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F. 월터,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버라 월터는 오랫동안 내전을 연구해온 학자다. 그녀가 관심을 가졌던 지역은 아프리카 여러 국가, 옛 유고슬라비아가 붕괴된 후의 보스니아, 후세인 제거 이후의 이라크, 소련 붕괴 후의 우크라이나, 시리아, 필리핀, 스리랑카, 미얀마, 북아일랜드 등의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정치 불안정 연구단(Political Instability Task Force)의 소속되어 내전을 예측하는 모델을 구축하고, 이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확인한 불안정 경고 징후가 미국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2021년 1월 6일 트럼프 대통령 낙선 이후 미국 의사당 폭동 이전의 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이전의 일이다.
저자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내전의 전조 증상과 전개 양상, 그리고 그로 인해 파괴된 일상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내전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징후, 혹은 요인으로 몇 가지를 지목하고 있다. 그중 첫 번째가 아노크라시(anocracy)다. 완전한 독재(autocracy)도 아니고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상태를 일컫는 이 용어는 내전의 가능성을 매우 높은 정도로 예측한다. 독재 국가(여기서 예로 드는 국가는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같은 나라들이다)에서는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가장 민주적인 체제에서도 내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중간 상태의 국가들, 그러니까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로 이전을 꾀하는 나라, 민주주의 국가였으나 권위주의 정권으로 인해 정치적 억압이 증가하는 나라에서 내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지적하는 것은 ‘파벌주의’다. 단순한 정치적 양극화가 아니라 종족, 종교, 지역에 기반을 둔 파벌주의는 아노크라시와 함께 내전 발발 가능성을 아주 높게 예측한다. 기회주의적 지도자들은 파벌주의를 교묘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이용하면서 국민을 갈라놓고 국가를 내전 상태로 이끈다. 그들은 여기서 이익을 얻는다. 고정적인 정체성에 기반을 둔 정당은 국민들이 편을 바꾸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내전을 부추긴다.
내전을 일으키는 집단은 어떤 집단일까? 억압받고 낮은 지위를 유지하던 집단이라면 내전을 일으킬까? 저자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원래 가지고 있던 지위를 상실하면서, 혹은 상실할 위험에 처하면서 그것을 막고, 되찾기 위해서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필리핀의 모로족, 조지아의 압하지야인, 인도 북동부의 아삼인 들의 일으킨 반란은 소득불평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지위 상실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희망이 사라질 때도 내전이 부추겨진다. 저자는 북아일랜드의 내전이 바로 그 예로 들고 있다. 영국 본토 정부의 중재를 희망했던 북아일랜드 가톨릭교인들은 오히려 그들의 시위가 영국군인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하면서 희망을 잃고 총을 들 수밖에 없었다. 시리아도 그랬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이 내전을 촉매하는 것이 있다. 바로 ‘소셜 미디어’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판도라의 상자라 칭하고 있다. 규제를 받지 않는 개방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내전으로 이어지는 조건을 부추기는 완벽한 촉매라고도 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급진적 생각을 퍼뜨리고 과격한 행동을 부추긴다. 이는 유발 하라리가 《넥서스》에서 피력한 생각과 유사하다. 유발 하라리가 정보 혁명에 대한 순진한 관점을 경고하였다면 바버라 월터는 직접적으로 내전으로 이어지는 소셜 미디어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유력하지 않던 후보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서 집권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그들은 가짜 뉴스와 과격한 주장을 통해 유권자들을 현혹한다. 저자는 “지금은 유권자들 스스로가 독재를 탄생시킨다.”고 쓰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 각지의 내전을 연구한 저자는 미국이 얼마나 그에 가까워졌는지를 분석한다. 그녀의 결론은 미국은 두 번째 내전에 이를 가능성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세력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이 폭발한 것이 바로 2021년 1월의 의사당 폭동이었다. 다만 저자는 “트럼프가 똑똑하지도 않고 정치적 경험도 미숙해서 미국은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그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당선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미국 걱정할 때가 아니다. 앞서 지적한 내전의 징후가 우리와 상관 없까? 아직 아나크라시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며, 정치 양극화를 넘어 파벌주의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고, 과거 주류를 이루었던 세력이 점점 소수화되면서 흐름을 역전시키고자 한다. 여기에 유튜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 책에서 한국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북한은 몇 번 언급된다. 독재로 인해 내전 가능성이 매우 낮은 나라로), 언급되더라도 선거제도의 우수성(!)과 관련해서 언급될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을 미국보다도 우리나라에 더 큰 경고로 여기고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