도 지워져 있었으며, 이름조차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는 오히려 더 선명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왜 그는 잊혔는가?”

그 질문이 내 안에 오래 남았고, 나는 그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꾸었다. 람세움이 아닌, 알 미냐 근처의 텔 엘 아마르나로. 카엠햇이 살아 있던 시기, 아멘호텝 3세의 세상이 끝나고, 아멘호텝 4세—아케나톤의 세계가 시작되던 그 전환의 도시.


그곳에서, 왜 어떤 이들은 기억되고 어떤 이들은 지워졌는지, 나는 그 흔적을 다시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다시 룩소르로 돌아와, 아케나톤의 후손 파라오들을 마주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름이 남겨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름이 지워진 사람들의 흔적도 따라 걸어왔다.


귀족들의 무덤은, 그 자체로 작은 왕국이었고, 기억의 신전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들이 남긴 흔적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를 보기 위해, 왕들의 흔적을 따라갈 것이다. 다음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기억을 품은 자들의 완성물, 파라오의 도시로 향하는 시간이다.


사진: 나그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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