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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서, 그 안을 걷다

람세스 5세와 6세가 남긴 통과의 길

by 나그네 한

람세스 4세의 무덤을 나와 계곡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갔다. 여전히 태양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바위들은 모두 침묵하는 중이었다. 방금 전까지 둘러본 KV2, 람세스 4세의 무덤은 상대적으로 짧고 간결했지만, 그 안에는 한 파라오의 야망이 벽에 새겨진 듯했다. 아직은 살아 있으려는 권위, 아직은 파라오로서 무엇을 남기고 싶었던 인간의 손짓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러나 발걸음을 KV9로 옮기자, 그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여긴 좀 더 깊고, 좀 더 넓고, 어쩐지 조금 더 안으로 침잠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언가가 이어지되, 무엇인가가 사라진 자리처럼...



KV9. 일반적으로 '람세스 6세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그를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원래 이곳은 그의 삼촌, 람세스 5세를 위해 조성되던 무덤이었다. 그러나 람세스 5세는 무덤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은 조카, 람세스 6세가 이 미완의 무덤을 넘겨받아 자신의 것으로 바꾸었다. 무덤을 확장하고 장식하고, 온전히 자신의 세계관과 신앙, 영원의 설계를 담아낸 것이다. 하지만 시작이 타인의 이름에서 출발한 무덤이라는 사실은 이곳에 독특한 정서를 불어넣는다. 본래 하나의 파라오를 위한 장소에 두 파라오의 이름이 덧씌워졌고, 결국 하나의 무덤이 둘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그 결정 뒤에는 정치적, 재정적 배경이 있었다. 람세스 6세가 살았던 20 왕조는 이미 예전의 위세를 잃고 있었다. 행정은 느슨했고, 신관 세력과의 균형도 깨져가고 있었으며, 왕실 재정은 고갈 직전이었다. 더 이상 한 파라오를 위한 웅장한 무덤을 새로 짓는 일은, 시대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왕조의 권위가 꺾이고, 민심은 사원으로 쏠렸으며, 파라오는 점차 이름만 남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시대의 한복판에서, 무덤을 물려받고 확장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왕다운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무덤이 곧 권위의 상징이었고, 죽은 뒤의 세계가 왕권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장치였다면, 그 무덤을 완성하는 자가 진짜 왕인 셈이니까.


KV9는 왕가의 계곡에서도 중심부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무덤이 바로 투탕카멘 무덤(KV62)의 바로 위에 중복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지 지리적 중첩을 넘어서, 이집트 왕조가 반복적으로 '덮어쓰기'를 해왔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한 왕의 기억 위에 또 다른 왕의 이름이 씌워지고, 한 세대의 무덤 위에 또 다른 세대의 무덤이 세워진다. 시간은 결코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고, 이 계곡에서는 언제나 겹쳐지고, 누적되고, 다시 쓰인다. 아마도 죽음 이후의 세계란, 시간의 무게 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입구 앞에 멈춰 섰다. 사진으로 미리 봤던 것보다 훨씬 단정하고 소박한 인상이었다. 웅장하거나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묵직한 기운이 있었다. 바깥의 햇살이 정확히 입구 한가운데로 비스듬히 들어와 그늘을 만들고 있었고, 무덤으로 들어가는 철창 앞에는 중년의 경비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별다른 말도 없이 그는 우리를 맞이했다. 문 앞에는 작은 팻말 하나가 붙어 있었는데, 그 위에는 람세스 5세와 6세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었다. 하나의 무덤, 두 개의 이름. 이보다 더 간결하고도 복잡한 문장은 없었다.


나는 그 철문 앞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골랐다. 몇 천 년 전에는 이 길을 오직 한 사람만이 통과했을 것이다. 왕, 파라오. 사제와 석공, 장인과 별의 운행을 따르는 사람들만이 동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든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다. 입장료를 내고, 티켓을 제시하면, 누구나 한때 신의 아들이 묻힌 무덤을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이 단지 시대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이 무덤은 이제 두 사람의 것이 아니다. 왕조의 것이 아니고, 제국의 것도 아니다. 기억하고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무덤은 결국 시간이 머무는 그릇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잠시 그 시간에 함께 앉아보는 자들일뿐이다.


그렇게 나는 철창을 열고 들어섰다. 어둠은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천천히 계곡의 햇살이 등 뒤에서 사라졌다. 복도는 시작되었고, 두 왕의 이야기는 이제 벽을 따라 이어지기 시작했다.







어둠을 걷는 신화 – 밤의 서와 암두아트의 통과


복도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입구의 햇살은 이미 사라지고, 뒤돌아보면 어둠이 바깥의 세계를 천천히 지우고 있었다. 앞도 보였고, 뒤도 보였지만, 이 복도는 어느 방향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이집트의 왕들과 똑같이, 다만 한 방향으로만 걸을 수 있었다. 앞으로. 그 길은 어두웠지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 중간, 천천히 걷던 내 발이 벽 앞에서 멈췄다. 단순히 색감 때문도, 구도의 힘 때문도 아니었다. 그건 뭔가 설명되지 않는 낯선 기운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벽화들과는 구조가 달랐다. 상형문자는 더 촘촘했고, 인물들은 어딘가 현실의 리듬에서 벗어난 듯 보였다. 벽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서 시간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눈에 먼저 들어온 건 구불구불한 뱀의 몸 안을 행렬하듯 지나가는 이들이었다. 마치 심연 속을 건너는 망자들의 모습처럼, 그들은 뱀의 내장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고, 몸은 곧게 펴져 있었으며, 고개는 대부분 떨구고 있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한동안 생각했다. 이건 단순한 뱀의 상징이 아니다. ‘시간’ 그 자체다. 그리고 그 뱀은 고대 이집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우로보로스, 스스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순환의 상징, 곧 죽음과 부활의 통로였다.


그 아래에는 무언가에 끌려가는 자들의 모습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었고, 일부는 거꾸로 걷고 있었다. 그 자세는 부자연스러웠고, 관절이 뒤틀린 듯 보였다. 이 장면 앞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등을 곧게 폈다. 이들은 누구일까. 왜 거꾸로 걸어야만 했을까. 머릿속으로 '밤의 서'가 떠올랐다. 거기서 태양은 밤마다 지하세계를 지나며 질서의 적들, 마아트의 파괴자들, 죄인들을 마주한다. 이들은 죽음 이후에도 방향을 찾지 못하는 자들, 그 방향감각의 상실은 곧 존재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자, 이번엔 커다란 붉은 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여신이 서 있었다. 왼손엔 작고 귀여운 새 한 마리를, 오른손엔 붉은 태양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몸 아래에는 작은 뱀들이 나선형으로 출렁이며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웨스트(Westet) 여신, 또는 ‘밤의 수호 여신’으로 해석된다. 그녀의 존재는 그 자체로 강력한 이정표였다. 파라오가 지하세계를 지나며 마주하는 어머니이자 심판자, 지킴이이자 경계자. 그녀의 눈은 그 어떤 신보다 인간에 가까웠고, 그녀의 손에 들린 새는 생명의 영혼, 즉 바(ba)를 상징했다.


나는 그 앞에 섰다. 그녀는 묻고 있었다.


“너는 이 길을 걸을 자격이 있는가?”


나는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알고 싶습니다.’


그 바로 옆에 일곱 명의 벌거벗은 인물들이 붉은 원 안에 갇혀 있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들의 자세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두 팔은 어깨에 올려진 채 경직되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얼굴엔 표정이 없었고, 몸은 마치 껍질만 남은 인형처럼 공허했다. 누군가는 그들을 정죄된 영혼이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부활 직전의 불완전한 상태로 해석한다. 나는 그 붉은 원의 테두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것은 경계선이었다. 아직은 통과되지 않은, 아직은 승인되지 않은 존재들. 나는 그들 옆에서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은 쉽게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긴 말보다 ‘몸의 진실’이 기록되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내리자, 벽화 속의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는 세 인물이 서 있었고, 그 배는 마치 시간을 건너는 듯이 고요한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배의 끝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문처럼 입을 벌린 거대한 뱀이었다. 입은 벌어져 있었고, 몸은 뿌리처럼 갈라진 채 공간을 휘감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뱀을 경계로, 또 누군가는 신의 입으로 불렀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처음엔 그저 상징이라 여겼던 것들이, 점점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배 위에 선 이들은 누구였을까. 혹은 그 셋 중 하나가, 언젠가의 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배는 단순한 탈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식이었고, 전이였으며, 살아서 통과해야 하는 죽음의 구조였다. 뱀은 삼키는 자이자, 내보내는 자였다. 죽음을 지나 부활로 나아가는 문턱. 입으로 들어가 부활로 나오는 ‘출구 없는 입구’, 혼돈과 재탄생의 경계.


나는 그 뱀의 앞에서 문득 목이 바짝 말랐다. 이건 단지 무서운 이미지가 아니었다. 이건 나도 언젠가는 지나야 할 어떤 길, 어떤 진실처럼 느껴졌다. 파라오만의 길이 아니었다. 나 역시, 내 안의 시간을 건너는 배에 타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다. 벽화 속 그들이 바로 나 자신이라면? 지금, 이 무덤 속에서 마주하는 이 통과의 길이 과연 파라오 한 사람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이 복도에서 나를 향해 고개를 든 신들, 몸을 뒤틀며 지나가는 사람들, 눈을 감은 망자들과 눈을 뜬 수호신들이 모두 내 안의 풍경이라면?


무덤은 여전히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침묵이 아니라, 이야기의 두께였다. 벽화는 말이 없었지만, 그 대신 나를 묵묵히 기록하고 있었다. 그 앞을 걷는 내 태도, 내 머뭇거림, 내 사유의 결을. 나는 그 벽 앞에서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지금, 읽히고 있다.


암두아트서.


태양이 밤을 지나 지하세계를 항해하는 열두 시간의 기록. 나는 그 신화를 책으로 배웠지만, 이곳에 와서야 처음으로 그것을 통과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왕은 죽어도 쉬지 않는다. 그의 길은 시작도 끝도 아닌, 순환이었다. 그는 죽음 이후의 어둠을 통과해 다시 떠오르기 위해, 고요한 공포와 침묵의 문들을 지나야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복도는 바로 그 길의 한 시간, 한 문이자 한 장면이었다.


몸을 틀며 도열한 코브라들 앞에 서 있을 때, 그들은 내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너는 누구냐?”라는 물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바라볼 뿐. 각각의 뱀은 같은 형태와 색을 가졌지만, 이상하게도 전부 다른 인상을 주었다. 누군가는 나를 시험했고, 누군가는 지나가라 손짓했고, 또 어떤 뱀은 아무 말 없이 침묵 속에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 앞에서 다시 내가 누구였는지를 물어야 했다.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가자, 파라오가 향을 바치는 장면이 나타났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그 자세만이 담겨 있었다. 그 앞엔 신이 서 있었지만, 그 얼굴조차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멈췄다. 왕은 신 앞에 서 있었고, 손에는 향을 담은 그릇이 들려 있었다. 그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곧게 뻗어 올랐다가 이내 천천히 흩어졌다. 나는 그 연기를 따라 시선을 올렸다. 연기는 선이 아니었고, 선은 곧 시간이 아니었고, 시간은... 신과 인간 사이에만 놓일 수 있는,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다리였다.


"말로 하지 마라, "

연기가 속삭이는 듯했다.

"숨으로 말해라. 침묵으로 보여라."

왕은 아무 말 없이 그 손을 내밀었다. 연기는 그 손끝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내가 무언가를 꺼내 놓듯 내민 손이었던가. 아니면 기꺼이 내어주는 손이었던가. 나는 그 손을 보며 잠시 내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보았다. 무언가를 바친 적이 있었던가. 나 역시 살아오며 무수한 말들을 했지만, 그중 몇 마디나 진심으로 내어준 향기였을까.


왕의 앞에는 신이 앉아 있었다. 그는 말이 없었지만, 그 고요함은 가장 오래된 대답 같았다. 그는 향을 받는 자였지만, 동시에 그것을 기다려온 자처럼 보였다.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그는 수천 년을 기다려온 것은 아니었을까. 향은 연기가 되어 흩어졌고, 향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게 남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신에게 물었다.

"받아주십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향의 선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내 뒤편, 기둥처럼 우뚝 선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기둥이기도 했고, 나무 같기도 했고, 숨결 같기도 했다. 그 위엔 또 하나의 향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 아래엔 삶의 선율이 흔들리는 듯했다. 그 기둥은 말 없는 제단처럼 나를 맞이했고,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바친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사과하지 못한 것들, 멈추지 못했던 말들,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고백들...


“정결하냐?”


그 순간 누군가 물은 듯했다.


“아니요. 아직은 아닙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거대한 눈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자트. 회복된 눈. 상실을 지나 다시 봉합된 시력. 늙은 듯한 신이 그 앞에 조용히 서 있었고, 그의 손에는 목자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 역시, 잃어버린 것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둘 사이에 떠 있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향에서 피어오른 그 선은 마치 시간의 맥 같았다. 시작과 끝이 모두 담긴 선. 그 선 위에 서 있는 나는, 더 이상 관람자가 아니었다. 내가 그 향의 길 위를 걷고 있는 자였다. 그 순간, '정결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죽은 자를 위한 정결만이 아니었다. 지금 살아 있는 나 역시, 정화되어야만 했다. 관계 속에서 맺힌 어두운 매듭들, 내 안에서 자라난 판단과 미움들, 말하지 못해 엉킨 기억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어둠을 지나고 있었고, 그 어둠의 끝에 비로소, 향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복도 중간쯤, 아누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나타나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그는 자칼의 머리를 하고 있었고, 두 눈은 벽화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다. 그의 손엔 고삐 같은 무언가가 들려 있었고, 주위엔 두 줄로 선 영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틈에 설 수 있을까. 나는 누구의 무게로 재질까. 문득,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움찔했다. 그것은 죄책감도, 두려움도 아닌, 기억이었다. 잊고 지낸 이름들, 얼굴들, 오래된 후회와 오래된 희망들이 갑자기 되살아나는 듯했다. 아누비스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들은 것만 같았다.



그 무거운 정적을 지나,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발밑의 어둠과는 전혀 다른, 높고 묵직한 하늘. 별들이 천장에 가만히 박혀 있었고, 그 사이로 길게 펼쳐진 신의 몸이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여신 누트였다. 그녀의 몸은 밤하늘 그 자체였다. 입으로는 해를 삼키고, 자궁으로는 새로운 태양을 다시 낳는 여신. 그녀는 밤의 어머니이자, 아침의 창조자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물었다.

“이 세계는 언제 끝나나요?”

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몸 위를 조용히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태양의 배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다시 시작될 거예요.”

그 배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긴 몸을 따라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 밤은 끝나지 않지만, 끝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해가 매일 삼켜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이 무덤 안의 어둠도 끝내 빛을 품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부활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창조. 파라오만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약속된 그 무엇...



그리고 그 천장의 다른 한편에는 또 다른 상징이 있었다. 거대한 붉은 태양 원, 그 양 옆을 날개로 감싸는 깃털들, 그리고 양쪽에서 그것을 떠받치듯 받드는 신의 손들. 태양은 단순히 하늘을 비추는 별이 아니었다. 그것은 왕의 부활, 시간의 재개, 그리고 우주의 심장이었다. 나는 그 도상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 다시 빛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 나의 밤도, 나의 그림자도, 누군가의 날개 아래에서 새롭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


별과 눈이 마주쳤다. 단지 시선이 아니라, 생명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나는 누트의 몸을 따라 태양의 배가 다시 움직이길 바랐다. 그리고 어쩌면, 내 삶의 어떤 어둠도 그렇게 통과될 수 있으리란 믿음이 피어났다. 이 벽화들은 죽은 왕의 부활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언어는 분명 살아 있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경사로에 이르렀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곳이 이제 왕의 방으로 이어지는 문턱이라는 것을. 나무 난간이 세워진 그 길은 높지 않았지만, 쉽게 내려설 수 없는 깊이를 품고 있었다. 벽은 더 조밀해졌고, 도상은 더 강렬해졌다. 뱀은 더 얇아졌고, 신들의 눈빛은 더 또렷했다. 마치 이 마지막 구간이야말로 진짜 통과의식이자, 통과된 자만이 닿을 수 있는 어딘가로 이끄는 듯했다.


나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경사로를 내려갔다. 그때 위쪽에서 두 사람이 계단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연인처럼 보였고, 조용히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나와 마주치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남자가 말했다.


“이건 그냥 벽화가 아니에요.”


여자가 작게 대답했다.


“응, 나도 그 생각했어. 이건... 마치 누군가가 아직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실제로 벽에는 수천 개의 눈이 새겨져 있었다. 신들의 눈, 뱀의 눈, 인간의 눈, 그중 어떤 것은 나를 지나치는 이들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눈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이 벽 안에는 아직 누군가가 있어,”

여자가 속삭였다.
“왕이겠지,”

남자가 대답했다.
“아니, 나 같아.”


나는 그들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무덤의 끝자락에 도달한 우리가 어쩌면 여전히 무덤의 한가운데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 말. 우리가 무언가를 관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 속에 들어가 버린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걸었다. 벽을 더 가까이 느끼며, 마지막 구간을 통과하듯 내려갔다. 그 길의 끝, 한 벽면에서 우자트의 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상형문자의 일부이자, 전체였다. 보호와 회복, 기억과 고통, 모든 것을 지켜보는 하나의 눈...


나는 그 눈앞에 섰다. 그것은 나를 심판하는 눈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기억하려는 눈, 잊히지 않게 붙드는 눈 같았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어떤 구멍, 그 속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 눈 안에서 얼마나 투명하게 보일 수 있을까, 아니 얼마나 용기 있게 설 수 있을까.



그 눈은 단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모든 눈 같았다. 우자트의 눈. 복원된 눈. 한때 상처 입고 파괴되었지만 다시 치유된 눈... 잃었던 시력을 되찾은 이 눈은 단지 시각의 회복이 아니라, 질서와 정의의 회복, 그리고 균형의 상징이었다. 벽면 중앙에 큼직하게 새겨진 이 눈은, 방금 전까지 내가 걸어온 이 긴 복도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 눈 아래, 사람들은 줄지어 앉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무릎을 꿇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몸을 웅크린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 하나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이가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삼두를 가진 거대한 뱀들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세 개의 머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문지기 같았고, 그 긴 몸통은 구불구불하게 이 장면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 뱀들은 심판자처럼 위협적인 것도, 수호자처럼 따뜻한 것도 아닌, 그저 시간 자체였다. 나를 시험하지도, 감싸지도 않은 채, 말없이 지나가고 있는 시간.


나는 그 장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기 있는 얼굴들이 나와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도의 어둠을 지나오는 동안, 나는 많은 존재들을 스쳐왔고, 그들은 모두 왕의 부활을 돕는 존재들이라 믿었지만, 어쩌면 그들은 나 자신의 조각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겁에 질린 나, 기다리는 나, 용기를 내는 나...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피해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그것은 나를 심판하는 눈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기억하려 애쓰는 눈, 내가 잊고 있던 이름들을 떠올리게 하는 눈이었다. 내가 지나온 시간, 내가 잃어버린 말들, 놓치고 지나간 얼굴들, 그 모든 것이 이 눈 안에 조용히 떠 있었다.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곳은 죽은 자의 세계였지만,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더 뚜렷이 느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삶, 아직 다 쓰이지 않은 내 이야기, 아직 닿지 않은 이들에게 건네야 할 말들...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람세스 6세의 이름이 이렇게 벽에 남은 것처럼, 나의 이름은 어디에 남을 수 있을까?”


아니, 벽이 아니라도 좋다.


누군가의 기억 속, 아주 작고 조용한 기도 속에라도...


이 복도는 분명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산 자의 몫이 무엇인지 더 분명히 깨달았다. 어둠은 반드시 지나야 할 길이었고, 부활은 단지 왕의 특권이 아니었다. 부활은, 기억되고자 하는 자의 용기, 자신의 이름을 내면의 무덤 너머로 던져보는 자의 희망이었다.







나는 마침내 가장 깊은 방, 왕의 방에 들어섰다. 이곳은 파라오의 죽음이 머무는 자리가 아니었다. 아니, 단순히 그가 누운 무덤이 아니었다. 이 방은, 죽음을 넘어서는 장소였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가 어떻게 부활하는지를 설명하는 공간. 그 벽들, 그 천장, 그 땅 위에 새겨진 형상들 속에서 왕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벽면의 한가운데, 파라오가 여신과 마주 서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들고 있었다. 손끝은 부르지도 않았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다만 조용히 묻는 듯한 자세였다.


“너는 이제 준비되었는가?”


그런 질문이었다. 여신의 손은 너무도 부드럽고, 그가 올린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엔 말이 없었지만, 나는 분명 무언가가 오고 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경외였다. 경외는 목소리로 말해지기보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법이니까.



조금 더 안쪽, 벽면에는 신비롭게도 몸을 움직이지 않는 존재들이 앉아 있었다. 어떤 이는 무릎을 꿇었고, 어떤 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전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말은 없었다. 그들의 위로는 태양이 떠 있었고, 뱀들이 그것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그 침묵 속을 조심스레 걸어 지나갔다.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지만, 아무도 나를 환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내게 질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 이 공간에서 질문받는 자는 없었다. 왕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는 존재, 그 자체가 하나의 대답이 되어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벽 아래쪽에서 시선을 멈추게 만든 장면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상했다. 불편한 듯 눈을 피하고 싶기도 했고, 이상하게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거기엔 해체된 신체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다.


어떤 몸은 머리가 없었고, 어떤 몸은 팔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다리가 잘린 형체도 있었고, 반쯤만 남은 육신도 있었다. 이 모든 파편들이 마치 정지된 시간 속에서 질서 있게 배열된 것처럼 조용히 놓여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처음엔 그 모습이 고통처럼 보였다. 고문이나 전쟁의 흔적 같기도 했고, 무참히 찢긴 존재의 잔해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 첫인상을 거두었다. 그건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그 옆에는 몇 명의 존재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손을 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머리 없는 몸을 향해, 팔이 없는 형체를 향해, 그들은 조용히, 그리고 오래도록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의 기도를 따라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건 장례가 아니야,”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건 탄생이야. 아주 낯선 방식의.”


그 순간 이 장면이 말없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내게 와닿았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해체, 그 자체가 하나의 의례였다는 것. 무너짐 없이 다시 지어질 수 없고, 내려앉음 없이 다시 떠오를 수 없는 진리. 마치 씨앗이 땅속에서 껍질을 깨야만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처럼, 왕의 몸도 이곳에서 스스로를 벗어야만 새로운 형체로 부활할 수 있다는 이야기...


바로 그 위쪽에는 우아하게 배치된 상형문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기도자들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엔 다시 태양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부활’이라는 단어를 의미한다는 걸, 설명 없이도 느낄 수 있었다. 벽의 아래, 이 어둠의 바닥에서 나는 생각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그 문턱은 반드시 부서짐이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 역시 이곳에서 나의 어떤 부분을 부숴야 할까. 이름도 감정도 잃고 싶지 않지만,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무게가 있다면, 나는 지금 그 문 앞에 서 있는 셈이었다. 이 무덤은 무너진 몸을 애도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해체를 통과한 자가 다시 모이는 곳, 몸이 아니라 영혼의 구조가 다시 지어지는 공간이었다. 누군가 그렇게 되살아났다면, 그리고 여전히 그 곁에서 누군가는 기도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 희망을 놓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붉은 태양 원반이 있었다. 한 마리 스카라베가 그 태양을 떠밀고 있었고, 그 주위엔 신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태양은 떠오르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멈춰 있었다.


“왜 멈춰 있지?”

문득 내 안에서 한 목소리가 물었다.

“아니야.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떠받치고 있는 거야.”

그 손은 아마도, 신일 수도 있고, 인간일 수도 있었다. 나는 이 장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어느 순간부터 눈물이 고여 있었는지 모르겠다. 부활이란, 찬란함이 아니라 슬픔을 견디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조용한 선물 같았다.



바닥 가까이, 조심히 눈을 내리자 작은 벌 하나가 돌 위에 앉아 있었다. 날개는 가지런히 접혀 있었고, 몸짓은 더없이 조용했다. 그 아래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찬란한 빛도, 위협적인 자세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 앞에서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벌은 단순한 곤충이 아니었다. 그것은 파라오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고, 특히 하이집트, 즉 나일강 하류 지역의 왕권을 대표하는 도상이었다. '갈대와 벌의 왕(Neswt-bity)'이라는 공식 칭호처럼, 벌은 통합된 두 이집트의 절반을 의미하는 존재였다. 작은 몸체에 담긴 것은 질서였고, 정복이었고, 권위였다. 때로 벌은 전쟁의 선봉처럼 이해되기도 했다. 날카로운 침을 가진 집단의 상징으로서, 파라오의 통치가 얼마나 날카롭고도 집단적인 힘을 가졌는지를 은유하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벌은, 그 모든 전쟁과 명령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말이 없었고, 소리도 없었다. 대신 시간의 가장 안쪽에, 이 무덤의 가장 깊은 곳에 앉아 조용히 이름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한때는 세상을 다스렸지만, 이제는 오직 '기억되는 존재'로 남은 듯한 자세였다.


나는 그 앞에서 경외를 느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들은 결국 어떤 이름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 이름이 과연 무얼 의미하는지보다도, 누군가 그 이름을 불렀고, 남겼고, 다시 바라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권위의 상징이 경건한 침묵으로 남는 순간, 나는 그저 속으로 말했다.


“당신의 이름이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 잊히지 않았습니다.”



방 한가운데, 왕의 석관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하지 않았다. 뚜껑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고,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그 주위를 둘러싼 건 경비도, 신도 아니었다. 흰 가운을 입은 몇 명의 보존가들이었다. 누군가는 조각난 석관을 바라보며 붓질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작은 망치를 들고 손으로 돌의 균열을 따라 만지고 있었다.


“여기, 이 조각이 원래 여기였을까?”


한 남자의 말이 조용히 들렸다.


“응, 맞을 거야. 모양이 딱 맞아.”


그들의 말은 거룩하지 않았지만, 거룩하게 들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부활은 과거의 왕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 무게를 붙드는 이들의 손 안에서, 부활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깨진 석관 뚜껑 위, 부서진 돌조각 안에 조용히 남아 있는 얼굴 하나. 파라오. 눈을 감고 있었고, 표정은 고요했으며, 그러나 그 입가에는 무엇인가 말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얼굴은 아직 무덤에 남아 지금도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절이 아니라, 인사였다. 살아 있는 내가, 이 자리까지 와준 그에게 전하는 조용한 인사.

마지막으로 한 보존가들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시선이 머문 곳은 석관 옆, 조용히 쪼그려 앉아 있는 한 남자였다. 흰 가운을 입고, 얼굴엔 마스크를 단단히 고정한 채, 그는 돌조각 하나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조그마한 붓을 들어, 마치 오래된 성서를 읽듯 아주 천천히 그 조각의 표면을 닦고 있었다. 먼지를 털기보다, 기억을 불러내는 동작에 가까웠다. 나는 그를 보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 주변에는 부서진 석관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커다란 석재 조각들은 제자리를 잃은 채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끝에서는 그 모든 조각이 한 방향으로 다시 향하고 있는 듯 보였다. 복원이란 단어가 이토록 조용하고 깊은 일이란 걸, 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것 같았다.


“이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람세스 6세? 아니면 이 무덤의 그림을 남긴 이름 없는 화공? 그도 아니면, 지금 이 돌조각을 붙잡고 있는 이 사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역사는 위대한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끝까지 붙드는 이들의 것이라는 생각. 살아 있는 손. 살아 있는 시선. 한 번 부서진 것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 마음. 그게 진짜 ‘계승’ 아닐까. 지금 이 무덤을 진짜로 다시 살리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저기 조용히 앉아 있는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뒤로 두고 천천히 걸었다. 발걸음은 조심스러웠고, 바닥의 돌들은 아직도 시간의 숨을 품고 있었다. 출구 쪽에서 어딘가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등 뒤로 무덤이 닫히는 듯한 환청 같은 소리가 들렸다. 돌의 입이 조용히 닫히는 듯한 소리.


‘당신은 보았고, 당신은 지나갔다.’

그 문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나는 이 무덤의 관람자가 아니었다. 이 시간을 함께 통과한, 마지막 증인자였다.








계곡의 끝자락에 섰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이 침묵 속에서, 나는 여덟 명의 파라오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람세스 5세와 6세의 무덤에서 마지막 발걸음을 떼며, 그들의 이름이 아직 벽에 남아 있다는 사실, 그 기억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쩐지 위안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떠났지만, 나는 그들 속을 걸었고, 그 길 위에서 나 또한 어딘가를 건너온 사람이 되었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고, 사막은 여전히 뜨거웠다. 하지만 내 마음엔 어느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모든 길의 끝은 부활이 아니라, 기억이 아닐까.’

무덤은 단지 죽은 자를 묻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곳은 기억을 불러내는 장소였고, 시간과 침묵, 손의 흔적이 새겨진 하나의 문장이었다.


나는 지난 여덟 무덤에서 왕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의 눈, 그들의 이름, 그들이 마주한 신들, 그리고 그들 뒤에 조용히 선 보존가들의 손끝까지. 모두가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누구는 신이 되었고, 누구는 증인이 되었고, 누구는 붓 하나로 그 세계를 다시 붙잡았다.


이제 나는 계곡을 떠난다.
그러나 떠나는 내가 이곳을 끝내는 것이 아니다.

계곡은 지금도 누군가의 손에서 다시 쓰이고 있었다. 다음 장은 그들, 이 시간을 다시 살려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는 이름 없는 이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리는 손에 관하여 말할 차례다.


빛은 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무덤 안, 그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나는 이 계곡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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