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4세, 기억의 문턱에서 마주친 장면
계곡 쪽으로 향하는 길은 벌써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산비탈의 바위들은 햇빛을 받아 금속처럼 반짝였고, 모래 위로 굽이진 실루엣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람은 멎은 듯했고, 공기는 땅 가까이 낮게 깔려 있었다.
앞서 들른 곳은 타우세르와 세트나흐트의 무덤이었다. 무덤을 나와 다음 장소로 발을 옮기고 있지만 아직 그 여운이 남아 있었다. 한 여왕과 한 왕, 서로 다른 시선과 시대를 품은 두 사람의 무덤은 좁은 입구 안에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벽면을 따라 펼쳐진 색채와 도상들, 시간의 균열을 따라 배치된 이름들과 문장들, 그리고 서로를 감싸는 듯하면서도 엇갈리는 그들의 죽음은 내 안에 묘한 침묵을 남겼다. 한참을 머물고 다시 나왔을 때, 바위 그림자와 햇빛의 경계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무덤 앞에 멈춰 섰다.
KV2, 람세스 4세의 무덤.
아무런 조형 장식도 없이 덩그러니 놓인 철문, 그리고 그 위에 부착된 금속 표지판 하나. “KV2: RAMESSES IV”라는 문구가 아랍어와 영어로 병기되어 있었지만, 그 글씨마저 빛에 바랜 듯 무심해 보였다. 람세스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를 떠올렸을 때, 그 입구는 놀랄 만큼 조용하고 절제된 문턱이었다.
람세스 4세, 그는 람세스 3세의 아들이다.
람세스 3세는 이집트 제20 왕조의 절정기를 이끈 인물이었다. '해양 민족'의 침입을 물리치고, 이집트의 마지막 황금기를 일군 파라오. 그가 남긴 것은 전쟁의 승리뿐만 아니라, 무수한 건축 사업, 무역의 확대, 그리고 거대한 종교 체계의 유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람세스 4세는 ‘후계자’로서의 존재감을 안고 즉위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제국의 크기를 최대치로 확장시켜 놓은 그 순간, 국가는 이미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무덤 앞에서 떠올렸다. 그의 무덤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겁게 닫힌 문턱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자는 이 문을 통과할 수 없다. 단지 스쳐 지나갈 뿐이다.
길고 낮은 경사로가 안으로 이어졌다. 천장은 황금색 별로 뒤덮인 하늘이었고, 양 벽에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글자들은 단지 ‘말’이 아니었다. 마치 시간이 직접 돌에 새겨져 있는 듯했다. 왕이 누구였는지를 설명하기보다는, 그가 어떤 여정을 떠나야 하는지를 기록한 이야기. 별은 천장을 덮고, 문자는 벽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무덤에 들어섰다기보다, 하나의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통로를 따라 몇 걸음 더 들어가자, 왼편 벽에 정교한 부조가 나타났다. 태양신 라(Ra)가 손에 셉터를 들고 서 있고, 그 앞에 고개 숙인 파라오가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인사 이상의 것을 말한다. 파라오는 단지 인간 왕이 아니라, 신의 아들로서 이 지상에 내려온 존재다. 그러니 그의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귀환이어야 했다. 그가 태양의 신 앞에 다시 나아가 고개를 숙이는 이 벽면은, 죽음 이후를 그리기 이전에 삶의 태도를 새기고 있었다.
람세스 4세는 즉위하자마자 거대한 계획을 세운다. 피라미드 시대를 계승한 위대한 건축가들, 수천의 석공과 장인들을 동원해 "암두아트(사자의 서)"의 무덤을 준비했고, 신전 건축과 광산 개발, 국경 방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규모 국책 사업들을 계획했다.
그는 이집트가 위축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재위는 짧았다. 기껏해야 6년 남짓. 그가 펼쳐보려 했던 제국의 미래는, 무너지는 재정과 흔들리는 종교 권력, 신하들의 부패에 가로막혀 버렸다.
이 통로의 어둠은 그가 걷던 길의 끝자락 같았다. 지금 내가 이곳을 걷고 있는 건, 단지 관람객으로서가 아니다. 그가 남긴 침묵을 읽고자 하는 산 자로서의 경의다.
사람들이 통로를 오가며 사진을 찍고, 가이드의 설명을 흘려듣는다. 하지만 나는 벽에 새겨진 저 한 인물의 눈길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태양신의 얼굴을 마주 보며 겸허히 손을 든 파라오. 그 한 장면이 이 무덤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제국을 물려받았지만, 그 크기만큼의 균열도 함께 넘겨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왕국을 지키려 했지만, 그 뿌리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통치는 위대한 건축이 아니라, 신 앞에서의 자리를 준비하는 것임을.
람세스 4세의 무덤은 길지 않다. 그의 삶처럼, 준비는 컸으나 결과는 간결했다. 그러나 그 안에 새겨진 상형문자와 별빛은 길이 아니라 깊이로 말한다. 우리는 아직 그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했다.
복도의 끝자락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말을 잃게 되었다. 무언가를 보고 있지만, 그것을 설명할 수 없는 상태. 이해를 하려 애쓰기도 전에 마음이 그 앞에서 멈추는 경험이었다. 나는 지금 무덤 안에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가 죽음 이후를 믿고 구축해 낸 하나의 내면 풍경 속을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벽면은 길고, 천장은 낮았다. 그러나 그 길이와 높이를 압도하는 건 그 표면에 새겨진 세계였다. 벽에는 수십 명, 어쩌면 백 명이 넘는 인물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모두가 옆을 향하고 있었고, 모두가 거의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림자로부터 막 걸어 나온 듯한 옅은 색감, 뚜렷한 윤곽, 머리 위에 얹힌 장식들, 단순화된 옷의 선들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신화에서 불려 온 존재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그 인물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는 고독하지 않다.’
우리는 죽음을 종종 혼자의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이 무덤 속에서 왕은 집단적인 죽음 속에 살아 있었다. 그는 홀로 걷지 않았다. 모든 신들이, 조상들이, 그리고 상형문자 하나하나에 깃든 말들이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 한 장면에서 나는 멈춰 섰다. 어느 인물은 손을 살짝 더 올리고 있었고, 어느 인물은 발을 살짝 더 옮기고 있었다. 같아 보이는 그림 속에서 아주 미세한 ‘다름’이 있었다.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심판과 통과... 모든 경계는 그렇게 아주 작게 구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아래, 상형문자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단지 돌에 새겨진 문장이 아니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색이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바탕이 벽면에 고르게 깔려 있었고, 그 위에 검고 푸른 선들이 선명하게 얹혀 있었다. 문자의 선은 곧았고, 곡선은 매끄러웠으며, 색은 아직도 살아 있는 듯했다.
그 선들을 따라 황금빛 가장자리가 얇게 감싸고 있었는데, 마치 그 자체로 빛을 봉인한 듯한 인상이었다. 햇살이 스며들지 않는 무덤 안에서, 그 문자들만은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상형문자를 읽을 줄 모른다. 그러나 읽지 못해도 느껴지는 무게가 있었다. 문자의 구조, 반복되는 도형, 상단을 막는 기호들, 그리고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가지는 조형성은 글자이기 이전에 도상이었다. 한 음절을 담는 기호이기 전에, 그것은 어떤 뜻과 기운을 품은 형태의 마법처럼 보였다.
그건 문자라기보다, 하나의 주술이었다. 시간에 맞서 싸우는 주문, 죽은 자의 이름을 세계 안에 붙들어 두기 위한 언어 없는 소리. 그 안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느껴졌다. 다른 글자들과는 구성이 달랐고, 더 정돈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더 조심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왕의 이름, 그의 칭호, 그를 부르는 신들의 호칭. 이 모든 이름은 하나의 생명처럼 문자의 가죽을 입고, 이 벽에 새겨졌다. 죽은 자를 죽은 자로 남기지 않기 위한 기록. 사라지지 않도록, 지워지지 않도록, 잊히지 않도록.
이름은 그 자체로 ‘존재’를 의미했다. 기억 속에서조차 이름이 사라지면, 그 존재는 더 이상 이 세계 어디에도 머물 수 없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덤을 짓고, 그 안에 상형문자를 새기고, 그 위에 이름을 남겼다. 무덤은 육체의 집이 아니라, 이름이 머무는 집이었다.
벽면 한쪽은 유난히 기하학적으로 보였다. 붉은 동그라미, 푸른 곡선, 갈색으로 음영을 더한 물결무늬. 처음엔 단순한 장식으로 보였지만, 가만히 바라보니 어떤 의식의 순서를 도식화한 것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의 죽음이 정해진 절차로 나아가는 흐름. 삶도, 죽음도, 이 무덤 속에서는 정렬되고 질서 있게 기록되어야 하는 수치와 모양이었다.
문득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죽음의 수학이야.”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말했다.
“저마다 다른 도상인데, 위치는 똑같아. 질서 안에 있는 혼돈이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이 무덤은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공간이었다. 감정도, 공포도, 애도조차 이 안에서는 기호화되고 상형화되어야 했다.
그러다 나는 그들을 보았다. 줄을 맞춰 선 여덟 명의 존재들. 모두 자칼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누비스.
죽은 자의 시신을 정결하게 하고, 그의 심장을 재고, 저승으로 이끄는 안내자. 그러나 이곳의 아누비스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서 있었을 뿐이다. 말없이,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그 무언의 자세 속에서 나는 묘한 긴장을 느꼈다. 죽음이란 그 자체로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
왕은 그들 앞을 지나야만 했다. 그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움직임 없이.
나는 그 줄 끝에서 마주친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 시선이 자연스레 위로 끌렸다. 갑작스럽게 감각이 전환되었다. 지금껏 시선은 벽을 따라 흐르고 있었고, 발끝은 회랑의 석판 위를 더듬고 있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공중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천장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색으로 치자면 그건 남색과 감청 사이였고, 물감이 아니라 무게를 바른 듯한 느낌이었다.
위에 작은 점들이 빼곡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무덤 안이라는 것을 잊을 만큼, 별들이 있었다. 별은 정지된 점이었다. 빛을 내는 것도 아니었고, 반짝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무덤 안에서, 내가 본 모든 장면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다’고 느낀 것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수천 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움직이지 않음 속의 생명. 마치 이 무덤을 설계한 누군가가 죽음을 기록하되, 완전히 죽음으로 덮어두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남긴 것 같았다. 벽면은 분명히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죽음 이후의 심판, 항해, 시련, 정화, 그리고 기다림. 그 모든 것이 문장과 그림으로 치밀하게 새겨져 있었지만, 천장, 이 별무늬만큼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늘을 기억하고 있었다. 죽은 자가 다시 하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의 이름이, 그의 혼이, 그의 침묵이 하늘의 별자리에 다시 안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나는 그 아래에 서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별들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나를 오래 지켜보는 듯했다. 이 별들은 누구의 것일까. 람세스 4세의 별일까, 아니면 신들이 남겨둔 질서일까. 아니, 어쩌면 모든 죽은 자들의 이름이 그 별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무덤 안은 어둡고, 공기는 정적에 가까웠지만, 그 별들 아래에 서 있는 동안만큼은, 나는 잠시 죽음이 아닌, 하늘과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별 아래. 사람처럼 서 있는 미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정면을 응시한 그들은, 말하자면 ‘기다리는 존재’였다. 태어나기 전의 상태, 혹은 다시 태어나기 직전의 침묵. 그들 위로는 한 마리 뱀이 흐르고 있었다.
매끄럽고, 길고, 조용한 뱀.
나는 그 뱀을 보고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순환일 수도 있다는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덤은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지막 문 앞에서 멈춰 섰다.
한 장면.
배 위에 서 있는 태양신,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람세스 4세. 주변에는 다섯 명의 신들이 있었다.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고, 배는 어느 쪽으로든 흘러가고 있었다. 이 벽화를 보며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왕이 무릎을 꿇은 자세는 굴욕의 자세가 아니었다. 그건 기꺼이 받아들이는 몸짓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이룬 것, 놓친 것, 짊어진 것, 다 내려놓고, 스스로 작아지는 모습. 내게는 그것이 진정한 왕의 위엄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무덤의 가장 깊은 방.
중앙에 놓인 석관.
벽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주문과 장면들. 그 위에서 나는 한동안 숨을 들이쉬지 못했다. 무언가가 눌러오는 느낌. 하지만 그 무게는 고통스럽지 않았다. 절제되고, 오래된 시간의 무게.
석관 위에는 팔을 벌린 인물이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 “저게 왕입니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왕이 아니라, 이 무덤 전체가 펼쳐진 ‘존재의 형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팔 아래에는 신들도, 시간도, 말도, 별도, 모두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 무덤은 왕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를 따라 걷는 모든 이들이 자기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장소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길은 무서운 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용히 걸어 나가는 길, 별 아래를 따라 걷는 존재의 귀향이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햇빛은 이전보다 더 뜨거워져 있었고, 바람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음향은 멀게 느껴졌다. 나는 방금까지 걸었던 그 복도와 문장들과 별들과 이름들을 되짚어보았다. 그것은 한 왕의 무덤이었지만, 단지 한 사람만을 위한 장소는 아니었다.
람세스 4세.
그는 끝나가는 제국의 손에 들려 있던 마지막 이상이었고, 무너지는 질서 안에서 무언가를 새로 세우려 했던 조용한 손길이었다. 그의 무덤은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죽음을 수직으로 세우는 방식, 기억을 문장으로 고정하는 언어, 이름을 영원으로 건너가는 길로 삼는 문명을 보았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이런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무섭고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벽에 새겨진 행렬처럼, 이름 뒤에 이어지는 상형문자처럼, 죽음도 어떤 순서와 질서 속에 포함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야말로, 이 무덤이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뒤돌아보았다. 돌 속에 갇힌 파라오의 이름은 바람 속에 사라지지 않고, 이 계곡의 모든 무덤이 그러하듯, 한 세계의 마지막 침묵으로, 다음 생의 문턱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 나는 왕가의 계곡에서 마지막으로 들어설 무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람세스 5세와 6세.
두 왕의 이름이 하나의 공간 위에 겹쳐진 그 장소에서,
또 한 겹의 시간과 마주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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