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대학시절 내 도서목록 거의 앞자리를 차지했던 소설이다. 대학 합격 이후 노벨문학상 타이틀을 막 단 이 소설을 읽었었다.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만 어떤 음산한 느낌만 남아 있었다. 작가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수십 년이 흘러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다시 읽었다.
소설은 연쇄 살인을 저지를 가난한 농부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사형 당하기 직전 써서 남긴 수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는 폭력적이고, 냉담한 환경에서 자랐다. 야만적인 환경에서 자란 파스쿠알도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고, 결국은 여동생의 남편이자 아내의 정부를 죽였고, 자신의 어머니도 죽였다. 존속 살인이며, 현대 법체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처벌하는 범죄 중의 하나다. 수기는 어떻게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편지로 고백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파스쿠알이 사형을 당하게 된 범죄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에 이 소설이 충격적인 점 중 하나인데, 술을 마시고 동네 친구를 칼로 여러 차례 찔렀음에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고, 아내의 여동생을 죽였음에도 몇 년 만에 출소했고,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했음에도 스페인 내전 상황에서 감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다 마을의 지주인 돈 헤수스 백작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사정은 수기에 거의 담겨 있지 않다. 맨 앞에 덧붙인 글과 저간의 사정으로 짐작해서 알아낼 수 있을 뿐이다. 이 파렴치한 연쇄 살인범은 어떻게 그토록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방면되었을까? 작가는 이게 다 법체계의 문제, 공화국의 의도가 있었던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어머니까지 죽인 망나니 같은 살인범을 풀어주어 마을의 존경받는 귀족까지 살해하게 만들었다면, 이 체제는, 이 정부는 문제가 많다. 타도되어야 한다. 프랑코 장군의 쿠데타, 혹은 반란은 그래서 정당화된다.
카밀로 호세 셀라에게는 친프랑코, 친파시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체제 순응적인 작가였고, 작품에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어 있다. 셀라는 자비로운 귀족을 살해한 파스쿠알이 자신의 범죄를 뉘우치고 있다고 썼다. ‘심장이 굳어 버린 여자’인 어머니는 죽어 마땅하기에 그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지만, 농민들에게는 착취 계급이었던 지주인 귀족의 살해는 반성해야 마땅한 것이다. 묘하게 대립점이 옮겨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쪽의 첨예한 대립을 얘기해야 마땅한 문제를 그것들의 부차적인 성질을 부각시켜 다른 문제인 양 다루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이런 정치적 편향성을 배제하고 읽는 경우도 있다. 스페인 내전으로 인한 극도의 혼란과 불안 심리를 한 농부의 파괴적인 폭력과 그에 따른 처절한 몰락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파스쿠알 두아르테는 그런 사회적 혼란 시기에 삶의 안식처를 끝내 찾지 못한 사회적 희생양이다. 셀라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그는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풍부하고 강렬한 문장을 구사하여, 인간의 나약함을 도발적으로 보여준다.”라고 했다. 부정할 순 없다.
파시즘 정권 하에서 호세는 검열관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작품(《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포함하여)도 검열 대상이 되어 1946년까지 출판이 금지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