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외면당한 메리의 죽음, 식민주의와 반여성주의

도리스 레싱, 《풀잎은 노래한다》

by ENA
KakaoTalk_20250125_131345991.jpg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의 첫 작품. 어린 시절 남아프리카의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 이주하여 서른 살까지 살았던 경험이 이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살인 사건에 대한 독자 투고에서 소설이 시작된다. 죽은 이는 메리 터너라는 백인 여자였고, 범인은 하인으로 일하던 흑인 원주민 모세로 바로 붙잡힌다. 시체를 처음 발견하고 신고한, 영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청년 토니는 사건을 보이는 그 자체로, 또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진술하려고 하지만 가로막힌다. 모든 사건이, 특히 소설에서 다루는 사건이 그렇듯 이 사건에는 거기까지 이르게 된 이야기, 숨겨진 무엇인가가 있다.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성실한 농사꾼인 남편 리처드가 나쁜 여자 메리를 만나 망가졌다고 측은하게 여긴다. 책임은 메리에게 있는 듯 보인다. 살인을 한 모세는 처벌을 받겠지만, 메리에 대해 동정심을 갖는 이들은 거의 없으며, 사람들은 냉담하다. 도시녀였던 메리가 리처드와 결혼 후 시골로 온 후 사람들과도 교류하지 않으면서 흑인 일꾼들에게 가혹했으며 리처드를 괴롭혔다고 여긴 것이다.

도리스 레싱은 메리의 어린 시절부터 시계를 돌린다. 궁핍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였다. 그녀는 사랑스러운 아이도 아니었다. 커서 직장을 다니면서는 자신의 몫을 하는 여성이 되었고, 나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갔다. 남성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메리였지만 자신과 친하다고 여긴 이들이 자신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듣게 되면서 불현듯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극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리처드와 결혼하면서 구원을 받는 거라 생각했지만, 애정 없이 필요에 의해서(그건 리처드도 마찬가지였다) 하게 된 결혼은 그녀에게 불행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리처드는 능력이 없었다. 그도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결혼으로 생기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와 변화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 리처드를 보며 메리도 낙담하게 되고, 탈출하려 했으나 이미 자신은 도시에서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만다. 그녀는 더욱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혼 이후 메리의 인생에서 극적인 계기는 남편 리처드의 말라리아였다. 원주민에 냉혹했던 메리였는데, 리처드가 몸져눕는 바람에 농장 일을 맡게 되면서 원주민 일꾼들에 대한 냉혹함은 더해졌다. 모세는 그때 그녀에게 채찍을 맞고 상처를 입은 이였는데, 남편 리처드는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한 채 그를 하인으로 집에 들인다. 하인을 계속 해고했던 메리는 리처드는 더 이상 해고했다가는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경고를 듣고는 이도저도 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튼튼한 몸을 지닌 모세에게 남성적인 매력마저 느끼게 된다.


메리의 내면세계는 더욱 피폐해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리처드 역시 망가진다. 농장은 더욱 어려워지고, 결국은 호시탐탐 노리던 이웃 농장의 찰리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영국 청년 토니는 리처드, 메리 부부가 농장을 넘기고 몇 달 여행 다닐 동안 농장을 맡아 주기로 온 것이었다. 메리는 토니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또 다른 구원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지만, 그 기대는 깨진다. 오히려 메리, 토니, 모세 사이의 묘한 긴장감만 조성되고, 결국 메리와 리처드가 떠나기로 한 날 새벽 모세는 메리를 살해하고 만다.


이 작품에는 식민지 사회의 병리 현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종주의에 찌든 아프리카 이주 백인 사회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여성에 대한 편견 역시 이 비극적 결말의 원인이었다. 도리스 레싱이 고발하고 있는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반여성주의가 현대에는 달라졌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프라하에서 만난 세 소녀,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