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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풍경

by 권씀

장마철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리면 "이젠 비가 그만 와도 되지 않을까."라며 혼잣말을 뱉곤 한다. 겨울철 눈이 드문 곳에서 눈이 하루 걸러 하루 온종일 오는 곳으로 온 사람들에겐 눈 내리는 풍경이 처음엔 반갑기도 설레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처음의 설레임은 온데간데 없이 지루해진다. 그러면서 "이젠 눈이 그만 와도 되지 않을까." 라며 혼잣말을 내뱉게 된다.


사실 지대가 높거나 남극과 북극 같은 곳이 아니라면 눈을 일년 내내 보는 게 아니기에 겨울이 되어야만 볼 수 있는 풍경에 마음이 벅찬 것도 사실이지만 눈 내린 이후의 거추장스러움이 처음의 감정을 누를 때가 많다. 이런 마음은 어쩌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말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걸까.


그럼에도 눈이 오는 풍경이 마냥 좋을 때가 있다. 문화재 현장을 나갔을 때 고택이나 한옥 위로 눈이 쏟아지는 풍경을 보거나 저멀리 산의 머리맡에 하얗게 내려앉은 눈을 봤을 때 혹은, 싸락눈이 아닌 함박눈이 펑펑 쏟아질 때 비록 손과 발은 시리지만 마음은 포근해지곤 한다. 길을 나선 후 마주친 풍경이 가끔은 세상사와 조금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눈이 귀하지 않은 올 겨울, 봄이 오기까지엔 꽤 많은 시간이 남았기에 몇번이나 더 눈이 내릴지 모르겠지만, 펑펑 내리다가도 사람들이 많이 움직일 즈음엔 사르륵 녹아내리는 그런 눈이 오기를 소망해본다.


보은 추양정사_기와고르기(220411)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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