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새겨진 이름 없는 기도들
사막의 돌산을 배경으로 조용히 문을 연 펜투의 무덤 앞, 나는 문득 그가 섬겼던 파라오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케나톤. 원래 그의 이름은 아멘호텝 4세였다. 태어날 땐 태양신 아문(Amun)의 축복을 받았지만, 자라며 그는 전통신을 버리고 새로운 신 아텐만을 섬기겠다고 선언했다. 신들뿐 아니라 신전을 운영하던 권력층, 제사장들까지 등을 돌렸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테베를 떠나 이 사막 한가운데 아마르나라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 아무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기에, 그는 스스로를 환영하는 세계를 새로 만들었다.
이 도시에서 펜투는 왕의 옆에 있었다. 왕의 서기관으로서 그는 단순한 충복이 아니었다. 왕의 종교개혁을 함께 껴안은 동지였다. 무덤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연꽃 기둥이다. 단단한 암석을 깎아 만든 이 기둥들은, 아마르나 시대 예술의 조형미를 가장 순수하게 보여준다. 꼭대기의 연꽃 장식은 피어오르기 전 움츠린 봉오리 모양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연꽃은 '태양이 떠오를 때마다 피어나는 영혼의 부활'을 상징했다. 펜투의 무덤을 지탱하는 것은 돌이 아니라, 이 신앙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둥이 늘어선 전당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텐을 향한 제사 장면이 펼쳐진다. 둥근 원반의 태양신 아텐이 광선을 뻗고, 그 끝에는 생명을 상징하는 앙크가 달려 있다. 펜투는 왕과 왕비 곁에 서 있고, 그의 아내도 그 곁에 작게 그려져 있다. 나는 그 장면 앞에 오래 머물렀다. 펜투의 아내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남편 옆에 서 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아텐의 생명의 광선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곁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주어진 위로이자 축복처럼 느껴졌다.
나는 문득 상상해 본다. 어느 날, 무너진 기둥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오후. 펜투는 홀 안쪽에서 왕과 함께 걷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아텐의 숨결이 멈추지 않을 공간이오.”
“정말 그렇게 될까요, 폐하. 사람들의 입은 점점 닫히고, 손가락은 우리를 향해 뻗어오는데요.”
“그래도… 이 빛은 나를 따르오. 당신도 그렇지 않소?”
그 말 뒤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자리에 선 펜투를 상상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광선이 내려오는 벽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 그의 옆에는 아내도 함께 손을 들고 서 있었다. 왕의 명에 따라 그 신을 믿었을 수도 있고, 남편의 신념을 따라 올렸던 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손이 닿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 죽은 자를 깨우는 생기, 살아 있는 자에게 의지를 주는 숨결 같은 빛.
나는 그 앞에서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보았다. 어색했지만, 놀랍도록 평화로웠다. 연꽃 기둥 아래의 침묵은 몇 천 년 동안 수많은 손의 기도를 담아냈을 것이다. 펜투는 이곳에서 몇 번이나 그 손을 들었을까. 종교 개혁의 동반자였던 그가 진심으로 신을 믿었는지, 아니면 왕에게 충성을 다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덤 가득 새겨진 기도와 제사의 흔적은 그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무릎 꿇은 자리에 나도 앉아보았다. 아내와 나란히 서서 기도하는 벽화 속 장면처럼, 내 곁에도 누군가 함께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를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의 비난 속에 살아야 했지만, 그가 꾸민 이 전당만큼은 누구도 침범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이 기둥들은 그의 믿음과 선택을 기억하고 있었다.
펜투는 왕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던 사람일까? 아니면 스스로 한 줄기의 빛이 되고 싶었던 사람일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곳이 단지 장례의 공간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했던 ‘살아 있는 자의 예배당’이라는 것이다. 펜투는 죽어서도 이 자리에 남아 아텐의 빛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기다림의 시간에 잠시 함께 섰다.
사막을 건너 작은 산등성이를 넘자, 메리레의 무덤 입구가 어둡고 조용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첫걸음을 디디는 순간부터, 이곳이 단순한 귀족의 안식처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무덤은 작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곧장 벽면을 가득 채운 아텐 숭배의 장면이 나를 맞이했다. 둥그런 태양 원반, 거기서 뻗어 나온 광선들, 그리고 그 끝에서 생명을 쥔 손들이 왕과 왕비, 그리고 메리레의 머리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아케나톤과 네페르티티는 여전히 화려했고, 신에게 손을 들고 있는 그들의 자세는 이상할 만큼 편안해 보였다.
메리레는 아케나톤의 궁정 관리였고, 이 신앙 개혁의 한복판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왕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는 것, 그것이 곧 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였다. 벽화 속 메리레는 마치 왕의 명령과 신의 뜻을 동시에 받아 적는 듯한 태도로 서 있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과연 이 새로운 신을 믿었을까? 아니면 단지 왕의 신념을 따라 움직인 충직한 관료였을까?
이런 질문을 품고 벽 한쪽을 돌아선 순간, 나는 뜻밖의 흔적과 마주쳤다. 희미한 십자가 하나가 벽에 새겨져 있었다. 석회암 위에 누군가 손톱으로 긁듯이 남긴 그 십자가는, 기이하게도 아텐의 광선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천 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두 신이 하나의 벽에 함께 서 있는 광경이었다. 나는 숨을 멈추고 오래도록 그 벽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그 위에 수많은 신의 이름을 새겼다가, 또 지워갔다. 어떤 신은 찬란한 궁정을 세웠고, 어떤 신은 조용한 표시 하나로 이 벽을 차지했다.
그 십자가는 낙서가 아니었다. 이 무덤이 지어진 지 천 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이곳을 다시 찾은 또 다른 신앙인이 조심스럽게 새긴 흔적이었을 것이다. 이집트가 로마와 비잔틴의 지배 아래 있을 때, 이 사막의 무덤들은 방치되거나 버려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어둠과 침묵 속에서 새로운 예배처를 찾았다. 이집트에서 기독교가 처음 전해진 시대에 폐허된 공간 다시 성소로 삼았고, 벽에 십자가를 새기며 그 공간을 하느님께 드렸다. 그들에게 이 무덤은 더 이상 태양신의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빛의 신을 위한 자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메리레가 아닌, 그 후에 이 무덤에 들어와 십자가를 새긴 이름 없는 누군가를 상상하게 되었다. 그도 빛을 갈망하는 사람이었을까? 폐허가 된 무덤에 들어와, 무너진 신의 흔적들 사이에서 자기가 믿는 신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새겨 넣은 사람. 나는 그 손끝을 떠올렸다. 아마 어떤 확신이거나, 혹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무너진 벽 앞에서도 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다시 벽화를 바라보니, 제물을 들고 있는 무리들이 보였다. 말없이 줄을 서서 곡물과 음식, 향과 꽃을 들고 있다. 이들은 누구에게 이 모든 것을 바쳤을까? 신일까, 아니면 왕일까? 그 신과 왕의 얼굴이 같아질 때, 믿음은 어떤 모양이 되는 걸까? 이 무덤은 그 질문을 가만히 되묻고 있는 듯했다.
좁은 복도를 지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벽을 더듬었다. 부서진 석회, 흐릿한 문양, 무너진 제단의 흔적. 믿음은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까? 시대가 바뀌면 신도 바뀌고, 제단도, 기도도, 모두 새롭게 그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 벽에 새겨진 십자가 하나가 오히려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너의 신은, 네가 그 이름을 새기는 그 순간에 시작된다.”
메리레는 아마도 확신과 두려움 사이에서 이 무덤을 세웠을 것이다. 죽은 후에도 빛을 보게 될 거라는 믿음과, 과연 그 빛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불안함. 그의 무덤은 아직도 그 경계에 서 있었다. 아텐의 광선은 희미해졌지만, 그 자리에 또 다른 빛이 새겨졌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잠시, 내 안의 믿음도 조용히 점검해 보았다.
나는 처음 그 무덤에 들어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잃었다. 거대한 전차, 말들이 굉음을 내며 달리고, 그 위엔 왕과 왕비가 아텐의 광선을 받으며 위엄 있게 서 있었다. 그 장면이,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색이 바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은 전차의 바퀴, 말의 근육, 왕의 손짓 하나하나에 생동감이 넘쳤다. 나는 잠시 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 여긴 정말 ‘살아 있는 무덤’이었다.
이토록 힘찬 도시의 심장박동이 멈춰 있지 않았다.
아크나톤, 아니 아멘호텝 4세.
그는 단순히 이름을 바꾼 게 아니라, 신을 바꾸었다. 다신론의 뿌리 깊은 땅에서, 오직 하나의 신 ‘아텐’만을 섬기겠다고 선언했던 사람. 이집트 전역에 신전들이 세워졌고, 수많은 제사장들이 권력을 누리던 시대에, 그는 왕 자신이 신의 제사장이 되고, 신의 대변자가 되겠다고 나섰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미친 사람? 이단자? 아니면… 혁명가?
그는 테베에서 소외당했고, 권력을 빼앗길 위기에 있었다. 그래서 테베를 떠나, 이 황량한 땅 알마르나에 새로운 도시를 세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빛의 왕국을 세우고자 했다. 그 도시의 중심에는 신전이 있었고, 신전 중심에는 제단이, 그리고 제단 위에는 언제나 아텐의 햇살이 있었다.
나는 Ahmes의 무덤을 걸으며, 이 도시의 맥박을 느꼈다. 곡물을 나르는 사람들, 수레를 끄는 짐승들, 노래를 부르는 악사들, 왕 앞에서 공물을 바치는 자들. 벽화에 묘사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 움직이는 존재였다. 그림 속 사람들은 단순히 장례용 상징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실제로 살아 숨 쉬던 존재였다.
나는 그들 곁을 지나며, 내가 지금 그 도시 안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무덤 안쪽에선 아텐에게 손을 든 두 인물이 보였다. 왕과 왕비, 아니면 그를 따르던 관리였을까. 햇살처럼 뻗은 광선 끝에선 앙크가 내려오고 있었고, 그 손은 사람들의 코와 입에 닿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햇빛이 아니었다. 생명, 그리고 신의 입김이었다.
놀랍도록 세세하게 살아 있는 그 벽화들은 아케나톤이 죽고, 투탕카멘이 즉위한 후 그의 모든 흔적이 지워지려 했던 그 시대에도 살아남았다.
많은 아마르나의 기록과 신전이 훼손되었고, 신의 이름은 돌로 메워졌으며, 왕의 이름은 지워졌고, 사람들은 다시 전통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Ahmes의 무덤은 아직도 그 믿음을 증언하고 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세상이 등을 돌린 그 신앙을, 한 사람은 조용히 이 벽에 새겨 넣었다. 그 손의 방향과, 그 눈의 빛과, 그 발걸음의 순서를 따라가며 나도 어느새,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당신들은 여전히 살아 있군요.”
그 믿음이 정말로 신의 뜻이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시대에, 신 하나를 믿기로 결단했던 아케나톤과 그의 백성들은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 시대를 넘어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보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무덤을 본 적이 없다. 그 벽 속에는 신을 향한 인간의 갈망이 있었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배였던 시대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도시는 지금도 무너진 돌과 부서진 석회 속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빛은 지워지지 않는다.”
무덤을 나서 계단을 내려오는 길, 그제야 비로소 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다. 펜투의 기둥 사이에서 느꼈던 정적, 메리레의 벽에 새겨진 십자가, 그리고 아흐메스의 벽화를 가득 채운 행렬과 제물들. 그것들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이 황량한 사막처럼,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지만, 수천 년 전의 발자국과 기도가 겹겹이 쌓인 땅이었다.
저 멀리 나를 기다리는 버스 옆에서 사람들의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그 너머, 더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나일강의 줄기로 향했다. 강을 따라 다시 테베로, 다시 수도로 돌아간 이들도 있었겠지. 그러나 펜투와 메리레, 아흐메스는 이곳에 남았다. 사막의 가장자리,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진 변방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세계관을 새기고 간직했다.
사막의 고요는 묘하게 말이 많다.
파라오 아케나톤과 그를 따랐던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실패의 역사로만 기억될 수 없다. 왕의 권력은 끝났지만, 그들의 신을 향한 태양빛은 아직도 이 벽에 남아 있었고, 그 빛은 지금 이 사막에도 머물고 있었다. 그들의 무릎이 꺾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먼 아마르나의 땅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바라본다.
그들이 보았던 바로 그 태양을.
사진: 나그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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