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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Aug 04. 2020

저건 계란후라이 꽃이지

    열다섯 살, 열 살, 일곱 살, 이제 막 열 달.



    비가 퍼붓던 지난 주말, 작고 좁은 우리 집으로 조카들이 놀러 왔다. 열 달 짜리 막내 조카 빼고. 춘천에는 닭갈비 말고도 맛있는 게 많지만, 역시 춘천 하면 닭갈비 아니겠냐는 말에 닭갈비를 저녁으로 먹었다. 팥빙수도 사다 먹였다. 옷이 비에 젖든 말든 동그란 광장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했다. 그래, 마음껏 뛰어라! 남은 힘까지 다 털어버리고 집으로 가자! 대신에 집에 가면 조용히 푹 자야 해. 마지막으로 강을 따라 숲길을 걸었다. 꼬마들은 비 오는 숲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며 깜깜한 밤을 뚫고 앞서 걷는다. 그러다가 멈춰 서서 개구리울음소리를 듣기도 하고, 빗물이 고인 풀들을 보기도 한다.


    "얘들아, 저건 계란후라이 꽃이야."

    "계란후라이 꽃?"

    "어, 계란후라이 먹어봤지?"


    저게 개망초든 구절초든, 진짜 꽃 이름은 상관없었다. 내가 꼭 쟤들 나이 때쯤에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그 꽃 앞에 앉아 저건 계란후라이 꽃이야, 말씀하셨기에 나에게 그 꽃은 계란후라이 꽃이었다.


    "우와. 이모, 진짜 계란후라이 같이 생겼다."


    조카들을 속이려는 마음은 아니었다. 어느 날 식탁 위에 올려진 계란후라이를 먹을 때 비 오는 오늘을, 밤의 숲길을, 강물의 냄새를, 그리고 요 작은 꽃을 떠올리길 바랐을 뿐. 아, 아니다, 그 반대다. 꽃을 보며 따뜻한 식탁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간장 계란밥이 생각나도 좋고, 멸치볶음이랑 같이 먹는 계란후라이 생각이 나도 좋겠다. 그렇게 들에 핀 꽃을 보며 함께 둘러앉은 식탁 생각이 났으면 좋겠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며 혼자 흡족해했다. 우리는 밤과 비를 뚫었다. 조금 더 가서 모과와 파란 밤송이를 알려주었고, 또 조금 더 가서는 참깨를 알려주었다.


    "너희 햄버거 빵 위에 붙은 참깨 알지? 그게 이 속에 있어."


    하면서 우쭐댔다. 나도 다 엄마한테 배운 것인데도, 우쭐댔다. 손주들을 뒤따라 걷던 엄마는 그날도 나에게 새로운 걸 알려주셨다. 미림아, 저건 익모초라 건데 산모한테 좋은 약초야, 라고. 나는 엄마 마음에 색깔이 있다면 꼭 저 익모초처럼 나긋나긋하고 따뜻한 분홍색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꽃 이름을 새겼다. 나도 다음에 누군가에게 알려줘야지. 익모초, 익모초...





-

    늦은 밤, 15평 남짓 작은 아파트에 강아지까지 열 개의 숨이 할딱였다. 엉덩이 붙여 앉을 수 있는 곳마다 이불을 펴서 한쪽에다 아이들을 눕히고 제법 근엄하게 이제 자야지, 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꼬마애 둘은 누워서도 꼬물거리기 바쁘고, 큰 애도 큰 애답지 않게 귀엽다. 어쩔 수 없이 애들보다 먼저 방 불을 껐다. 소곤소곤대는 아이들 목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누워 잠든다.


    "오빠, 아까 그 꽃 기억나?"

    "어, 계란후라이 꽃."

    "그거 전에 우리가 먹은 계란밥 같다."

    "다음에 따서 밥에다 넣자."

    "응."


ⓒKyle Peyt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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