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과 전화 한 통

나를 웃게 했던 할머니의 한 마디.

by 메종무던

시골 면사무소의 하루는 창밖에서 시작된다.

등본을 떼러 오는 발걸음, 문 옆에 기댄 낡은 자전거,

그리고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세월의 때가 묻은 40년 된 방앗간.

아침 햇빛이 기울어 문간을 스칠 때면, 온마을에 활기가 돋았다.

방앗간 앞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었다.

참기름을 짜는 고소한 냄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

그리고 떡을 받으러 모여 앉은 어르신들의 수다 소리.

그곳은 단순히 기계가 돌아가는 가게가 아니라,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자

‘오늘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가장 먼저 전해지는 뉴스센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창밖을 스치듯 바라보다가

방앗간 문 앞에 붙은 커다란 달력 한 장을 발견했다.

굵은 매직펜으로 휘갈겨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당분간 쉽니다. 주인장 디스크 수술”


아, 그래서 한동안 문을 닫는구나.

그 문장 속에 묻어 있는 주인장의 사정이 단번에 읽혔다.

마을의 한 부분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런데 그날부터 이상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 꼭 같은 시간, 같은 벨소리.


“○○면사무소입니다.”

…아무 대답이 없다.

“여~ 말씀을 하셔야죠. 안 하시면 끊겠습니다.”

뚝.

처음엔 잘못 걸린 전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똑같았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또 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4일째 되는 날.

또 그 전화가 왔다.


“○○면사무소입니다.”

“…”

“아이고, 말씀을 하셔야죠. 전화를 하셨으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낮게 깔린 헛기침 소리였다.

“크흠…”

“할머니?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 그게 아니고… 저어~~”

“네, 뭐가 궁금하세요?”

“잠깐만, 아가씨… 일어나 봐.”

“…네?? 제가요?”

“그려. 잠깐만 일어나서… 앞에 방앗간 열었는지 좀 봐봐. 다른 할매들 앉아 있어, 없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수많은 민원을 받아봤지만, ‘방앗간 개점 여부 확인’은 처음이었다.


나는 창밖을 힐끗 보고 말했다.

“방앗간 아직 안 열었어요, 할머니. 그렇게 궁금하시면 방앗간에 전화하시면 되잖아요?”

“… 아이, 거… 싸웠어.”

짧은 대답에 사연이 다 들어 있었다.

고스톱판에서의 언쟁인지, 참기름 값 흥정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할머니와 방앗간 사장님 사이에는 작은 전쟁이 있었던모양이다.


나는 문 열면 꼭 전화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에 할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듯 “그래잉” 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 짧은 통화가 내 마음속 풍경을 바꿔놓았다.

면사무소의 창은 서류를 위한 창이 아니라,

마을을 잇는 작은 창구이자 하루의 이야기가 오가는 통로였다.


방앗간이 언제 다시 문을 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날 이후로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날의 헛기침 소리와 “싸웠어”라는 대답을 잊지 못한다.


시골에서의 행정은, 때로는 종이 위의 도장보다

사람 사이를 오가는 웃음 한 번, 안부 한 마디로 완성된다.

그 느릿하고 다정한 호흡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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