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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연구와 제국주의, 노예제, 전쟁

짐 다운스, 『제국주의와 전염병』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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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책이다. 선입견이겠지만, 나는 제국주의가 식민지에 전염병을 어떻게 퍼뜨리고, 이용했는지를 다룬 책 정도로 여겼다. 물론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과 미국 등의 정책 책임자, 의사 들이 식민지의 전염병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쓰고 있지만,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결이 좀 많이 다르다. 그런데 그런 점이 아쉽지는 않다. 내 기대대로만 쓰여진 책은 마음의 안정을 주긴 하겠지만, 내 인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키지 못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뭔가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나는 것은 반가워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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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당황스러웠다. 저자는 제국주의 내지는 식민주의를 전염병과 관련하여 강력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제국주의, 노예제, 전쟁이 전염병에 대한 이해를 증신시켰다는 측면에서 쓰고 있다. 마치 그런 것들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자고 설득하는 느낌마저 드는 대목도 있다. 이 책이 제국주의, 노예제, 전쟁이 전염병의 ’확산‘에 미친 영향을 다룬 게 아니라 그 전염병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룬 책이어서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껄끄러운 것만은 사실이다.


정말 이 책이 제국주의라든가, 식민주의, 노예제, 전쟁을 옹호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고, 저자가 어떤 의미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지부터 보면 이렇다.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식민지, 노예제, 전쟁이 전염병을 이해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숨겨져 있는 문헌들을 뒤져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작업을 통해서 잊혀진 사람들을 찾아낸다. 바로 식민지의 사람들, 흑인 노예들과 같은 이들이다. 그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간 과정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 등을 통해서 서양 의사들이 전염병에 대해서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제국주의와 노예제는 그런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만약에 서양 제국주의의 관료 체계가 없었다면 체계적인 자료의 수집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노예제 역시 의료 사상과 공중보건의 관행에 이바지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극찬하고 있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저자는 나이팅게일을 ’전장의 천사‘로서가 아니라 전염병 역학의 선구자, 의료 체계의 개혁자로서 본다) 역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이라는 극적인 상황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며(크림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활동도 없었을 것이고, 그토록 불결하고 체계적인 의료 체계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개선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인도의 상황으로부터 의료 환경의 개선을 촉구할 수 있었던 것도 영국 밖으로 나가지 않았음에도 그런 자료를 아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한 효율적인 관료 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후반까지의, 주로 영국과 미국의 의사들을 통해서 이뤄진 전염병 역할을 다루는 이 책은,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코흐에 의해 정립된 배종설(germ theory)가 거의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도 나이팅게일은 오랫동안 저항했는데, 저자는 그런 저항이 완고한 보수주의라고 파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배종설이 받아들여지기 전의 사람들이나, 배종설 이후에도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 역시 환경의 개선을 통해서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그런 시각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보다는 그들이 수행한 역학의 방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런 방법론을 통해서 현대의 전염병 역학이 발전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저자가 주장하는 주요 내용을 이해한 다음, 다시 저자가 제국주의, 식민주의 노예제, 전쟁을 옹호하는지에 대해서 따져 본다. 이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내는 부분은 미국의 남북 전쟁 시기에 활동한 USSC(미국위생위원회)에 대한 평가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의사들은(여성들을 포함하여) 크림 전쟁 당시 크게 활동한 나이팅게일의 모범을 따라 전염병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이에 대한 확산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었다(그래서 그런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이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에 대한 강조보다는 환경에 대한 강조를 통하여 의학의 진보를 이끌어낸 데 반해, USSC의 의사들은 오히려 흑인에 대한 인정차별적인 이해를 굳히는 데 이바지하고, 역학을 퇴행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거의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음에도 어떤 시각을 가지고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졌다는 것인데, 전쟁이 대체로 역학을 비롯한 의학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그게 늘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은 이 책을 매우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분명히 제국주의, 노예제, 전쟁이 역학의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쓰고 있지만, 그것은 기술적인 측면이지, 그것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역학의 발전에 이바지하였지만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는 이들, 여성들, 식민지 주민들, 노예들의 공헌에 대해서 우리가 기억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팅게일이 통계학를 통해서 의학의 발전을 가져온 것은 맞지만, 그런 작업을 통해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숫자로 환원시킨 데 대해서는 아쉬워한다. 양적 데이터에 기초한 역학은 사례 연구를 통한 개개인의 증언은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저자는 전염병 연구에는 ’군사적 점령, 힘의 불균형, 그리고 폭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런 폭력을 통하여 ’어쩔 수 없이‘ 전염병 연구에 기여한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노예제, 전쟁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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