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를 보면서 가볍게 읽기 위해 꺼냈다. 야구는 보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가 아닐까 싶다. 무수한 끊어짐이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틈을 준다. 이 책은 딱 그 틈에 어울린다. ‘가볍게’라는 마음가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종종 가볍지 않다.
소설의 첫 문장만큼 소설가가 신경 쓰는 게 있을까? 고심고심하여 내놓는 문장이 첫 문장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고심하는 첫 문장을 유독 지켜보는 독자가 있다. 여기 김정선 같은. 그렇게 지켜보지 않더라도 소설가는 고민한다. 이제 긴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첨병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첫 문장 아닌가?
솔직한 내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소설에서 첫 문장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신경 쓰지 않는다고나 할까? 아마도 소설이 어떤 식의 전개를 가져갈지 그것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 그래야 전체적인 맥락을 잡고 쉬이 읽어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저자가 읽고 인용한 소설 중 적지 않은 작품을 나도 읽었지만(물론 읽지 않은 소설이 더 많긴 하다), “아, 그랬지!” 정도의 기억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첫 문장은 많지가 않다. 워낙 첫 문장이 유명한 작품(이를테면 『광장』이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을 제외하면 더더욱.
대신 마지막 문장은 뇌리에 박힐 때가 많다. 그건 기억하고 외운다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라, 한두 차례 다시 소리 내어 읽을 때가 종종 있다는 얘기다. 마지막 문장은 소설 한 편을 다 쓰면 당연히 나와야 할 문장처럼 여겨진다. 첫 문장이 소설가가 의식적으로 애써 만든 문장이라면, 마지막 문장은 자연스레 쓰여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 참고로,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문장만을 모아 글을 쓰면 또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소설에 관한 얘기도 있고, 소설 첫 문장을 화두로 자신이 살아온 얘기도 한다. 푸념이기도 하고, 깨달음이기도 하다. 다만 소설의 첫 문장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아가 소설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자세히 읽고 싶었던 바람은 충족시키지 못했다.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것은,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라는 부제는 무슨 의미일까? 하는 점이다. 중간에 “다시 살 수 없으니”라는 문구를 쓰고 있는데, 그 때문일까? 다시 살 수 없는 삶. 소설의 첫 문장으로 다시 살 수 있다고, 언제나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인가? 소설처럼 이야기마다 첫 문장을 다시 적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