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하산 무덤에서 마주한 ‘살아 있는 유산’
아마르나의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은 조용했다. Pentu의 무덤에 새겨진 그 기이한 정적, Meryre 무덤 벽에 남겨진 기도 없는 제사의 흔적, 그리고 Ahmes의 좁은 회랑에서 마주한 한 줄의 이름 없는 문장들. 모두가 유일신을 향했던 파라오의 그림자를 안고 있었다. 나는 그 흔적을 따라 충분히 머물렀다고 느꼈고, 이제 다시 룩소르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익숙한 남쪽, 내가 머물렀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은 한층 더 빠르고 쉬운 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일강은 언제나 예상 밖의 여지를 남긴다."
길가에 난 흙길을 따라 걷다가 잠시 그늘을 찾았다. 잔가지와 야자수 껍질로 얼기설기 엮은 울타리 안쪽엔 소들과 염소, 당나귀가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커다란 검은 물소 한 마리는 나를 힐끔 쳐다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덩그러니 놓인 플라스틱 양동이 몇 개와 바짝 마른 사탕수수 줄기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쉰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너무도 평화로운 농가였다.
바로 그때였다. 낡은 갈색 갤라비야를 입은 한 남자가 양동이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내게 가볍게 인사하며 소 옆에 물을 채워주고,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여행자 같군요. 룩소르로 가시나요?”
“예. 방금 아마르나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말없이 옆에 놓인 나무 의자를 손짓했다. 내가 앉자마자, 마치 오래 생각해 온 이야기처럼 입을 열었다.
“룩소르는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베니하산(Beni Hasan)은… 때를 맞춰야 합니다. 지금, 이 강의 물결이 말할 때. 지금이 바로 그때예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베니하산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쪽 언덕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강 너머 절벽 위. 귀족들의 무덤이 줄지어 있지요. 하지만 그곳엔 단지 무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삶이 살아 있습니다. 노동, 축제, 장례, 사냥, 유년기, 싸움, 기도, 꿈... 그 모든 것이 그 벽에 남아 있죠.”
그는 말을 멈추고 내게 찬물 한 잔을 건넸다. 그 사이 염소 한 마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볏짚을 씹고 있었고, 멀리 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가 가리킨 언덕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나는 다시 짐을 풀고, 다시 가방을 챙겼다. 돌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숨결을 따라, 그들의 ‘살았던 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베니하산(Beni Hasan).
지도 위에서 보면 어중간하다. 룩소르처럼 찬란하지도 않고, 사카라처럼 오래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중간하다는 말은, 사실 ‘가장 사람다운 자리에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고대 이집트의 중심이 룩소르였다면, 이곳은 그보다 북쪽. 나일강 동편 절벽 위에 조용히 자리한 고지대다. 바로 이 언덕 위엔 39개의 무덤이 있다.
그중 소수의 무덤이 공개되어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왕족이 아닌 지방 귀족들, 혹은 총독의 무덤이다. 이들은 왕이 아니었지만, 한 지방을 다스리고, 군대를 조직하며, 무역을 책임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하려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죽은 뒤에도 ‘자신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을 벽에 남겼다. 이집트의 무덤 중에서도 베니하산만큼 노동, 일상, 무술, 축제, 어린이의 장난까지 그려 넣은 곳은 드물다.
지금 우리가 보는 베니하산의 주요 무덤은 대부분 제11왕조 후반에서 제12왕조 초반, 즉 기원전 20세기 전후에 만들어졌다. 이 시기는 이집트가 혼란의 시대인 제1중 간기를 지나, 중앙집권으로 재정비되던 과도기였다. 왕의 권력이 완전히 강하지 않았기에 지방 총독들의 자율성이 컸고, 그만큼 이들은 자기 권위와 삶을 기록할 필요가 있었다.
룩소르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요충지였던 베니하산. 이곳은 중이집트로 향하는 주요 무역로, 나일강의 수로가 만나는 전략적 지점이었다. 그 때문에 총독의 무덤은 높은 곳에 지어졌다. 나일을 내려다보며 후손에게 “나는 여기 있었다”라고 말하는 언덕. 그리고 그 언덕, 그 바위 무덤 중 하나가 지금 내가 발을 들여놓은 이곳, "크눔호텝 2세(Khnumhotep II)"의 무덤이다.
좁은 돌계단을 타고 언덕을 오르며,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나일강이 내 발아래서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고, 강가의 농촌은 여전히 잔잔했다. 고요한 풍경은 마치 "이곳에 왜 왔느냐"라고 묻는 것 같았지만, 사실 난 이 무덤이 ‘지금’에 더 가깝게 느껴져 꼭 보고 싶었다. 무덤 입구는 마치 바위산에 덜컥 난 상처 같았다. 화려한 문 주도, 탑문도 없었다. 도굴의 흔적 없이도, 자연스레 고요한 죽음의 공간. 하지만 안으로 한 발 내디뎠을 때—나는 알았다. 이 무덤은 죽은 자의 집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기록실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내 시선을 붙잡은 건 무덤의 정면 벽, 바로 그 중심 위에 우뚝 선 크눔호텝 2세였다. 그는 커다란 의장용 지팡이를 손에 쥐고,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디딘 채 풍요와 권위를 품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호위병들이 서 있었고, 그 아래로는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이 무덤의 주인일 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질서를 세우고 생명을 관리했던 하나의 세계 그 자체였다. 그 아래쪽에는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노동을 감당하고 있었다. 한 사내는 큰 항아리를 어깨에 이고, 물을 나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노새를 끌고 걸어가며, 뒤를 따르는 염소 떼를 향해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그들 곁에서 나는 조용히 서 있다, 속으로 말을 걸었다.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혼자 다 들고 계신가요?”
그 사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건 짐이 아니라, 주인의 안녕을 위한 물이오. 크눔호텝 님이 물을 흘리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균형을 잡는 거지.”
다른 벽면에선 젊은이들이 곡식을 짓고, 맷돌을 돌리며 음식을 준비하거나 석조를 깎는 장면이 이어졌다. 흙벽돌을 굽는 불꽃 옆에서 땀을 닦는 사람, 새끼줄을 꼬아 무엇인가를 엮고 있는 장인의 손끝도 눈에 들어왔다.
“당신은 무얼 만들고 있는 건가요?”
나는 그렇게 묻자, 허리를 굽혀 짚을 엮던 장인이 고개를 돌린다.
“집을 지을 지붕도, 주인의 관을 덮을 천도… 모두 내 손을 거칩니다. 우리의 노동이 없었다면, 당신은 이 무덤을 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나는 멈칫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 모든 화려한 무덤과 권위는, 사람들의 손끝에서 시작되어, 그들의 삶을 담아내고 있었으니까. 구석에는 아이를 업은 여인도, 다툼을 말리는 장면도, 양 떼를 몰아가는 목동의 평화로운 뒷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심지어, 동물과 마주 앉아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한 사람의 모습도 있었다. 나는 무심코 그 장면 앞에 멈춰 섰다.
“왜 그리 다정하게 앉아 있는 거죠? 염소와 그렇게 눈을 마주치고 말이에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 아이는 하루 종일 나랑 같이 일하거든요. 우리가 함께 크눔호텝 님의 잔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저녁이 되면, 이 아이가 제일 먼저 기뻐할 거예요. 여물보다 기쁜 건, 일과 후의 말벗이거든요.”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무덤의 벽화는 ‘죽은 자의 공간’이 아니라, ‘살았던 자들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웃고, 일하고, 다투고, 돕던 그 모든 삶의 단면이 조용한 벽 위에 스며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고요히 서 있는 나 자신이 있었다. 관람객이 아니라, 이 무덤을 짓는 사람들 중 하나처럼. 혹은 저 멀리 염소를 끌고 들어오는 목동의 친구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되뇐다.
“이곳은 귀족의 무덤이 아니라, 마을의 초상이다.”
무덤의 중심에는 크눔호텝 2세가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원하는 건, 중심이 아니라 조율자였다. 그는 무덤의 정면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지만, 그 시선은 스스로를 향해 있지 않다. 오히려 수십 명의 사람들—농부, 요리사, 짐꾼, 장인—그리고 가축과 새들, 그 모든 존재들이 이 세계의 진짜 주인처럼 살아 움직인다. 이곳은 하나의 마을이고, 하나의 이상 사회이며, 그가 꿈꾼 세계의 축소판이다.
그는 단순한 귀족이 아니었다. 그는 상이집트 12번째 주의 총독으로서, 중앙의 왕권과 지방의 자율 사이에서 균형을 잡던 인물이었다. 당시의 시대는 제12왕조, 강력한 중앙 집권이 시도되던 때였고, 그 안에서 크눔호텝 2세는 ‘충성된 지방 통치자’로서, 자신의 영향력과 이상을 이 무덤 안에 새겨두려 했던 것이다.
무덤의 벽화를 따라 걷다 보면, 그는 단 한 번도 혼자 등장하지 않는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고, 그 옆에는 늘 노동과 일상이 흐르고 있다. 그는 권력을 과시하기보다, 공동체를 그려 넣는다. 집을 짓는 이, 곡식을 까는 이, 소를 돌보는 이, 아이를 안고 있는 이, 심지어 말다툼을 말리는 장면까지— 그의 벽화는 치장된 이상향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 유지되는 하나의 생태계를 보여준다.
무덤 내부의 기둥에는 그의 다양한 직책과 명예로운 칭호들이 새겨져 있다. 왕실 문서를 다루던 서기, 신전과 제사장들을 감독하던 관리자, 그리고 ‘왕의 친구’라 불리던 가까운 신하로서의 자리. 그러나 이 벽화들을 보고 나면,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권력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땅을 일구었던 사람들의 평화로운 얼굴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 벽 앞에 잠시 멈춰 섰다.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문구 대신, 마을의 일상을 그려 넣은 그 마음이 궁금했다.
“당신은,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벽에 남기셨나요?”
문득, 정면 벽에 새겨진 그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바람이 벽을 스치며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테니. 나를 만든 것은, 나를 섬긴 이들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삶을 지킨 사람들이었다오.”
순간, 무덤 안은 더 이상 죽음의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은 "삶을 기억하고, 질서와 책임과 조화를 기리는 하나의 '기억의 도시'"였다. 나는 돌아서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무덤을 바라봤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무덤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입니다.”
아멘엠하트의 방 – 곡물보다 귀한 기억들
“여기도 무덤인가요?”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어선 게 아닐까 싶었다. 무덤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시장의 벽을 마주한 듯했기 때문이다. 아멘엠하트(Amenemhat)의 무덤은, 말하자면 벽화의 박람회장이었다. 크게 뻗은 어깨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가발을 쓴 주인의 형상이 정중앙에 서 있었고, 그를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바치고, 운반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가 멈춰 선 자리, 가장 눈길을 끈 건 곡물을 달아 무게를 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양팔 저울의 균형을 맞추며 무게를 재는 장면은 단순한 경제 행위를 넘어서, 그 시대의 질서와 신뢰를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저울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무게는 무엇을 기준으로 재는 걸까… 곡물? 땀방울? 아니면 충성심?”
벽의 왼편에는 커다란 항아리를 만들고, 도자기를 굽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 장인은 말없이 항아리 안을 고르게 다듬고 있었고, 그 곁에서 또 다른 이들은 흙덩이를 옮겨 오거나 불을 지폈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다가가 묻는 상상을 했다.
“당신은 지금 무얼 만들고 있나요?”
그는 잠시 나를 돌아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건 주인의 관을 위한 기름 항아리예요. 향기를 담는 그릇이죠. 사람들은 죽으면 향기를 잃지만, 우리는 그 향을 기억 속에 담아두려 해요.”
내 시선이 다음으로 멈춘 곳은 두꺼운 덩이를 이고 가는 남자들이었다. 그들의 등엔 커다란 빵 혹은 고기 덩어리 같은 것이 있었고, 나란히 걷는 모습은 마치 제사의 행렬처럼 보였다. 그 뒤편엔 무희들이 팔을 벌리고, 다리를 들어 올려 춤을 추고 있었고, 그 장면은 장례가 아닌 ‘잔치’를 연상케 했다. 무덤이라면 슬픔과 죽음의 공간일 텐데, 이 벽화들엔 삶의 향기와 노동의 움직임이 가득했다.
이곳의 주인, 아멘엠하트는 마치 자신이 살았던 삶의 일부를 벽에 옮겨놓으려 했던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어깨너머에서 한 농부가 쟁기를 끌며 흙을 갈고 있는 장면을 바라봤다. 쟁기를 당기는 사람들이 무려 열 명, 줄을 쭉 늘어선 그들의 손은 하나같이 땀에 젖어 있었지만, 그 표정은 어딘가 평온해 보였다.
“힘들지 않으세요?”
내가 묻자, 앞장선 사내가 잠시 멈추며 나를 돌아본다.
“힘들긴 하지만… 땅이 길을 열면, 우리도 길을 얻는 거지. 게다가 이 땅은 주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밥이 되거든요.”
그 말이 귓가에 머무른 채, 나는 무덤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여기엔 신도, 신화도 없었다. 벽화는 오직 사람들만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의 손과 발, 어깨와 무릎, 음식을 나르는 손짓과 서로를 부축하는 팔. 삶을 새긴 선들이었다. 마지막 벽엔 바구니에 물고기를 담는 장면이 있었다. 물고기는 흐릿하게 흐려져 있었지만, 아직도 그 물비늘이 반짝이는 듯 느껴졌다.
아멘엠하트는, 이 벽화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내가 누렸던 권위’가 아니라, ‘내가 함께했던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고 했던 건 아닐까.
나는 조용히 문밖으로 나와 뒤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무덤의 중앙에 서 있었고, 마을은 그를 둘러싼 수백 명의 사람들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죽은 자의 집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거울.”
그것이 이 무덤을 나선 뒤, 내가 마음속에 남긴 한 문장이었다.
Amenemhat의 방에서 나온 뒤, 나는 한동안 문턱에 앉아 바깥의 햇빛을 바라보았다. 무덤이라기보다 작은 마을처럼 느껴졌던 그 공간. 그런데 그 옆, 조금은 가파른 돌계단 너머로 또 하나의 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Khety(케티)의 무덤이었다.
문을 넘자마자,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이곳은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엄숙함보다 활기, 장중함보다 생기가 먼저 다가왔다.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벽 한가득 펼쳐진 사냥 장면이었다. 어깨너머로 그물을 펼치고 사슴을 몰아가는 무리들. 어떤 이는 활을 들고 있었고, 또 다른 이는 사냥개를 끌고 뛰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 중 한 명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물론, 내 상상의 대화다.
“그렇게까지 달려야 하나요?”
그는 숨을 몰아쉬며 웃는다.
“사냥은 속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협동이 중요해요. 놓치면 하루를 굶으니까요.”
그 말 한마디에, 이 무덤의 톤이 달라졌다. 이곳은 귀족의 전시실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공동의 기억처럼 느껴졌다.
다른 벽면에는 무게를 재고, 거래를 나누는 장면들이 펼쳐져 있었다. 남자들은 항아리를 들고 저울에 올리며, 서로 손짓으로 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 옆에선 아이들이 무언가를 찧고, 떠들며 장난치는 모습도 있었다.
“이건 시장인가요?”
내 질문에 한 소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시장도 되고, 축제도 돼요. 오늘은 케티 님의 날이거든요!”
그 말이 맞다면, 이 모든 장면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한 마을 전체의 축제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를 멈추게 한 곳은—레슬링 장면이었다. 무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한 이 장면은, 그 어떤 기념비보다도 강렬했다.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땅을 박차고, 어깨를 부딪치고, 서로를 들어 올리고, 굴러 넘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 가운데 가장 힘차게 상대를 넘기는 한 사내에게 물었다.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그는 잠시 숨을 고르다, 이렇게 말했다.
“힘을 겨루는 게 아니에요. 서로를 믿는 연습이죠.”
그 말이 가슴을 울렸다. 싸움이 아니라 신뢰라니. 이 벽화를 남긴 이들의 감각은, 그저 ‘죽은 자의 삶’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동체의 미학’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케티는 거대한 음식상이 앞에 놓인 채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엔 생선과 채소, 과일과 빵이 가득했고, 줄지은 사람들이 음식을 나르며 그 앞에 정성스럽게 놓고 있었다. 케티의 표정은 권위보다 따뜻함에 가까웠다. 마치 마을의 아버지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였나요?”
대답은 없었지만, 무덤 전체가 그 질문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이곳은 케티 한 사람의 무덤이 아니라, 그의 손에 이끌려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공동 기억'이었다. 웃고, 일하고, 겨루고, 나누었던 사람들의 마을. 그리고 그 마을의 중심에, 조용히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한 사람—
Khety가 있었다.
케티의 방에서 나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베니하산의 바람이 조용히 옷자락을 흔들고 있었고, 먼 나일강은 이따금씩 햇빛을 튕기며 흐르고 있었다. 세 개의 무덤을 돌며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귀족과 농부, 어부와 무희, 항아리를 이고 가는 이들과 싸움을 말리는 이들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직 무언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관리인이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바켓 3세 무덤은 안 가셨나요?”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요. 마지막으로 거길 가볼까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셔야 해요. 그분의 무덤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움직임?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 채, 조용히 마지막 무덤의 문턱을 넘었다.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벽면 전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진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장면들은 정지된 채로도 마치 끊임없이 살아가는 듯한 감각을 주었다. 젊은이들이 뒤엉켜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넘어지고, 누군가는 몸을 튕기며 일어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상대를 들어 올려 곧장 다시 땅으로 내리꽂고 있었다.
레슬링이었다. 케티의 방에서도 레슬링이 있었다. 그곳에서 젊은이들은 어깨를 부딪치며 몸의 힘을 겨뤘고, 나는 그 장면에서 '서로를 믿는 연습'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이곳, 바켓 3세의 무덤에서 마주한 레슬링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여기서의 싸움은 더욱 다양하고, 더욱 복잡했다. 어떤 이들은 상대를 들어 올리고, 어떤 이들은 땅에 바짝 엎드려 상대의 틈을 노렸다. 기술은 세밀했고, 동작은 예술처럼 반복되었다. 단순한 힘겨루기를 넘어, 마치 하나의 무용처럼, 그들의 움직임은 리듬과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벽 속의 한 젊은이에게 다시 물어본다.
“너희는 무엇을 위해 이리도 싸우고 있니?”
그는 숨을 고르며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를 밀지 않아요. 서로를 세우는 법을 배우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법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앞의 벽화는 단순한 체육 장면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도 이어지는 삶의 언어였고, 신체와 정신을 동시에 단련하는 공동체의 기술이자 미학이었다.
다른 쪽 벽에는 사냥 장면이 있었다. 활을 든 사람들이 사슴을 좇고 있었고, 덫을 놓거나 그물을 펼치는 이들의 손짓은 정밀하고도 부드러웠다. 놀랍도록 자연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먹을거리를 위한 사냥이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 곁엔 사슴과 영양, 들소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떤 동물들은 마치 사람과 함께 대화라도 나누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벽은, 싸움과 사냥을 그리지만, 동시에 관계와 조화를 말하고 있구나.”
그리고 무덤의 끝자락, 바켓 3세는 벽 한가운데에 조용히 서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지도 않고, 다른 이들처럼 큰 행렬에 둘러싸여 있지도 않았다. 그는 홀로, 그러나 단단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팔을 들어 손짓하는 그의 모습은 명령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질문처럼 보였다. ‘이제 너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그의 시선 아래에는 무게를 재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항아리를 옮기고, 곡식을 덜어내고, 서로 손짓으로 주고받는 사람들. 그들 하나하나는 움직임 속에 있었고, 그 모든 동작이 마치 하나의 리듬처럼 벽에 남겨져 있었다. 마지막 벽면에 서 있는 바켓 3세는 그 장면을 감시하는 자가 아니라, 함께 지켜보는 자였다.
이 무덤의 주인은 권위를 과시하지 않는다. 그는 마을의 질서를 남기는 기록자이며, 삶의 조화를 그린 편집자였다. 이곳은 단순한 사자의 집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남긴 하나의 교본 같았다. 누구를 지배했는가 보다, 누구와 함께 살았는가를 묻는 공간. 바켓 3세는 그 물음 앞에서 조용히 손을 들고, 그 곁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문턱을 넘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덤이 이렇게 생생해도 되는 걸까?”
그러나 곧 내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이건 무덤이 아니라, 삶의 기념이다.”
바켓 3세의 무덤은 말한다. 우리는 죽음을 위해 준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을 움직이며 흔적을 남기는 존재라고. 그래서 나는 돌아서기 전 마지막으로 조용히 되뇐다.
“당신은 사람들의 싸움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넘어지고,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베니하산의 마지막 장면은 ‘죽음의 끝’이 아니라, ‘삶의 기술’이었다.
나는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집트의 심장처럼 고요히 흐르는 나일강을 바라보았다. 아득히 펼쳐진 초록의 들판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야자수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저 강물을 긷고, 땅을 갈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것이다.
그 삶이, 수천 년 전 바켓 3세가 남긴 벽화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방을 다시 들었다.
이제 익숙한 남쪽, 룩소르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발걸음은 전과 같지 않다. 나는 한 마을의 기억을 품었고, 그 기억은 더 이상 돌이 아닌, 사람들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 되었다. 베니하산은 작별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삶은, 기억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사진: 나그네 한
#베니하산 #크눔호텝2세무덤 #아멘엠하트무덤 #케티무덤 #바켓3세무덤 #삶의기념 #움직이는벽화 #중왕국귀족무덤 #이집트노동의기록 #무덤속삶 #사람의풍경 #삶의기술 #기억의언덕 #이집트벽화미학 #나일강과기억 #살아있는무덤 #귀족의초상 #공동체의기록 #죽음이아닌삶 #베니하산의바람 #이집트일상사 #무덤속시장 #무덤속축제 #레슬링벽화 #사냥과공존 #삶의미학 #삶의기록자 #삶을그린무덤 #이집트지방사 #사람을남긴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