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리 냄새

Love

by 권도연


"샴푸 추천해 줄 거 없냐."


친구가 심각한 얼굴의 이모티콘을 보내며 말을 건넸다.


"샴푸는 왜 갑자기."

"나 오늘 완전 개충격적인 얘기 들음."

"뭔데."

"나한테 정수리 냄새가 난대."


풉. 먹고 있던 두유를 뿜으면서까지 놀랐던 건 그녀가 굉장한 향수 애호가였기 때문이다. 조향을 공부하면서 그녀에게 수차례 조언을 구할만큼, 그녀는 향, 향수만큼은 자타공인 전문가였다.


그녀에게 전해 들은 얘기는 대충 그랬다.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업무를 가르치느라 내내 옆에 붙어있던 동안 그녀는 그에게 적잖은 호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했고, 여기저기 묻고 다녔던 것이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나름 인기녀라 자인하고 있었던 그녀에게, 그것도 후각 예민러로서 청결과 패션만큼은 자신하고 있었던 그녀이기에 '냄새'평판은 충격을 넘어 마상에 트라우마까지 가져오는 어마어마한 일이었던 것이었다.




나한테 왜그럼?


그녀를 달래주면서도 나까지 움찔한 건, 나도 요즘 신입 직원에게 교육을 시켜주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나한테도?


sticker sticker



"근데 정수리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나는 그녀에게 (혹은 나에게) 이렇게 자기합리화성, 변명형 답변을 내놓았다. 그랬더니 그녀는 눈이 튀어나오는 프로도를 마구 던지며 그런다.


"뭐어? 누, 누가? 변태 아냐 그거?"


글쎄, 그거가 변태였을지도.

근데 진짜다. 내 정수리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 있더라.


내 과거의 남자 친구이자

현재의 남편.


그는 내 정수리 냄새를 좋아했다.







몇 년 전, 그러니까 강남 스타일이 25억 뷰를 돌파하며 경사가 난 날, 가수 싸이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한 말이 있다.


"정말 깨끗하고 고결하게 생긴 그녀에게 인간적인 향기가 날 때 섹시함을 느낀다”



그 사람의 고유 냄새, 인간적인 냄새.

그가 말한 것은 정수리 냄새였다.


http://naver.me/Glt6rP6x



어디 싸이뿐이던가.


연인의 정수리에 코를 박고 킁킁대는 남자들. 오늘도 퇴근길에 여럿 봤다.

여자는 부끄럽다며 뿌리치는데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는 듯 정수리를 공략한다. .


너의 정수리 냄새는 날 우주에 빠지게 해


그래서일까. 샴푸의 연관 검색어에 가장 높게 링크되는 키워드 역시 '정수리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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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싸이가 그러지 않았는가.


정수리 앞에 장사 없다고. 제아무리 어떤 제품을 쓰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정수리 냄새가 난다고.


그러니 정수리 냄새를 욕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 일이다.

정수리 냄새, 나의 냄새다.

나를 사랑한다면 그 냄새도 사랑해주는 거,

쑥스럽지만 괜찮은 일이다.


P.S. 단 안 씻어서 나는 정수리 냄새는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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