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없는 사회

by 권도연

취향(趣向)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신제품 테스트를 위해 유명 향수 브랜드 매장에 들렀다. 30분가량 서서 향을 테스트하고 있는데, 오고 가는 사람들의 90%가 비슷한 질문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물할 건데요, 뭐가 제일 잘 나가요?"



그러면 직원은, 최근 인스타에서 어떤 연예인이 향수병을 들고 활짝 웃고 찍었던 향을 추천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요. 이게 요즘 베스트셀러예요."


인스타에 넘쳐나는 ppl 광고들.



사실 직원이 추천해 준 그 향은 뉴욕에서 니치 향수('틈새'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니치(nicchia)에서 파생된 말로, 극소수의 성향을 위한 프리미엄 향수)로 알려진, 말 그대로 '극소수의 취향을 겨냥한 독특한 향'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 소수의 취향은 그 소수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호불호에 상관없이 '왠지 좋은 향',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좋은 향'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거 사갔다가 욕먹는 거 아니에요?"

"왜요?"

"모두가 좋아할 향이 아닌데.. 누군가는 분명 절간 냄새 같다고 할 거라고요."

"좋아하실걸요. 왜냐면 유명한 거니까요."

"아..."









여의도 점심시간.

얼큰한 곰탕을 먹고, 근처 빌딩에 들어갔다. 카페만 열댓 개가 주르륵 붙어있는 건물 1층에서 취향껏 음료를 고를 심산이었다.


카페들은 새 메뉴들로 단장을 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으로 기이했다. 모두가 다른 듯 같았다. 한 때 쌍둥이처럼 걸려있던 '달고나 커피' 입간판들 대신 바꿔 단 것은 '크로플' 입간판이었다.

모든 카페가, 똑같은 메뉴를 들고 손짓하고 있었다.



"나 이거 먹어보고 싶었어. 맛있대."

"별 맛이 있겠어?"

"인스타에서 난리던데."

"그래...?"


6천 원짜리 크로플은 그러나

나에게 실망만을 줬다.


"돈 아깝다."

"차라리 붕어빵이나 먹을걸."

"붕어빵 어디 팔아?"

"...."


그러게 붕어빵은 어디로 간 걸까.

크로플에 밀려난 500원짜리 붕어빵을 그리워하며 우리는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실망스런 점심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유행은 참으로 다양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너무도 빠르게 사라진다.

그 유행의 흐름을 놓치면 왠지 소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너도나도 그 유행의 꼬리를 잡으며 허둥허둥 쫓는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향, 좋아하는 옷,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맛, 좋아하는 아이템.


대신

남들이 좋다고 하는 향, 남이 입었을 때 예쁜 옷,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말한 색, 맛있다고 TV에 나온 음식, 진열하자마자 팔려버린다는 대란품.


그 속에 나는, 나의 취향은 무시된다.


그 이유는 너무도 뻔하다.

바쁘니까.

너무도 바쁘니까 이미 남이 평가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더 쉽고 편하고 빠르니까 너도나도 유행의 열차에 탑승한다.

하지만 너무 슬프지 않은가.

그 열차는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가지 않는다. 알면서도 타는 것이다. 남들이 타니까 따라서. 줄줄줄.





출퇴근길, 피곤한 직장인들 틈에서

오늘도 나는 천편일률적인 향을 맡는다.

요즘 가장 유행하는 향은 르#보의 상탈과 딥@크의 도손 아니면 탐다오다. 어느 연예인이 쓴다고 알려진 후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그걸 따라 뿌려? 싶지만 따라 뿌린다.

자신과 자신의 상황과 외모와 기분에 어울리지 않아도 마구마구 픽칙.

그 향은 뚜벅이인 나에게 아주 자주, 매우 강하게 코를 때리고서는 하루종일 코끝에 남아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이럴때면 후각 예민러인 스스로가 싫어질 지경이다.



10명이면, 10명 모두에게 다양한 향이 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향을 선택하는 여유를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엔 매우 향기롭고 너무도 다양한 향이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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