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며. 덕후가 세상을 구한다

직업이 아니라 소명을 꿈으로 삼으렴

아들아 세상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꿈을 가지고 살라고 이야기한단다. 뭐 물론 혹자는 그것조차 욕심이라며 순리대로 살아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빠도 사람이 살면서 꿈 정도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마치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을 때 사람이 더 용기를 내고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것처럼 꿈이 있을 때 그 사람은 더 적극적으로 한 분야에 몰두하고 사회적인 성취 혹은 스스로의 깨달음에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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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어릴 때부터 네 고모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왔단다. 아마 너 역시 그러할 테지. 앞서도 말했지만 아빠 주변에는 유독 ‘어떤 직업’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단다. 네 고모는 사회 정치부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고 아빠의 사촌은 사람을 지켜주는 경찰이 되고 싶어 했어. 또 아는 형은 컴퓨터 개발자가 되고 싶어 했단다. 그리고 아빠도 어릴 때 변호사가 되고 싶었단다. 법정에서 누군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말로 싸우는 것이 멋있어 보였어. 이후에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며 스토리 작가, 원화 작가 같은 사람도 되고 싶었고 이후에는 기업가가 되고 싶었지. 지금은 또 농부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단다.


그렇다고 지금 이 글에서 아빠같이 계속해서 '직업'을 목표로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란다. 아빠는 이런 직업들을 한 때 ‘꿈’이라고 생각했다. 막연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직군’을 꿈이라고 생각했어. 쉽게 눈에 보이는 것이고 비교적 방향성을 잡기 쉬운 것이다 보니 아마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보통 위에서 말한 세상이 어린이, 청소년에게 꿈을 가지고 살라고 하는 광고의 이미지나 카피도 보통 어떤 직업군을 타깃을 두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아빠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꿈은 직업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직업은 말 그대로 직업일 뿐이야.


평등한 세상은 없다.


내가 너에게 솔직히 말하면 세상은 전혀 공정하지 않단다. 네가 우리 집에 태어난 것도 누군가보다는 더 좋은 환경 속에서 태어난 것이고, 또 누군가 보다는 더 안 좋은 환경 속에서 태어났지. 세상이라는 것은 결국 모두 다 상대적인거라서 절대적인 좋음과 나쁨은 없어. 너도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도 당연히 부족함을 느끼겠지. 하지만 분명한건 보편적인 유리함은 존재한단다. 아빠도 대한민국이라는 곳에 태어나 운이 좋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또 환경을 떠나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로 성패가 갈리는 직업도 있단다.


위 맥락과 같이 당연하게도 세상엔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거나 재능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직업이나 소명이 분명히 존재한단다. 예를 들어 예체능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 집안이나 사회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단다. 재능과 목표가 있어도 FIFA는커녕 동네 축구단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는 국가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축구 선수를 하기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친구보다 수십 배는 어려울 거야. 또 아빠는 몸치라 아무리 돈이 많았어도 축구는 못했을꺼다.


또 꿈이 직업이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더 공정한 세상에 살 수 없게 돼. 모든 전문직군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진 않겠지만 많은 전문직군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전문직이 되었다는 걸 순수하게 자신만의 노력이나 재능만으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단다. 그래서 쉽게 '기회는 공정하다'라는 말을 하게 되고 거기까지 올라가지 못한 사람에게 '노력이 부족했다'며 폄훼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예전에 어떤 대기업 총수의 아들이 광고 크리에이터로 제법 알려졌던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본인도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올라갔다고 해서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던 적이 있었지. 과연 그 사람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도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하며 말야.


이렇게 그런 사람들은 쉽게 선민의식으로 발전되어 승자로써 세상을 바라보고 왜곡된 시선으로 변질되곤 한다. 또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말들 때문에 패한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가 오로지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사회적 구조나 운의 요소를 무시한 채, 스스로를 비하하고 패배감에 빠지게 돼. 결국 이 과정에서 승자는 오만해지고 패자는 분노하며, 사람들의 공정성을 잃어버리게 된단다. 그렇게 사회의 악순환이 반복되게 돼.


직업은 껍데기의 일부일뿐


이렇게 꿈을 직업이라 착각하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반드시 성공과 실패, 이분법적으로 밖에 구분되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단다. 왜냐하면 직업은 결국 되었는가? 혹은 되지 못했는가? 둘밖에 없잖니. 판사, 검사 및 변호사 같은 법조인이 되기 위한 사법고시는 지금 없어졌지만 옛날에 사법고시에 숱하게 도전했다가 실패한 고시 낭인들이 아직도 고시원에 살며 그 생활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다큐멘터리로 봤을 때 아빠는 절대 직업이 목표, 혹은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알고 있는 것보다 실제로 하는 일의 괴리가 크단다. 예를 들어 서비스 기획이라는 직무를 택한다 해도 어떤 이는 상위 기획이라고 하는 콘셉트와 시장성을 체크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스토리 보드라고 하는 프로세스만 계속 설계하는 사람도 있지. UX를 설계한다고 들어가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걸 생각했지만 실상은 설문지만 데이터베이스화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옛날에 아빠가 다녔던 회사에서도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친구가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될 지 설레어하며 이야기했다가 1년 뒤 적성에 안 맞는다며 퇴사한 친구도 많았단다.


물론 연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연차가 쌓였을 때도 결국 실무보단 사람을 관리하는 쪽으로 넘어가 버려서 “내가 생각했던 일은 이게 아니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단다. 즉 직업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가며 나의 가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지 꿈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단다.


꿈의 정체, '소명'


그렇다면 꿈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는게 아니야. 다른 사람에게 설명 할 수 있는 것, 바로 소명이라 생각한단다. '나는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어, '나는 혁신적인 서비스 혹은 기계를 만들어보고 싶어', '나는 사람들이 어려울 때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소명이 바로 꿈이라고 생각한단다. 병이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의사만이 아니란다. 간호사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의족, 의수를 만드는 엔지니어가 되었을 때도 꿈을 이룰 수 있단다. 예전에 3D 프린터로 디즈니사의 마블 케릭터를 모방한 의수를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주었던 사람도 있었지. 디즈니가 저작권에 강경하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해줬다는 케이스로 유명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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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에 실패해도 법조인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면 변리사, 법무사가 될 수도 있고 한 회사의 법무팀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 또 법철학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생각할 수 있단다. 꼭 판사, 검사 및 변호사 만이 법 관련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물론 모두 쉬운 길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 직업만을 오매불망 바라보며 성공과 실패를 구분짓기 보단 내가 하고싶은 소명에 따라 여러 직군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단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사람은 온, 오프라인을 망라하는 세상의 수많은 서비스를 생각하고 창조적인 것을 만드는 것도 꿈을 이루는 과정이 될 수 있지. 심지어 요식업을 하면서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는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이 우리 사회는 이 꿈이라는 것을 아직도 직업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성공과 실패가 더 뚜렷해지고, 많은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직업을 가졌을 때와 하기 싫어하는 직업을 가졌을 때의 귀천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비교적 자리가 많은 9급 공무원보다 5급 공무원이 더 좋다고 말하는 그 잣대는 물론 급여도 있지만 바로 '어떤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원하는 가'를 기준으로 잡고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소명이 꿈이 된다면 저런 것은 그저 벌이의 차이일 뿐 '원하는 가'는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단다. 5급 공무원은 바로 여러 사람을 지휘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오히려 단 한 사람의 민원인을 돕는 것을 더 큰 가치로 둔다면 그 사람은 9급 공무원이 5급 공무원보다 더 가치있는 일일 수 있단다. 누군가에겐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민원인일지라도 어떤 이에겐 더 큰 연민과 성취를 주는 사람이 수 있지.


사람들을 돕고 싶은 사람은 직업적으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해도 주말 등에 자원봉사 등을 하면서 본인의 꿈을 이룰 수도 있단다. 바로 이렇게 소명이 꿈으로 변화할 때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도 지금보다 더 희석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이것을 '왜' 해야 하는가? 에서 시작하는 것


여기서 또 하나 솔직히 말하면, 크기와 종류에 상관 없이 회사 생활은 굉장히 어렵단다. 회사도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며 복작거리는 곳이라서 대쪽같이 그냥 가만히 내 일만 열심히, 잘 한다고 곧이 곧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곳이 많단다. 그 어떤 직무, 직종이라도 정치도 해야하고 실적도 생각해야 하며 내 커리어 패스도 생각해야해. 설상가상으로 '또라이 보존 법칙: 어느 조직이든 반드시 또라이는 있다. 없다면 네가 또라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조직마다 미친 놈이 있어서 잘 피하면서 살아야 해 회사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때 1) 어떤 일을 하나요? 2) 어느 정도 버나요? 정도의 가장 흔한 질문들을 가지고 선택해. 사실 이 질문들은 모두 잘못된 질문이란다. 왜냐면 내가 어떤 일을 하나요라는 질문은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일을 하는지는 해봐야 안단다. 직무기술서라는 것이 있기야 하지만 사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고, 그 일의 특징 한 두 가지를 기재해 놓은 경우도 많지. 하지만 그래도 무엇을 하는지를 기준으로 두고 직업을 선택한 사람은 그나마 괜찮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단다. 자신이 적어도 무엇을 하는지 정도는 알고 들어간 것이니까.


가장 큰 실수는 금액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란다. 아빠가 뉴스에서 본 것 중에 의사들이 지방에 연봉 5억짜리 병원에도 안 간다고 기사가 나온 것이 있단다. 연봉을 5억이나 주는데 왜 안 가냐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들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 돈이 결코 자신의 업무적 만족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장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가족의 상황, 나의 가치관 등이 맞지 않는다면 결국 그 사람은 지방에서 돈만 버는 ATM기와 다를바가 없어. 결국 '현타'라는 것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고 번아웃과 함께 쉽게 지치게 된단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조직에 또라이 한 두명만 있어도 미칠 지경이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직업을 생각해야 할까? 바로 왜? 란다. 내가 이 직업을 왜 해야 하는가. 나는 이 직업을 왜 선택하게 되었는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해. 내가 이 직업을 왜 하는지 답할 수 없다면 앞서 말한 그 직장을 다니면서 겪게 될 많은 고난이나 위기에 쉽게 꺾일 수 있단다. 단순히 사무직을 하더라도 내가 왜 그 사무직을 하는가? 에 대한 질문과 답을 만들어야 한단다. 아주 단순하게 여기서 내가 인정받아 다음 커리어 패스에 더 좋은 곳을 가야 한다는 답이 있어야지 그 직장에서 사람 간의 갈등, 업무적인 괴로움이 있더라도 버티는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어.


왜라는 질문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단다. 예를 들어 영업 사원이라고 해보자. 내가 무엇을 하는가, 얼마를 버는가로 접근하는 사람은 나는 이 컬러 프린터를 팔고, 팔 때마다 50,000원씩 인센티브를 받는다. 20개를 팔아야 100만 원을 벌 수 있다. 20개를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생각한단다. 그 사람은 20개를 파는 사람이 되어야해. 구매자에게 을이 될 수 밖에 없지. 그리고 그나마 나름대로 노력해서 20개를 판매하는 데 성공한다면 만족할 테고 그 이하를 판다면 자괴감이나 우울감에 빠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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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프린터를 판매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인쇄된 출력물을 통해 더 많은 홍보를 할 수 있게 되고 내 고객들이 성공하길 바란다 라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면 그 사람은 판매 수에 연연하지 않고 1개를 팔던 2개를 팔던 소명을 이룬 자로써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돼. 더불어 이러한 왜? 는 판매하고자 하는 세일즈 포인트까지 쉽게 만들 수 있고 자신감 있게 상대방에게 어필할 수 있단다. 을이 되는게 아니라 파트너로써 내가 이 물건을 통해 상대방을 돕는 자로 순식간에 변신할 수 있는 마법의 질문이지. 갑과 을로 사는 삶이 아니게 되는거야.


그래서 요즘은 많은 회사가 신입 사원에 대한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내부 리더들은 그 “왜”를 알 수 있도록 코칭을 해주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내가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해 질문조차 던지지 못한다면 아무리 주변에서 그것을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한단다. 그러니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습관을 꼭 들이고 그것이 직업과 네 삶의 방향까지 결정할 수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


소명이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기여하는 모든 노동이 존엄하기에 소명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고 IT 개발자이건, 길을 청소하는 분이건, 각자의 위치에서 공동체의 선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회가 인정해줘야 한단다. 그렇다면 이 소명은 어떻게 정해지게 될 수 있을까.


바로 수많은 세상을 탐구하고 경험해 봤을 때 소명을 찾을 수 있단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깊게 탐독했을 때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알고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여러 세상을 탐독하고 구경하는 사람을 우리는 오타쿠, 덕후라고 부른다. 좀 비하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결코 비하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소리란다.


사실 위에 굉장히 어렵게 써놨는데, 결국 자신이 흥미 있는 분야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책이든 만화든 많이 읽어야 한다는 거야. 쉽게 설명하면 사람은 생각보다 자신의 처지가 되어보지 못하는 이상 그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한 여름에 한 겨울을 상상하며 패딩을 입어보거나 지금 당장 굉장히 대소변이 마려울 때의 심정을 그대로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 속담 중에도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라는 말도 그래서 있지 않겠니?


그래서 우리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경험한단다. 소설이나 만화들이 그런 것들이야.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창조한 직업, 상황, 소명이 있다. 그런 것들을 읽어보며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자신의 심장이 울림을 느낄 때 그것이 아빠는 본인의 소명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수많은 주인공중에 셜록을 보며 가슴이 뛴다면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고 싶다는 소명 아래 경찰, 탐정, 검찰 혹은 프로파일러 등이 될 수 있고 수많은 협상을 통해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해결사라는 소명을 꿈으로 잡는다면 영업사원도 있고 협상가, 외교관 등이 있을 수 있을 거다.


아빠는 어렸을 때 전태일 평전을 보면서 가슴의 뜨거운 울림을 받았단다. 전태일 평전을 작성한 조영래 변호사의 삶 또한 아빠의 마음을 울리게 했지. 아빠는 그래서 억울한 사람이나 노동자의 권익에 힘쓰고 싶었단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반드시 변호사나 노무사만 가능한 건 아니란다. 회사 안에서도 같은 노동자의 권익을 찾아주기 위해 노조 활동에 힘을 보탤 수도 있었고 과감하게 건의해서 후임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도 있었다. 굳이 어려운 길이 아니더라도 내 삶의 한 방향에 내 꿈을 싣고 내 의지를 관철하는 것도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타쿠가 되어야 한단다. 소설이나 만화, 어떠한 세계관에 깊게 빠져보고 그 안에 다양한 상황, 직업들을 탐닉해봐야 한단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결국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직업들만 꿈으로 인식하고 그 직업을 얻지 못했을 때 우리는 좌절이라는 불필요한 감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낄끼빠빠를 아는 것


20대에 공산주의자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바보입니다. 하지만 30대에 공산주의자로 남아있다면 더 큰 바보입니다.


위 말은 누가 말했는지 정확하게 밝혀져있진 않지만 격언으로 알려져 있지. 20대에 열정과 정의감으로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고자 공산주의/사회주의적 이상에 빠져들 수는 있지만, 세상을 좀 더 알게 되고 경쟁과 보상이라는 체제하의 자본주의가 좀 더 사람들의 본성을 자극하며 발전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인데, 이 말과 마찬가지로 아빠도 10대 말, 20대까지는 오타쿠가 되어 수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탐닉할 수 있어도 30대까지 남아 있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혹자는 나이가 중요하기보다는 본인의 행복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나이를 구분 짓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하겠지만 아빠는 네가 너만의 독특한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소명을 삼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래도 일반적인 발맞춤에 살아가게 돼. 하지만 내가 30대를 말하는 것은 보통 30대면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단다. 하지만 그때 소명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운이 좋아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거나 혹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가졌다 하더라도 쉽게 권태에 쌓이고 번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러니 FPS 게임 속에 딜러 탱커 힐러 역할만 하지 말고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세상을 탐구해보렴 아빠가 볼 때 넌 군인으로 재능은 없단다. 그리고 게임과 달리 현실은 총 한 방 맞으면 죽어. 그러니까 그런거 말고 너가 다양한 책 속에서 많은 삶을 머릿 속에서 체험해 볼 때 실제로 아빠가 보고 겪었던 것들을 설명해주며 너의 소명을 찾아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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