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완성되지 않는다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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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날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9쪽)


33살의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가 내놓은 여섯 번째의 소설. 이미 그의 이름은 드높았고, 예상대로 공쿠르상을 받았다. 1978년이었다.


노벨문학상은 특정한 작품에 주어지지 않지만,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이 작가가 호명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언급해왔다.


"이제부터 당신 이름은 '기 롤랑'이오." (14쪽)


기억을 잃은 한 흥신소의 퇴역 탐정이 자신의 과거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 소설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쓰라면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첫 문장처럼 기억이 없기에 과거가 없고,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이야기다. 하지만 당연히 소설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런 줄거리를 넘어선다.


기 롤랑이라 불리지만 기 롤랑은 아닌 '나는 한 장의 사진과 부고(하씀)에 서 시작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리고 조금씩 과거에 접근하고, 어떤 과거를 재구성해는 데 성공해 낸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역설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는 정말로 과거를 되찾았는가? 아니면 단지 그는 과거를 만들어 냈는가?

혹 그가 기억해 낸 과거가 정말로 그의 것이 아니라고 한들 그게 정말 그의 기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기억이란 이미 다시 만들어지는 것인데...


과거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그의 기억은 어느 한 시가기의 장면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과거는 완성되지 않았다. 구멍 뚫린 시간은 어떻게 메울 것인가? 그가 지금부터 재생해 내는 과거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근거는 있는가? 겨우 초콜릿이나 비스킷의 낡은 상자들 속"에 갇혀 있는 기억들.


모디아노는 소설을 통해 이렇게 우리가 딛고 있는 과거라는 디딤돌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허약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 나라면 더욱 그렇다.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기억이 포함하고 있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나, 그리고 이어지는 미래에 대해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이며, 일관된 삶을 지탱해 주는 막강한 힘이라는 통념을 과감히 거부한다.


기억 밖에서 과연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아픈 자각이 과거를 찾아야만 한다는 행동으로 이어지지만 그렇게 해서 찾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과연 자신의 정체성에 얼마나 절대적일지 확신할 수 없다.


모디아노의 소설은 그렇게 과거를 기억하는 것에 대한 공허함과 두려움을 줄기차게 쓴다고 한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그것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기억 속에 구멍이 나버리는 거예요."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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