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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Gang Jan 29. 2020

12년의 학생, 6개월의 학부모 그리고 새로운 환경

일반적인 한국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12년의 학교생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대안학교이니, 홈스쿨링이니 (한국의 정확한 제도는 잘 모르겠다) 하는 개념이 내가 클 때만 해도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 남들과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왔다. 다만 내 학교생활에서 조금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던 점은 초등학교 1~2학년 때 사립초등학교를 다녔다는 점이다.  


시골이긴 하였지만, 대기업의 제조공장이 있었던 연유로 그 회사에서 사립초등학교를 세워서 그 대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그 자식들이 그 사립초등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부모님의 직장이 대부분 같은 회사였고 단지 직급의 차이가 조금 있었을 뿐이었을 것 같다. 나의 아버지는 간부급 직원은 아니었지만, 나의 부모님은 첫째에 대한 욕심은 둘째가라면 서러우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덕분에 첫 2년을 사립초등학교에서 다녔다.  


내가 기억하는 사립초등학교는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고 갔고, 당시 대통령이 방문하기도 했었고, 아침에 크리스마스 캐롤을 영어로 배우는 수업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몇몇 캐럴이 영어로 입에 붙어 다닌 걸 생각하면 상당히 재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시골의 학교들은 대부분 나무 바닥이었는데, 오래전인데도 잘 정돈된 사무실 건물의 밑바닥처럼 깨끗한 교실에 학생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각 반마다 복도 한편에 개수대가 있었던 걸 보면 나름 럭셔리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대략 30년도 넘은 시점 이야기지만 한 반을 가득 매운 컴퓨터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울러 건물 옆에 외국인 학교가 별도로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빠듯한 살림에 사립학교를 보내기가 쉽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2학년이 마치고 3학년이 되자 나는 집에서 가까운 공립학교로 전학을 와야했다.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갑자기 마룻바닥에 한 반 가득 찬 나무 책걸상, 그리고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화장실이 건물 뒤 별도 건물에 소위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첫 날을 보내고 집에 가서 학교 가기 싫다고 한바탕 난리를 쳤는데, 어머니한테 한참을 혼났던 것 같다.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당시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하셨으랴. 


하지만 어린 나이는 사고를 참 유연하게 만들었던지 금방 친구들과 잘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가끔씩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과자 파티를 해주시곤 했던 어머니 덕택에 친구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것도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없는 살림에 환경이 바뀐 아들의 아픈 안쓰러운 마음이셨던 것 같다. 아버지 머리를 닮아서였던지 전교 1등을 하거나 그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공부도 꽤나 잘하고 (시골에서) 반장도 하는 그런 학교생활이었다. 


5학년이 되자 부모님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울산으로 이사를 했고, 다시 나는 전학을 해야 했다. 시골에서 온 촌뜨기가 도시에 오니 새삼 모든 것이 신기했고, 첫 시험에서 쟁쟁한 도시의 아이들을 제치고 반에서 수위를 차지하자 공부를 꽤나 한다고 했던 친구들이 경계심을 감추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얼마 가지 못해 도시의 신문물에 빠진 촌뜨기는 금방 순위권에서 멀 지기 떨어져 버렸다 (당시 5학년 때 전학을 와서 처음 에스컬레이터 라는걸 타보았다 -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촌뜨기로 살며, 남들과 비슷한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을 거쳐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고, 대학원을 거치는 등 몇몇 한국의 주요 도시들과 한국과 미국을 왕복을 한 뒤에 UNIST의 교수가 되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당시 첫째 딸이 4살이었는데 유치원을 못 찾아 전전하다가 신도시에 새로 생긴 유치원에서 4,5,6세를 마치며 유치원 교육을 하게 되었고, UNIST에서 다시 미국행을 결정짓고 난 다음 해에 첫째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초등학생의 학부모가 되고 한 학기만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어 미국에서 다시 1학년 처음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나의 장황한 학창생활과 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이미 30년도 차이가 나는 시차가 있어 이렇다 평가할 수는 없고, 단지 한 학기만 초등학생의 학부모가 되었기에 이를 일반화하거나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 역시 부모로서 아이를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고 싶은 마음은 누구 못지않고 이러한 마음가짐은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세상 어디에 이만큼 교육에 열정을 가진 부모가 있을까. 그래서 조기유학이니 원정출산이니 하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미국의 공립학교를 겪고 있는 삶을 정리해 보면서 혹시 한국의 환경과 다른 점은 무엇이고 서로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궁금해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가 더욱더 배우기 위해 이 시리즈를 준비해 보려고 한다. 



출처: https://07701.tistory.com/134?category=824459 [강박의 2 c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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