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에 대한 책은 주로 자기계발서라는 장르로 묶인다. 증거, 혹은 근거보다는 당위와 사례를 중심으로 스스로 어떤 마음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얘기이고, 마땅한 충고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얘기를 책 한 권을 읽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사실 그래서 많이 거의 읽지 않는다(핑계일까?).
심리학을 과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망설여질 때가 있다. 특히 설문조사와 개인적 추측에 기초한 심리학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분명 과학이라고 여겨지는 심리학이 있다. 바로 뇌과학의 성과에 기초한 심리학의 경우가 그렇다. 편견일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뇌과학을 배경으로 하여, 직접 실험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최선의 추론을 시도하는 심리학은 훨씬 믿음직하다(물론 여기에도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김학진의 《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과 같은 경우다.
김학진 교수는 우선 ‘자기감’을 이야기하고, 여기서 ‘자존감’으로 나아간다. 자기감이란 나의 생존을 위해 환경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있는 느낌을 말한다. 그리고 자존감이란, 자기감의 하위 개념으로 환경 중에서도 내가 아닌 타인(사회적 환경)과의 관계를 말한다. 나와 환경과의 불균형이 있을 때 몸에 질병이 오듯, 타인과의 상호관계에 문제가 생겨, 즉 자존감에 불균형이 오면 우울증과 같은 마음에 병이 생긴다. 김학진 교수는 이와 같은 심리적 문제가 생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생물학적 근거란 무엇일까? 김학진 교수가 주목하는 뇌의 부위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이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익숙한 상황에 대한 반응을 조절한다면(즉 내부의 신호에 민감), 배내측 전전두피질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응과 관계 있는데(즉 외부의 신호에 민감), 바로 문내측 전전두피질이 이 두 부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책에서 다양한 조절 양상을 소개하고 있다. 역시 책에서 소개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숨어 있는 조절 기제가 있을 것임에 분명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만 이해하더라도 우리 뇌에서 나와 환경 사이의 기대와 반응과 관련한 조절 작용에 대해서 상당한 이해해 다다를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인정 중독에 관한 것이다. 인정 중독이란,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알리는 다양한 신체 신호를 무시하고 사회적 보상에만 몰입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어려운 말은, 실은 나(신체 내부 신호)보다 남(외부 환경의 신호)에 기반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심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인정 중독으로 말미암아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존감을 훼손하면서까지 남의 평가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김학진 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게 여느 자기계발서와 다른 점은, 그런 상황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야 최소한의 조언이라도 먹힌다고 본다. 실은 문제를 알고,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런 잘못된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의외로 받아들이게 된 부분도 있다. 행복과 관련한 감정에 대한 것이다. 행복감이란 기대하지 않은 보상이 유발한 순간적 감정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감이 들면 보상에 대한 기대 수준을 수정하여 새로운 균형점을 설정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새로운 균형점, 즉 높아진 기대 수준 때문에 불행의 범위가 증가하여 불행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행복을 얻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불행의 가능성을 커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행복을 경험하는 순간 이미 한번 떠난 지금보다 불행했던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행복해지고자 애를 쓰는 것, 그것 자체가 불행이 증가하는 원인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순간 난감했다. 그렇다면 행복 추구의 노력을 포기하란 말인가? 그건 아닐 듯 한데... 어쩌면 이에 대한 해답은 이 부분에 대한 얘기에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라, 좀 뒤에 나오는 얘기, 즉 명상과 관련해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내측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높이는 명상은 모든 감각을 극도의 민감한 상태로 유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통을 불쾌하게 느끼는 정도는 현저히 낮은 반면, 고통에 반응하는 뇌의 반응은 매우 예민하다고 한다. 이렇게 외부 자극에 민감해지는 것은, 효율적인 감정 사용자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행복감은 그렇게 외부 자극에 민감해져, 그 자극에 대해 적절히 반응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김학진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 버튼이 눌리는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뇌과학에 기초한 심리학의 성과(김학진 교수 연구실에 수행한 연구를 포함하여)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들이 당장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고 여기는 것은 과한 기대다. 하지만 이런 성과들이 모이고, 또 어떤 사회적, 개인적 노력이 보태지면 조금씩 삶이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물론 우선은 아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