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림 Dec 24. 2020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에서

바라나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으면 무심한 나의 마음과는 달리 바깥은 참 신기하고 낯선 모습들을 펼쳐져 있곤 했다. 끝없는 지평선 너머의 어마어마한 번개, 아무데서나 화장실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엉덩이, 기차의 속도가 느려진 틈을 타 창살 사이로 망고를 비집어 넣으며 돈을 받으려는 아이들의 적극적인 모습들. 나는 그 애들에게서 망고 하나를 사서 쭈쭈바처럼 주물러 먹었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기차에서 망고를 먹을 땐 그렇게 먹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처음 그 기차에 올랐을 땐 내 침대 자리에 버젓이 옆으로 누워 있는 아저씨와 싸워야만 했다. 거긴 내 자리라고, 여기 표도 있다고. 나의 큰 소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를 에워쌌다. 그럼에도 아저씨는 손으로 머리를 괸 체 "No problem."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그 아저씨를 끌어내리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기관사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내 자리에 누워 있던 아저씨는 기관사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지만 여전히 그놈의 No problem을 입에서 떼어 놓지는 않았다. No problem, No problem. 나의 침대 자리는 3층이었다.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낮은 천장. 돌아 누우면 덜덜덜 요란하게 돌아가는 먼지 낀 선풍기가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이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인도의 기차는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정말 자기가 오고 싶을 때 온다. 기차가 오기로 정해진 시간의 몇 시간 전부터 몇 시간 후까지 쭈욱 역에서 대기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날 밤 3층 침대칸에서 굴러 떨어지는 꿈을 두어 번 꾸었지만 어쨌든 달게 잤다.


    기차 안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화장실이었다. 뻥 뚫려있는 구멍이 배수시설을 대신했는데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그 구멍에서 바람이 불어들어 시원했다. 수돗물이 나왔지만 수도꼭지를 만지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대충 얼굴과 손을 닦고 자리로 돌아와 1층 침대칸 아주머니의 배려로 창가에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아직 꼬박 하루를 더 가야 바라나시다. 나는 가만히 앉아 인도에서 보낸 지난 들을 생각해 보았다. 가보기로 했던 마을에 홍수가 나서 나는 배낭을 머리 위로 번쩍 들고 거머리가 있을지도 모르는 물 웅덩이를 지났다. 샤워를 하다가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저 높이 솟은 야자나무 위에 한 남자가 코코넛을 따고 있었다. 그 샤워실엔 지붕이 없었다. 역시 지붕이 없는, 아직까지도 '지어지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잘 땐 들개들의 어슬렁거리는 소리 때문에 몇 번이나 소름이 돋았었다. 그리고 반딧불이. 커다란 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연한 연둣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수천, 수만의 반딧불이들이 느리게 깜빡였다. 아, 그건 지금 생각해도 경이로운 일이다. 시장에서 인도 전통옷인 사리를 사서 입고 하얀 소들을 피해 골목들을 걸었던 일, 누군가 내 가슴을 쓱 만지고 도망갔을 때의 당혹과 분노,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인도의 모든 모습들이 창가에 스치는 풍경처럼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다시 해보라면 못할 일들이었다.


    바라나시는 정말 신비로운 도시였다. 갠지스 강 주변은 몸을 씻는 수많은 사람들과 빨래를 하는 사람들, 물을 마시는 소들로 붐볐고 강 너머에는 죽은 이의 몸을 나무에 태우는 장례식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부자들은 땔감을 많이 살 수 있기에 시신을 완벽하게 화장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갠지스 강 주변의 들개들은 덜 탄 사람의 신체를 물고 다니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나무로 만든 얇은 배를 타고 황토색 갠지스 강을 다녔다. 강 위에서 바라보는 바라나시는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들이 뒤엉킨, 그러니까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었고... 그 둘 사이엔 사제들이 있었다. 해 질 녘, 온 하늘이 붉게 물든 그 황혼의 때에 제사의식이 시작됐다. 단발머리의 키가 크고 잘생긴 청년들은 광택이 나는 진노란색 제의를 차려 입고 흰색 꽃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그러곤 고약한 향을 피워댔다. 어느새 하늘은 강물까지 주황색으로 물들였다. 온통 붉은 도시, 철없이 자유로운 향의 움직임, 심취한 사제들의 고운 몸짓. 도시 전체가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는 곳. 거긴 바라나시였다.


    의식을 다 보고, 아무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 뭘 잘못 먹었는지 속이 메슥거리고 울렁댔다. 여전히 코끝에 맴돌고 있는 향내가 역겨웠다. 아, 나는 이 아름다운 바라나시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면 속수무책으로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른다.


2008, 바라나시, 인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