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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Jan 07. 2021

티베트 아이들이 웃을 때

윈난 성

    비행기를 타고 쓰촨 성 청두에 들어온 나는 약간의 재정비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했고, 윈난 성 샹그릴라에 도착했다. 그곳은 높은 곳에 살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여행의 시작점이었다. 샹그릴라에는 화려한 사원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았지만, 내 시선은 좁은 골목 틈에서 해맑게 웃으며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더 많 닿았다. 어쩜 아이들은 이렇게도 예쁜 걸까.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낮은 중국 남쪽의 겨울은 상대적으로 따뜻한 게 맞겠지만 티베트 마을들은 높은 덴 6,000m가 넘는 고원지대에 있었고, 너무 추웠다.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찬바람은 옷 틈을 파고들어 결국엔 살갗에 닿았다. 내가 타고 가는 버스는 너무 낡아서 히터는 벌부터 고장이 나있었고, 바닥엔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모를 물이 얼어 있었다. 이러다 동상에 걸리는 게 아닐까 싶어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무르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버스가 거침없이 달리고 있는 얼음 낀 오르막길, 그 길 바로 옆은 낭떠러지였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고산병이었다. 나에겐 고산병 증세가 없었지만, 나와 같이 여행길에 오른 여행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들은 숨을 잘게 쪼개 쉬거나 두통을 호소하거나 똑바로 앉아있기조차 힘들어했다. 그런 중에도 화장실은 왜 꼭 가고 싶은지. 기사에게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하면 길 한가운데에다 버스를 세워주었다. 그러면 여자들만 먼저 후다닥 내려 버스 뒤에서 볼 일을 봤고, 여자들이 자리로 돌아오면 그다음엔 남자들이 나가 일을 보았다. 혹시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아주 낭패였다.


    버스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데까지 이르렀다. 작은 티베트 불교 사원에 먼저 들러 동그란 통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틈에 섰다. 그들은 손바닥으로 작은 통을 한 바퀴 휘리릭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으로 쳐준다는 후한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그들의 신앙대로라면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두꺼운 경전을 이미 수천 번 통독한 셈이다. 사원 밖에는 수백 가지 색의 깃발들이 뒤엉켜 설산 쪽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사원을 나와 마을로 향했다. 그곳은 생각보다 반듯했다. 새로 지은 듯해 보이는 건물엔 만둣집도 있었고, 국숫집도 있었다. 괜찮은 모텔들도 있어 우린 하나를 골라 거기서 며칠 묶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번엔 아직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티베트 마을로 향했다. 뿌연 먼지를 내는 흙길을 따라 세워진 전통 집들 위엔 세월이 앉아 있었다. 황토로 쌓아 올린 담장에 기대 선 여자들은 양털을 요요 같은 물건으로 돌리며 실을 뽑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남자들은 대문 앞에 옹기종이 앉아 수다를 떨거나 담배 같은 걸 피웠다.


    어른들 틈을 메우는 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까만 볼 위엔 빨간 홍조가 얹혔고, 다시 그 위에 흙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머리를 양갈래로 땋았거나 풀어헤치고 있었고, 남자아이들은 아무렇게나 대충 깎은 머리카락 위에 모자를 쓰고 있었다. 새까매야 할 머리카락은 흙먼지에 덮여 희끗희끗해 보였다. 아이들은 날렵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인상은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내게 팽이치기를 알려주었고, 자기들끼리 하는 술래잡기도 함께 하자고 했다. 그러다가도 내 살결이 부드럽다며 손을 자주 만졌다. 아이들의 손은 차고 건조한 바람에 부르터있었다. 나는 그 손을 가만히 쥐었다. 그러자 한 아이는 부끄러운 낯으로 배시시 웃었다. 배시시 웃다가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은 모든 아이들에게 번졌고, 한동안 그렇게 웃기만 했다.


    나는 그게 좋았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자기들끼리만 아는 놀이를 하고, 흙을 만지고, 바람을 맞고, 작은 것에도 자지러지게 웃는 아이들아이들다워 보여서 좋았다. 어느 나라든 아이들의 웃음은 어른들의 너른 품 안에서 지켜지는 것이기에, 그 웃음이 더 좋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애들이 어른들이 끓여둔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쉴 것을 생각하 나의 마음까지도 아늑함에 파묻혔다. 나는 마을을 떠나며 아이들이 다 자랄 때까지만이라도 그들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도시로 나가 힘든 일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어린 시절의 웃음을 기억하며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티베트 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샹그릴라로 돌아왔을 때에야 나는 내가 떠난 다음 날, 샹그릴라에 큰 불이 났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꺼멓게 타버린 집들과 여전히 비실대며 하늘로 오르는 연기들, 매캐한 냄새들이 뒤엉킨 샹그릴라의 모습을 허무하게 바라보티베트 산마을에서의 기도를 다시 되뇌었다. "이 일로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게 해 주세요, 부디 이곳 아이들이 다 자랄 때까지 웃을 수 있게 해 주세요." 


2014, 윈난 성,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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