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골목엔
누구의 발자국도 머물지 않는다
흐릿한 달빛은 낡은 담벼락 위로
조용히 얼어붙어
그림자마저 무색한 시간을 흘려보낸다
나는 묵묵히 걷는다
발끝에서 끼익 하고
얼음 같은 소리가 터질 때마다
어디선가 사라져간 누군가의
이름 없는 목소리가 떠오른다
너는 없고 바람은 사방에서 몰려와
지나간 계절의 흔적을 모조리 쓸어가 버린다
겨울은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모든 것을 삼킨다
지금 나는 발끝으로 겨울의 심장을 밟으며
어디로도 닿을 수 없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