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세르와 세트나흐트, 충돌과 공존의 흔적을 따라 걷다
메르넵타의 무덤을 나서는 순간, 마음 어딘가에 고인 먹먹함이 흘러내렸다. 그 무덤은 한 왕의 이름이 새겨진 것이었지만, 그 이름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 것은 아버지의 그림자 속에 존재했던 아들의 고독이었다. 람세스 2세라는 태양 아래서 형성된 세계가 얼마나 눈부셨는지를 다시금 느낀 후, 나는 또 다른 무덤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KV14.
한 무덤이 두 사람의 이름을 품고 있었다.
타우세르와 세트나흐트.
하나는 여왕, 하나는 왕. 하나는 19 왕조의 마지막을 지키던 사람이었고, 다른 하나는 20 왕조의 시작을 열었던 이였다. 같은 시대에 속했으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역사를 바라보았던 두 인물. 그들의 이름이 함께 적힌 무덤 입구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나는 두 시간의 조각이 겹쳐진 통로로 들어서려 한다. 그 문은 지나간 시대를 정리하는 것이기도 하고, 새로운 시대의 서곡을 조심스럽게 여는 일이기도 하다.
한 무덤에 두 파라오의 이름이 나란히 놓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 표지판은 마치 국경을 알리는 표식 같았다. 하나는 끝을 향해 걸었던 이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시작을 준비한 자의 이름이었다. 그 경계에 선 채, 나는 두 시간대의 틈 사이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타우세르와 세트나흐트.
여왕의 이름과 왕의 이름이 서로를 견디며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은, 이 무덤이 단순히 공간을 공유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철문 너머로 들어가면 만나게 될 것은, 돌과 안료로 칠해진 그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권력의 숨결이 교차한 흔적일 것이다.
누군가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이곳을 자신의 안식처로 삼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전 왕조의 유산을 딛고 서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이 무덤을 재편했다. 동일한 통로, 동일한 벽, 동일한 지붕 아래에서 두 인물의 시간이 충돌하고 겹쳐지며, 이곳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되기를 거부하는 듯 보였다.
이름은 나란히 쓰였지만, 그 이름이 지닌 무게는 같지 않았다. 하나는 점점 잊혀갔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덮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려 했다. 그러나 기억이란 그렇게 쉽게 덮이지 않는 법이다. 철문 앞에 선 순간부터, 나는 그 이중의 시간과 이중의 무게를 어깨 위에 조용히 얹게 되었다. 그 무게는 단지 과거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무덤 안으로 걸어 들어갈 사람의 자세를 바르게 세우는 무언의 교정처럼 느껴졌다.
나무로 덧댄 경사로는 깊은 무덤 내부로 이어진다.
이 길은 단순히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아니라, 점차 ‘죽은 자의 세계’로 스며드는 감각의 회랑이었다. 입구에서 몇 걸음을 옮기자마자, 공간은 곧장 침묵에 잠겼고, 공기의 결조차 달라졌다. 방문객의 발자국 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벽으로부터 피어나는 서늘한 숨결이 천천히 온몸을 감쌌다.
왕가의 계곡 무덤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무덤 역시 ‘하강’을 통해 사후세계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KV14는 다른 무덤들보다 한층 더 긴장된 공기를 품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지 두 왕의 무덤이 하나로 합쳐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이 무덤이 만들어진 ‘시대의 공백’을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타우세르는 19 왕조의 마지막을 지킨 여인이었다.
왕비로 시작해 섭정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여왕 파라오’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새긴 사람. 그녀는 세티 2세의 사망 이후, 뒤따라야 할 왕이 부재한 혼란 속에서 실권을 장악했고, 왕의 의복과 왕의 칭호를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그러나 파라오의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서, 그녀의 즉위는 담대한 결단이자 동시에 위험한 도전이었다.
벽화를 바라보며 문득 묻는다.
“당신은 그 왕좌에 정말로 앉고 싶었던 건가요, 아니면 누군가가 앉아야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선 건가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색이 바랜 안료와 정갈한 윤곽선이 대신 말해준다. 당신은 위엄을 지키려 했고,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노라고. 그러나 시대는 그 평온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무덤은 원래 그녀의 것이었다. 통로도, 방도, 장례 의식의 상징들도 그녀를 중심으로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벽에 남았지만 역사에서는 점차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등장한 인물이 세트나흐트였다.
그는 전 왕조의 혼란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왕위를 차지했고, 새로운 20 왕조의 문을 열었다. 재건의 이름으로 그는 이전의 흔적을 지우기보다는, 그 위에 새로운 구조를 쌓았다. 타우세르가 남긴 무덤의 길이에 자신의 깊이를 더하고, 무게중심을 자신에게로 옮겨왔다. 나는 벽면을 따라 걸으며 속삭이듯 되묻는다.
“이곳이 여전히 당신의 집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지나간 이름 위에, 그가 살고 있는 건가요?”
그림자처럼 겹쳐진 두 이름 사이로, 역사는 한 무덤에 두 사람을 묻었다. 이곳은 더 이상 누구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전과 후가 충돌하고 겹쳐지는 시간의 틈이었다.
통로 벽면에 새겨진 첫 번째 장면은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Anubis)의 모습이다. 이 신은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자를 보호하고 인도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는 마치 안내자처럼 정면을 향해 조용히 서 있었고, 그 곁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인물들이 열을 지어 서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벽에 적힌 히에로글리프를 통해서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무언가를 향해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장면은 마치 환영의 의례처럼 보인다. 죽은 자가 사자의 세계에 입장하는 순간, 그를 맞이하는 신들의 모습. 침묵의 공간 속에서 아누비스는 말없이 손짓으로 그 길을 가리킨다. 신과 인간이 함께 걷는 이 벽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의례 그 자체였다.
그다음 장면은 여러 신들이 마주 선 의례 장면이었다.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 염소 머리의 신, 그리고 다시 아누비스. 그들은 단순히 늘어선 형상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는 분명히 어떤 말 없는 대화가 흐르고 있었다. 팔을 내밀고, 몸을 약간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들. 그 손끝에 머문 정중함은 마치 오래된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장면처럼 보였다.
나는 천천히 그 앞에 멈춰 섰다.
"이건... 축복인가요? 아니면 심판인가요?"
작게 중얼거리자, 어쩐지 그중 한 신이 나를 흘끗 돌아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환상일 테지만, 그 시선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둘 다다. 환영이며 동시에 시험이지.”
한쪽 손은 공손히 내밀어 인사를 건네고 있었고, 다른 손은 의례의 도구 "아마도 생명의 상징인 ‘앙크’였을 것이다"를 단단히 쥐고 있었다. 그 손끝에서 묻어나는 단호함은, 이곳이 신들과 인간이 구분되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승인하고 받아들이는 ‘경계의 자리’ 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벽에 그려진 신들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고, 그 말은 침묵 속에서 더 또렷하게 울렸다.
“여기 묻힌 자는 이제 단순한 인간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다시 일어설 존재다.”
나는 그 벽화를 바라보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이 그림은 죽은 자의 부활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언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인 사건'처럼 벽에 살아 있었다. 그 안에서 파라오의 존재는 여전히 깨어 있었고, 나는 그 시간의 틈에서 마치 순례자처럼,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부활을 눈으로 확인하기라도 하듯이.
길이 조금 넓어지면서 벽화의 밀도가 한층 짙어졌다. 그림은 더 이상 상징만이 아니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움직임이었다. 의례의 장면은 살아 있는 듯 이어졌고,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수행하고, 견디고 있었다. 사후세계는 단지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 거쳐 가야 하는 통과의 공간임을 이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왼쪽 벽면에는 한 파라오가 제관들과 함께 서 있었다. 파라오는 지팡이를 들고, 커다란 왕관을 쓴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곁에는 나란히 선 남자들이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의 발아래에는 상형문자들이 단단히 기초를 이루고 있었고, 그 발치에서 올라온 시선은 왕을 받드는 구조처럼 보였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장면은 당신의 즉위식인가요? 아니면 신 앞에 서는 마지막 의식인가요?”
대답은 없었지만, 정면을 응시하는 왕의 표정은 뜻밖에 담담했다. 마치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 살아 있는 자들이 왕을 떠받들 때보다, 죽은 자로서 신 앞에 서는 왕이 더 위엄 있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 옆 벽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사람의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 뱀과 새, 도끼와 곡식, 물병과 그릇, 의식용 장신구들이 세밀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도상은 복잡했지만 무질서하지 않았다. 이 장면은 파라오가 사후세계로 가져가야 할 의례적 전재물들이 일목요연하게 나열된 공간이었다. 사자의 심장을 씻기는 물, 생명력을 보존하는 향, 나일강의 축복을 상징하는 병들, 정화와 무장을 동시에 상징하는 도끼와 창. 어떤 것은 공격용이고, 어떤 것은 방어용이며, 또 어떤 것은 환대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마치 파라오의 장례를 준비하는 사제처럼 그 하나하나를 눈으로 읽어가며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없으면, 당신은 저 너머를 지나갈 수 없었겠군요.”
도상은 응답하듯 조용히 침묵을 흘렸다.
그 침묵 안에 수천 년의 장례법이 녹아 있었다.
그다음 장면에서는 두 남자가 등장했다. 한 사람은 활을 쥐고 있었고, 다른 이는 두루마리나 막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앞서 본 왕관을 쓴 자가 이 장면 속에서는 사라졌고, 이제는 ‘길을 준비하는 자들’만이 남아 있었다. 활을 든 이는 왼쪽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고, 그 시선은 무언가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었다.
“무엇을 겨누고 있는 건가요?”
내가 속삭이자, 벽화 속 인물이 활시위를 한층 더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활의 끝이 가리키는 것은 아마도 죽은 자 앞을 막고 있는 공포, 혹은 시험의 형상이었을 것이다. 벽화 속 또 다른 인물은 손에 쥔 것을 아래로 내리며 눈앞의 상형문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문자들은 ‘눈’, ‘생명’, ‘질서’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마치 시각과 이해, 기억과 통과를 동시에 요청하고 있었다.
“읽을 수 있어요?”
내가 벽에 묻자, 침묵이 내 안에서 되돌아왔다.
“그건 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무언가의 전승은 항상 문자 너머에서 이루어지듯, 이 장면은 단순한 해독이 아니라, 경험과 체험의 공간이었다.
다음 공간은 보다 역동적인 장면이었다. 왼쪽에서는 누군가 손짓을 하고 있었고, 가운데 인물은 바닥에 엎드린 동물 앞에서 도구를 들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인물은 초록색 피부를 지닌 신이었다. 나는 숨을 잠시 멈추고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제사의 절정이자, 죽음과 재생이 교차하는 의례의 핵심 장면처럼 보였다.
“무엇을 바치고 있는 거죠?”
묻는 순간, 가운데 인물의 동작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단지 짐승을 도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피를 통해 무언가를 부활시키고 있었다. 그 피는 죽은 자의 심장을 깨우는 물이었고, 신 앞에 나아가기 위한 마지막 예식의 열쇠였다. 옆에 선 초록빛 피부의 존재는 오시리스였다.
죽음과 부활의 신.
그는 조용히 서 있었지만, 그 시선은 매우 강력했다.
“그는 통과할 수 있을까요?”
양쪽 벽면에는 또 다른 두 장면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왼쪽은 호루스를 중심으로 한 신들의 장면이었고, 오른쪽은 다시 파라오와 신의 접촉 장면이었다. 매머리를 한 호루스, 원반을 머리에 인 라, 머리를 곧게 세운 여신. 신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그들의 동작은 인사와 환대, 승인과 축복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 앞에서 파라오는 두 손을 공손히 올리고, 마치 “나는 준비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이 장면 앞에 오래 머물렀다.
“이런 대면이 가능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요?”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신 앞에 선다는 것, 그것은 경배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걸고 드러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림은 조용했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울림은 매우 크고 진동이 컸다.
이것은 벽화가 아니라 의식의 거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천장을 가득 메운 장면 앞에 섰다. 거대한 날개를 펼친 여신이 중앙에 있었다. 그 아래에는 줄지어 앉은 인물들과, 또다시 등장한 태양의 배가 항해하고 있었다. 여신은 전면을 덮고 있었고, 그녀의 팔은 마치 시간을 껴안고 있는 듯 넓고 안정적이었다. 그녀 아래 파라오가 탄 배는 하늘의 강을 따라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고, 그 위에 선 이들은 모두 허리를 곧게 펴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항해는 상징이 아니라, 실제가 되었다.
왕은 떠났다.
그는 신들에 의해 안내받고, 제사에 의해 정화되었으며, 마침내 이 우주적 여정의 주인공으로 새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항해는 단절이 아니라 순환이었다. 파라오는 죽음 이후, 다시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 시간은 더 이상 과거도 미래도 아니었다. 그것은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품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그러자 벽화 속 인물 하나가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끝은 없다. 너도 이미 그 위에 올라탔다.”
그 말에 등을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 벽화를 벗어나는 순간, 나는 무언가를 잃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받아들인 기분도 들었다. 나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항해가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계단을 오른다.
이미 긴 여정이었다. 벽화 하나하나를 따라 신들의 제의를 목격하고, 태양의 항해를 따라 내려왔지만, 무덤의 깊이는 끝나지 않은 듯 계속 이어졌다. 발밑의 나무 계단은 마치 시간의 결을 밟는 것 같았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눈앞에는 빛이 드리운 방 하나가 열리고 있었다. 희미하게 반사된 햇살이, 무덤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닿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죽은 자의 세계는 어둠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엔 묘한 따스함이 있었다.
“여기가 끝인가요?”
내가 묻자, 가이드도 아닌 동행자도 아닌,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여기는 끝이자 시작이지.”
기둥에 새겨진 신들은 여전히 무거운 눈빛으로 지나가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누비스의 검은 얼굴과 그의 반대편에 있는 붉은 피부의 여신은, 서로 등을 맞댄 채로,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 너머로 펼쳐진 공간은 다른 세계였다. 그건 단순히 묘실이 아니라, 살아 있는 벽들이 이야기를 속삭이는, 마치 하나의 성소 같았다.
그 방의 중심에는 수많은 뱀들이 있었다. 아니, ‘그려진 뱀’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상징들’이었다. 몸을 구부리며 무한히 뻗어 나간 그 생명체들은 마치 시간 자체를 상징하는 듯했다. 뱀의 몸통마다 들어앉은 인간 형상의 존재들은 입을 다문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 침묵은 죽은 자의 고요함이 아니라,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전의 기다림처럼 느껴졌다.
“이들은 누구인가요?”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속삭였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고요한 무덤 안에 울림처럼 번지는 내 목소리가 들렸다. 눈앞에는 길게 몸을 틀고 있는 뱀이 있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수천 겹으로 감긴 시간의 고리처럼 보였다. 뱀의 몸통 사이사이, 하나의 마디마다 사람 형상의 존재들이 정지된 자세로 들어앉아 있었다. 그들은 말이 없었고, 눈을 감은 듯, 혹은 깨어 있는 듯, 모호한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뱀의 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곡선 속에서 반복되는 얼굴들, 다소간의 표정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뱀의 내장은 마치 고요한 어둠 속의 산실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궁과도 같은 구조. 시간을 품고, 존재를 잉태하며,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이집트식 부활의 상징이 거기 있었다.
그때, 내 안에서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앞방에서 보았던 태양의 배. 밤의 하늘을 항해하는 라의 배에서 사람들은 몸을 낮추고 있었고, 신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라가 밤을 지나 아침으로 향하듯, 이들도 ‘어둠의 시간’을 통과해 다시 빛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들도 언젠가 다시 걷게 되겠죠?”
내가 벽을 바라보며 말하자, 동행하던 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여긴, 멈춘 곳이 아니라 기다리는 곳이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이 공간이 무섭지 않게 느껴졌다. 오히려 따뜻했다. 영원히 잠든 자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깨어나게 할 시간’을 품고 있는 이들. 어떤 심판이나 죄의 무게보다, 기다림과 가능성이 더 큰 세계.
그리고 그 뱀 옆, 벽면 한쪽에는 팔을 벌리고 선 한 신이 있었다. 그는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디딘 채로, 양팔을 좌우로 넓게 펼치고 있었다. 그 팔은 누군가를 막으려는 듯도 했고, 동시에 무언가를 품으려는 듯도 보였다. 눈빛은 단호했지만, 입가에는 어쩐지 슬픔이 어려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호하는 자였을까, 아니면 통과시키는 자였을까. 아니면 그 경계를 지키는 문지기였을까?
나는 벽화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자세는 묘하게 나를 위로했다. 단호하지만 부드럽고, 냉정하지만 품어주는 힘. 나도 언젠가, 이런 공간을 만나게 될까. 누군가의 뱀 속에 안겨서, 어둠의 시간을 통과하고, 그 끝에서 누군가의 팔을 다시 마주하게 될까. 그런 상상이, 이상하게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해했다. 이들은 단지 죽은 자가 아니었다. 이들은 부활을 기다리는 존재들이었고, 그 곁의 신은, 부활을 기억하는 존재였다.
기둥 하나를 도는 순간, 또 다른 신이 보였다. 푸른 피부, 사자의 얼굴, 그리고 두 손에는 곡괭이 같은 형상의 도구를 쥐고 있었다. 그는 무덤의 정문을 지키는 문지기 같았다. 모든 것을 관통한 이들이라야 지나갈 수 있게 허락하는 듯한 태도. 그의 뒤에는 더 이상 벽화가 없었고, 하얗게 탈색된 벽면만이 남아 있었다. 그 공간은 마치 말 없는 종말 같았다. 그러나 곧 다음 방에서 다시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침내 중심, 석관의 방에 도착했다. 큰 화강암 덩어리가 중앙에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흐릿한 파라오의 형상이 남아 있었다. 이미 얼굴은 다듬어지지 않았고, 윤곽만이 희미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형상은 또렷하게 내 안에 각인되었다. 그는 죽어 있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으로.
무덤의 구조는 직선적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시간의 곡선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복도는 단순한 이동의 통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 생애의 복기였고, 모든 의식의 차례였다. 처음에는 살아 있었고, 그다음은 신을 만났고, 그다음은 죽음을 받아들였고, 그리고 여기,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벗어난 곳에 다다른 것이었다.
나는 석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그 어떤 설명도, 해석도 의미 없었다. 여기는 단지 침묵으로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아무 말 없는 침묵이 아니라,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은 고요였다. 다시 복도를 따라 걸어 나오며,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죽는다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머무는 거였군요.”
어쩌면 파라오는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니라, 이 무덤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무덤이 그를 위해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일지도.
지금도. 그때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내려올 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훨씬 더 조심스럽게. 무거운 침묵이 내 발끝에 남아 있었고, 내 눈동자 안에는 아직도 무덤 깊숙한 곳의 어둠이 흔들리고 있었다. 뒷걸음질 치는 발걸음 속에서,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아직 거기에 있는 것만 같아서였다.
누워 있는 파라오의 흔적. 아니, ‘누워 있었다고 여겨지는’ 그 무엇.
햇빛이 무덤 입구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고, 그 빛은 마치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아침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나는 쉽게 밝은 바깥으로 걸어 나갈 수가 없었다. 내 안의 시간은 아직 무덤 안쪽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두고 나가는 기분. 무언가를 남겨두고 돌아서는 마음. 나에게 이곳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장례식’ 같았다. 끝나지 않은 의례. 반복되는 복도처럼 순환하는 시간.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진짜 부활은 그들이 아니라, 이 공간을 지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파라오가 신과 함께 항해하며, 잠든 이들을 깨우는 것처럼, 무덤을 지나온 나 또한 무엇인가를 깨우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죽음을 위해 준비된 이 공간이, 지금 살아 있는 나의 감각을 흔들고 있었다. 숨겨졌던 질문을 꺼내고, 무뎌졌던 감정을 다시 만지게 하고, 잊고 있던 ‘머묾’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들고 있었다.
살아간다는 건 늘 어딘가로 달려가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무덤은 말했다. 멈추는 것이 시작일 수 있다고. 머무는 것이 사라짐이 아니라고. 그리고 존재의 진실은, 때때로 가장 조용한 곳에 있다고.
나는 마침내 입구를 통과했다. 발밑에는 다시 모래와 자갈이 섞인 길이 펼쳐졌고, 바깥의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아직도 내 안에는 그 어두운 복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마치 그 무덤이 나를 잠시 품었다가 다시 내보낸 것처럼. 그리고 나는 그 품 안에서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듣고 나온 사람처럼, 조금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세트나흐트와 타우세르.
그들이 진짜로 누구였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남긴 공간, 그들이 묻힌 방식, 그들이 준비했던 세계를 통해, 단 하나의 문장을 얻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품고, 다시 살아 있는 자들의 세계로 나왔다. 조용히. 천천히. 그리고 조금은 더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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