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에서 만난 사라진 제국
민야의 베니하산을 떠나 룩소르로 돌아오는 새벽, 버스 창가로 고개를 기울였을 때 나는 그곳에 있었다. 어둠을 뚫고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 그것은 조용한 약속처럼 지평선 위에 걸려 있었다. 어제 나는 바위산을 깎아 만든 무덤 속에서, 천 년 전 귀족들의 일상을 마주했다. 사냥을 나서고, 유희를 즐기고, 곡식을 저장하던 사람들. 그 안엔 장엄함보다 정겨움이, 경외심보다 의외의 웃음이 있었다. 삶을 떠났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풍경이었다.
그런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 나는 다시 길 위에 있다. 아직은 깨어나지 않은 사막과, 그 사막을 가로지르는 외길 고속도로 위를 우리는 묵묵히 달리고 있었다. 회색빛 어둠이 서서히 옅어지고, 태양은 검푸른 하늘을 밀어내며 자신만의 왕국을 밝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눈으로 가 아니라 마음으로 뭔가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기억일까, 아니면 먼 미래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일까. 어쩌면 내가 오늘 만날 어떤 유적, 어떤 돌기둥 하나가 저 태양 빛 속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룩소르에 도착한 나는 언제나처럼 다시 서쪽으로 향했다. 살아 있는 이들의 도시가 동쪽이라면, 서쪽은 죽은 자들의 도시. 하지만 이 도시는 죽음보다는 기억을, 침묵보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나일강을 건너는 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무심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매일을 건너는 이들, 삶을 위해 움직이는 발걸음들. 아이들은 사탕을 들고 있고, 어머니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다. 아버지는 햇빛 아래서 눈을 가린 채 먼 곳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페리를 타자마자 구석에 앉아 조용히 꾸벅꾸벅 졸고 있다.
선장은 구식 조타기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물살을 가른다. 둔탁한 진동이 발끝에 전해질 때마다, 나는 어디론가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이 강이 나를 기억 속 어딘가로 데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서 삶과 죽음은 하루의 물살처럼 함께 흐른다. 언제나 그렇듯, 서로를 향해 잠시 건너가는 것처럼...
배에서 내리자, 나는 익숙한 풍경 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나일강 서쪽의 들판은 오늘도 잔잔했다. 길은 조용했고, 사람들의 삶은 그 위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붉은 천막이 쳐진 장터에 이르자, 고기들이 큼직하게 매달려 있었다. 소의 갈빗살인지 염소의 넓적다리인지, 선홍색 고깃덩이들이 나뭇가지처럼 대롱대롱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물건을 고르고, 상인들은 가격을 외쳤다. 익숙한 생활의 소음. 그 한가운데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비닐봉지를 들고 빠르게 길을 건너고 있었다.
길은 다시 농지로 이어진다. 야자수가 고요한 그림자를 드리운 운하 옆길을 걷는다. 물은 아주 천천히 흐르고, 그 곁의 논밭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채소를 따고 있었다. 아이 하나가 물가에 몸을 담그고 놀고 있으며, 그 뒤로는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좁은 길을 지난다.
이따금 초록과 흙빛 사이로 작고 단정한 모스크가 나타난다. ‘마스지드 아르라흐만’—자비의 모스크. 분홍빛 외벽에 녹색 문이 달린 그곳은 마치 이 들판을 위한 기도처처럼 가만히 놓여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곳은 분명 ‘죽은 자의 땅’이라 불렸는데, 왜 이토록 살아 있는 것일까. 들판을 따라 바람이 불어온다. 생명을 일으키는 나일강의 숨결일까, 아니면 과거를 기억하려는 이곳의 호흡일까.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마주하게 된다.
오늘 소개할 유적, 라메세움. 람세스 2세가 자신을 위해 남긴 거대한 건축물이다. 기둥마다 새겨진 그의 형상, 무너진 석상 아래에 남은 이름들. 어쩌면 그는,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으려 했던 최초의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땅에 수천 년을 버티며 남은 이 건축은, 그의 시든 육체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가 남긴 그 이야기 위를 걷고 있다.
라메세움의 문턱을 넘는 순간, 나는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거실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지금은 비어 있지만, 분명 한때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말하고, 무언가를 올려다보고, 절을 했을 것이다.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선 중앙 회랑은 햇살이 머무는 길이었다. 기둥 하나하나가 해의 각도에 따라 그림자를 길게 뽑아내고, 그 그림자 틈 사이로만 빛이 밀려들었다. 마치 고대의 시간들이 여전히 기둥 사이를 오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말없이 그 사이를 걸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었다. 그날 이곳을 찾은 사람은 나 말고 두세 명 정도였을까. 신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곳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했고, 심지어는 외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곳은 왕의 집, 라메세움.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이름으로 세운 거대한 기억의 전당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이름만큼 뚜렷한 흔적은 많지 않다. 정면의 좌상은 부서져 쓰러진 채 흙더미 사이에 묻혀 있고, 제의실과 외곽 회랑도 군데군데 무너져 있다. 왕의 형상은 희미하고, 벽면 부조는 깎여나간 채, 그 일부만이 겨우 모양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천천히 기둥 옆에 몸을 기댔다. 손을 대자, 돌은 따뜻했다. 낮의 열기를 머금은 기둥은 마치 아직도 왕의 체온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 여기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기둥에 새겨진 인물들은 부서지고, 신들은 이름을 잃어갔고, 왕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정말 람세스 2세의 흔적이 맞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물었다. 그가 남긴 흔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한 모습이었다.
람세스 2세, 그 이름은 누구보다 찬란했다. 90여 년을 살며 이집트 역사상 가장 긴 재위 기간을 누렸고, 카데시 전투의 승리를 부조로 각인시킨 승전의 왕이었으며, 아부심벨과 피라미드들을 능가하는 기념비적 건축으로 후대에 자기를 각인시킨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시간은 돌을 무너뜨리고, 모래는 이름을 덮는다. 아마도 이 집을 지나간 바람들만이 그를 기억할 것이다.
기둥들 사이로 들어온 햇살은 한 점 먼지까지도 부각시켰다. 그 한 줄기 빛은 기둥의 부조를 따라 흘렀고, 잠시 왕의 얼굴을 스쳤다가, 조용히 땅에 내려앉았다. 그 부조 속 왕은 신 앞에 무릎 꿇고 향을 바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의식도 없이 햇살만이 그의 어깨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한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저거 봐! 저거 옛날 왕이야?"
가이드도 없고, 안내판도 거의 없는 이 신전에서, 아이는 기둥의 벽화를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람세스…일 거야, 아마.”
이름은 남았지만, 이야기는 사라졌다. 신전은 무너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그 내면은 오래전에 침묵 속으로 내려앉은 듯했다. 어쩌면 이곳은 무덤보다 더 조용한, 왕의 망각을 위한 무대인지도 모른다.
나는 끝자락의 회랑으로 들어섰다. 아직도 제단의 형상이 남아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위엔 제사장이 없고, 그 주변엔 향 냄새도 없고, 오직 햇살만이 그 돌 위를 쓰다듬고 있었다. 정적. 그리고 그 속의 미세한 숨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왕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부서진 석좌. 다시는 주인을 기다리지 않는 의자.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마음속으로 마지막 문장을 떠올렸다.
지금은 누구도 앉지 않는 왕의 석좌 위로, 햇살만이 다녀간다.
햇살은 천천히 기둥 너머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바람 한 줄기 없이 정적만이 흘렀던 라메세움의 안쪽 벽면, 나는 그곳에서 고개를 들어 부조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신들이 있었다.
신에게 향을 바치고 무릎 꿇은 왕, 손에 생명의 열쇠를 들고 왕의 이마를 어루만지는 신의 모습,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 장면을 둘러싼 상형문자들. 세상은 조용했지만, 돌에 남은 장면들은 마치 제사 의식을 재연하듯 또렷했다.
나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신과 왕의 만남이, 그 섬세한 선 하나하나가 이제야 실제로 다가왔다. 왕은 신에게서 생명을 받는다. 신은 왕에게 통치를 위임한다. 그 위임은 신전이라는 공간을 통해 반복적으로, 예식적으로, 그리고 엄숙하게 재현되었을 것이다. 제국은 이 의식들을 통해 자신들의 질서를 ‘신성화’했다. 정치가 종교였고, 종교는 곧 통치였다. 그런 면에서 라메세움은 단지 왕의 무덤이 아니었다. 이것은 제국의 심장, 신과 인간이 만나는 가장 거룩한 무대였다.
벽면 아래에는 신의 배를 운반하는 행렬 부조가 남아 있었다. 신의 형상을 실은 배는 사람들에 의해 어깨 위로 메어졌고, 그들은 일정한 걸음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은 하늘에 있는 존재이면서도, 물 위를 떠다니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래서 중요한 축제 때면, 신의 조각상을 태운 배를 실제로 나일강 위에 띄우거나, 행렬을 구성해 신전을 돌았던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무언가를 바치고 싶어 한다. 그 대상이 하늘이든, 권력이든, 혹은 자신이든."
고대 이집트인들이 섬긴 신들은 실은 권력 그 자체였다. 신의 옆에는 언제나 왕이 있었고, 왕은 신의 의지를 대행하는 자였다. 왕이 신에게 무릎을 꿇는 형식이었지만, 실은 그 장면을 보는 백성들에게는 왕이야말로 신의 허락을 받은 자, 신과의 통로였다. 제사 의식은 종교이면서도 정치였다. 제국은 그것으로 스스로의 질서를 정당화했다.
라메세움 한쪽에는 원숭이상이 있다. 어깨를 들고 무언가를 경청하듯 서 있는 원숭이 형상들. 이들은 ‘지혜’를 상징하고, 하토르 여신 혹은 달의 신 투트와 관련 있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문득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지금은 아무도 그들에게 경배하지 않는다. 아무도 이 원숭이상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지 않는다. 관광객들은 그저 카메라 셔터를 누르거나, 어깨를 으쓱이며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돌은 알고 있다. 언젠가 이 돌 위에서도 사람들이 멈춰 섰고, 무언가를 바쳤으며, 고요히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을 시간들을.
또 다른 벽면에서는 람세스 2세가 아몬-라 신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신은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인간처럼 앉아 있었고, 인간의 언어로 왕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왕은 향을 들고 신 앞에 다가가고, 신은 생명의 기호를 왕의 코 앞에 가져간다.
이것은 생명의 호흡.
왕은 여기서 다시 태어난다.
이 장면이 수없이 반복되고 재현되며, 왕은 인간을 넘어서 ‘신의 아들’로 남는다. 하지만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나는, 한 발 뒤로 물러나 관찰자일 뿐이다. 향은 피워지지 않고, 예식은 더 이상 없다. 나는 오직 부서진 그림자들 속에서 ‘그들’이 남기고자 했던 목소리를 추측할 수밖에 없다.
지금 라메세움에는 신도 없고, 제사장도 없고, 왕도 없다. 단지 햇살과 모래, 그리고 몇 마리 비둘기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느낀다. 돌에 새겨진 신의 얼굴들 속에는 여전히 누군가를 향한 갈망이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다른 모양의 신전에서, 다른 형상의 신 앞에서 무언가를 바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돌무더기 사이로 발끝이 푹 꺼질 때, 나는 문득 이곳에 남겨진 모든 것들이 ‘무너졌음에도 사라지지 않은 것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라메세움은 사실 그렇게 인상적인 유적이 아니다. 처음 이집트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이 신전의 이름은 생소하기까지 하다. 누구나 가는 왕가의 계곡이나 하셉수트 신전과는 달리, 이곳은 많이 훼손되었고, 오래된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입구 근처에서 만난 사람도, 안으로 들어온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고요는 더 짙었다.
나는 카메라 장비를 들고 서성이는 젊은 다큐멘터리 촬영팀을 지나쳐 조심스레 돌기둥들 사이를 걸었다. 한 사람은 렌즈를 교체하고 있었고, 또 다른 이는 기둥 아래에 앉아 무언가를 조용히 적고 있었다. 바람도 사람도 조용했다. 이 신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나는 내 마음 한 귀퉁이와도 비슷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게, 그 람세스 2세의 흔적이라고요?”
그 질문은 내 것이기도 했다.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파라오, 가장 오랫동안 통치했고, 신의 대리인이자 전쟁의 영웅으로 불렸던 람세스 2세. 하지만 이 신전에서 그의 흔적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많은 기둥들이 무너졌고, 왕의 형상은 대부분 깨졌거나 훼손되었다. 왕좌에 앉아 신을 마주 보던 부조도, 이제는 균열과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남기고자 했던 왕의 욕망이 결국 모래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를 위해 세워진 이곳에, 지금은 누구도 머물지 않는다.
이제 그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건, 햇살뿐이다.
무너진 문 위에는 수십 마리의 비둘기들이 앉아 있었다. 아마 그곳은 그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바람 잘 통하는 장소일 것이다. 바위틈엔 나무 씨앗이 박혀 자라고 있었고, 기둥 그늘 아래는 더위를 피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잠들어 있었다. 람세스의 이름으로 세운 돌 위에, 지금은 이름 없는 존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인간의 흔적은 사라지고, 그 위에 자연이 다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진기자들이 렌즈를 조절하며 이런 순간들을 포착하려 애쓸 때, 나는 그저 멀리 무너진 문을 바라보았다. 그 문은 한때 제국의 문이었다. 기념비이자 입구였고, 신과 인간이 만나는 의식의 시작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쪽이 허물어지고, 기둥의 균열 사이로 들판의 푸른 평야가 보인다. 어쩌면, 지금의 이 문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일지도 모른다. 한때 ‘영원’이라 불리던 권력의 시간과,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연결하는 문.
누군가 그랬다. 폐허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머문 것이라고.
라메세움은 무너졌지만, 그 기억은 여기 있다. 그 돌 위에 앉은 비둘기처럼, 누군가의 어깨 위에서 조용히 머물며. 나는 문을 지나며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진짜 왕국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 석조의 천장 위?
그 햇살 사이로 드리운 왕의 이름 아래?
아니면 지금,
사진을 찍는 그들의 눈동자 속에?
내가 조용히 걸어온 이 발자국 사이에?
이름을 남기려는 자와, 이름을 부르려는 자. 그 둘 사이에는 늘 시간이라는 벽이 존재한다. 람세스 2세는 이곳에 신을 새기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했다. 신의 권위 뒤에 자신의 권좌를 세우고, 제국의 숨결을 돌에 아로새겼다. 하지만 지금, 이 무너진 신전에서 그의 이름을 또렷이 부르는 이는 없다.
조각난 석상 아래, 관광객들은 스쳐가고, 비둘기들은 해가 드는 틈을 찾아 날아든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멈춘다. 빛이 스며든 돌기둥 하나에 손을 얹는다. 이름도, 의미도 잊힌 한 조각. 바로 그것이 나에겐 가장 진실한 예배처럼 느껴진다.
왕은 신에게 영원한 이름을 새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없다. 그 대신 바람이 분다. 그 사이로 나는 조용히 이름 없는 돌 하나를 만진다. 그것이 나의 예배다.
사진: 나그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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