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단상

혹한을 견디는 용기

by 김광훈 Kai H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집 뒤편의 숲 속을 살펴보곤 한다. 가끔 쓰러진 나무도 있지만 대부분 그 경험이 나무에 축적되어 더 강해진 나무들로 거듭난다. 지금 보고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은 죄다 그런 간난신고를 통과한 승리의 주인공들이다. 강한 건 나무뿐만이 아니다. 동네 산책하다 보면 ‘피가 끓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한 겨울인데 반바지 차림에 양말도 안 신고 돌아다닌다. 물론 주로 20~30대다. 한마디로 경이롭다. 여류 저널리스트 릴리안 로스에 의하면 그녀가 아이다호로 헤밍웨이를 찾아갔는데, 그가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서 양말도 신지 않고 슬리퍼 바람으로 꽁꽁 언 눈밭에 서서’ 그녀를 맞았다고 한다.

난 겨울을 많이 타는 것은 아니지만 추울 땐 눈치 보지 않고 겹겹이 옷을 껴입는다. 겨울을 탄다라는 영어 표현은 어떻게 할까 궁금한 적이 있다. 영어에 가장 가까운 표현은 Winter affects me a lot일 듯하다. Affect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에선‘영향을 끼치다’라는 의미다. 영어와 국어가 공통점이 많지만, 문화, 역사, 사고가 다르다 보니 표현하는 방법도 이따금 다를 수 있다.



겨울은 귀족의 계절이라는 말대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겐 혹독한 시간이다. 지금은 연탄을 주거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일이 흔치 않지만, 오래전엔 서민의 필수품이었다. 예전에 여의도에서는 연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놀란적이 있다. 연탄을 낱장으로 사는 처지였다가, 직장인이 되어 수십 장을 한 번에 사서 주인집 한 편에 쌓아두고 흐뭇하게 생각한 기억이 난다. 연탄의 한 가지 문제점은 연소할 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가 치명적이다. 신문마다 일가족이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망했다는 기사가 없는 날이 별로 없었던 듯하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운이 나쁘면 걸려드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탐독했던 20권의 왕비 열전 저자 김영곤도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이른 나이에 작고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연탄가스로 인한 중독이 사회 문제로 비화하자 중산층 아파트부터 가스를 사용하는 방안이 1970년부터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후 연탄이 서울 시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없어질 즈음, 연탄길이라는 이철환 작가의 책이 출간되어 문자 그대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 그 시절을 기억하고 공감하는 독자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시골 일부에서 연탄을 난방으로 사용하는 곳이 있다지만, 이젠 역사의 뒤꼍 길로 사라진 추억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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