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그리고 온천.

18.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by 권상혁

내가 일본 목욕 문화에 놀랐던 것은 10년 전쯤 일본인 지인의 집에 초대됐을 때다. 일본에 살기 전이었고 내가 방학을 이용해서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였다. 지인의 아버님과 어머님은 내가 한국에 살 때 한국으로 여행을 오신 적도 있고 당시 우리 집에서 며칠 묵고 가시기도 했다. 그때 마침 내가 방학 기간이라 보충수업이 마무리된 시기여서 내 차로 옛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주 ‘청남대’에 같이 여행을 간 일도 있었다.

일본인 지인의 아버님과 어머님은 나를 무척 신뢰했고, 어수룩해도 일본어로 어떻게든 대화를 하고 안내를 하려고 했던 나를 매우 기특하게 여기셨다. 특히, 지인의 아버님은 당시 한국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나에게 관심이 많으셨는데 ‘꿈’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당신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고 했다.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해 영화판에서 여러 가지 잡일을 하다가 영화 관련 회사에 입사하고 정년퇴직하기까지의 삶을 나에게 무척이나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셨다. 한국에서는 아버님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했는데, 내가 일본에 왔을 때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님이 나에게 어려서부터 교사가 꿈이었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나는 두 가지 꿈이 있었고, 제일 원하던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두 번째 꿈이었던 ‘교사’는 이루어서 무척 행복하고 감사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지인의 아버님께서 첫 번째 꿈은 뭐였냐고 물으셨고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 욕실에서 욕실물이 다 데워졌다는 안내방송이 있었다.(일본은 욕조에 따뜻한 물이 자동으로 다 채워지면 ‘목욕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온다.) 아버님께서 내게, 먼저 욕실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라고 권했다. 나는 양손을 내저으며 그럴 수는 없다고 완곡하게 아버님 먼저 하시라고 몸을 옹송그렸다.

지인이나 지인의 아버님과 어머님 모두 ‘손님’이 먼저 목욕을 하는 게 일본 문화라고 했지만, 나는 제일 연장자인 지인의 아버님이나 어머님께서 목욕을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남의 집에서 목욕을 하고 나올 수는 없다고 생각해 계속 거절을 했다. 하룻밤 묵고 가는 거라서 간단히 샤워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목욕을 하라고 하니 그것도 당황스러웠다. 내 표정이 하도 완강하니 ‘한국 사람들은 어른들에 대한 예의가 바르다.’라고 아버님이 미소 지으며 욕실로 들어가셨다. 아버님이 먼저 목욕을 하시는 동안, 지인이 걱정 말고 마음 편하게 목욕하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 앉은자리가 가시 방석 같았다. 내가 왔다고 갖가지 음식 재료들이 주방에 가득했고 이미 주요리 외에 찬들이 차려졌는데 그것만으로도 식탁에 놓을 그릇이 없을 정도였다. 극진히 대접받는 거 같아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지인의 어머님도 일본에서는 손님이 집에 방문을 하면 제일 먼저 욕실에 들어가 욕조에 몸을 담그는 거라고 했다. 평소에는 집안에서 연장자 순으로 들어가나, 보통 어머니들이 마지막에 들어가서 욕실 청소를 하고 나오는 게 일반적이라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익숙하지 않았다. 남의 집에서 목욕을 한다는 것도 그랬지만 욕조에 몸을 담근다니, 그러면 욕조 물을 여러 번 바꿔야 할 텐데 그 많은 물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목욕은 괜찮다고 극구 사양을 한 것이었다. 간단히 샤워만 한다는 것도 눈치가 보일 일인데, 남에 집에서 욕조 가득 물을 채운 탕 안에 들어가고 그 물을 죄다 버리는 것도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지인이나 지인의 어머님은 아버님이 욕실에서 나오시면 두 번째는 반드시 내가 들어가 목욕을 하고 나와야 한다고 했고, 그래야 식사 준비를 할 거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지인에게 아버님이 욕실에서 나오시면 욕조에 물을 다시 받아야 할 텐데 가족들 모두 목욕을 다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고 걱정했더니, 지인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었다.

“욕조 물을 왜 버려? 아버지가 쓰고 나오시면 그다음에 네가 들어가고, 그다음에 내가 들어가고, 그다음에 내 동생이 들어가고, 그다음에 어머니가 들어가실 거야.”

사실 나는 이 말을 듣고 기겁을 했다. 기가 막힌 것은 바로 나였다. 지인의 어머님이나 동생이 내 반응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놀라운 기색을 낼 수가 없어 표정 관리를 하느라고 애를 썼다. 그때 아버님이 욕실에서 나오셨고 아버님이 나에게 목욕을 하라고 다시 권했다. 나는 욕실로 향했다. 욕실 안에 있는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드디어 욕조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욕조 위에는 욕조 물이 식지 않도록 욕조 크기만 한 덮개가 덮여있었다. 욕조 덮개를 살짝 열어 봤는데, 물이 아주 깨끗하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아버님이 목욕을 하고 나오신 곳인데도 새로 받아놓은 물처럼 맑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샤워만 하고 욕조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목욕탕에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다들 같이 욕탕에 들어가 때를 불리고 피곤을 풀고 하던 걸 생각하면 일본 지인 집의 욕조에 못 들어갈 것도 없었는데, 왠지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집에 있는 욕조에 더구나 남이 들어간 욕조 물에 내 몸을 담근다는 생각 자체가 그때 당시에는 없었다.

내가 생각보다 욕실에서 빨리 나오자 지인은 자기 차례니까 좋아했지만, 식탁에 앉아 일본 소주를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 아버님이 왜 이렇게 일찍 나오느냐고, 좀 더 욕조에서 느긋하게 있으면서 피로를 풀면 좋을 텐데,라고 하시며 아쉬워하셨다. 나는 충분히 피로가 풀렸고 덕분에 깨끗하게 씻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지인의 어머님과 동생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어정쩡하게 식탁에 앉아서 아버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았으면 식사만 하면 되지 왜 목욕을 하라고 하는지 나는 정말 몰랐다. 남의 집에 초대를 받은 자리였기 때문에 나는 당시 묵고 있던 호텔에서 이미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몸단장을 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시 샤워를 하고 어머님이 내주신 잠옷까지 입고 있으니 나는 완전히 지인의 집 식구들과 똑같은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그냥 우리 집에서 씻고 머리도 안 말린 채 밥 먹을 준비하며 하품이나 쩍쩍하던 그런 분위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를 편하게 해 주려는 마음을 넘어 이미 나는 손님이라기보다는 지인의 집 식구 대접을 받았다.

지인과 지인의 아버님 · 어머님이 한국에 여행 왔을 때, 내가 살고 있던 집에서 머물고 나와 같이 여행을 간 것 외에 내가 특별히 잘해드린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 지인의 아버님과 어머님에게 나는 당신들 자식의 친구가 아닌 ‘한국인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 거 같았다.

지인은 욕실에 들어가 있고, 지인의 어머님과 동생은 주방에 있었기 때문에 식탁에 아버님과 내가 마주 앉게 되었다. 나는 잠옷 차림으로 머리도 덜 마른 채 부스스하게 있는 게 마음에 걸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일본 소주잔을 내게 건네시며 한잔 마시라고 했다. 나는 두 손으로 잔을 받아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아버님이 따라주신 소주를 조심스럽게 마셨다.

"기미코, 이거 봐봐. 곤짱(권이 - '짱-ちゃん'이라는 것은 이름이나 호칭 뒤에 붙는 말로 일본어의 '상-さん [~씨]'보다 다정하고 친근한 사이에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이다.) 봐봐! 두 손으로 잔을 받고, 어른 앞이라고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는 거 보라고."

아버님이 굉장히 신기하고 또 아주 만족하신 듯이 어머님에게 말하고는 내 행동을 보고 껄껄 웃으셨다. 나는 어리벙벙해서 왜 그러시나 했는데, 아버님 말씀이 일본에서는 아무리 손윗사람이라고 해도 한 손으로 술을 받는 게 통상적이고, 어른 앞이라고 해서 삼가며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것에 비하면 한국 사람들은 어른들 앞에서 참 예의가 바르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셔서 나는 정말 술기운에 얼굴이 빨개지는 건지, 아버님이 비행기를 태우셔서 얼굴이 빨개지는 건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버님은 그런 술자리 예의가 아주 마음에 드셨는지 자꾸 나에게 술을 권했고, 음식이 차려지기도 전에 아버님과 나는 일본 소주를 대 여섯 잔 나눠마셨다. 나는 알딸딸해지면서 자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님은 내가 아는 일본인 중 유일하게 나를 ‘곤상(권 씨)’이 아닌 '곤짱(권이 또는 권아)'이라고 다정하게 불러주셨다. 이를 보던 지인의 어머님이 손님에게 '~짱'이라는 호칭을 붙이면 실례니까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도, 아버님은 어머님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내게 '곤짱'이라고 불렀다. 당신의 자식들 이름을 부를 때도 '~짱'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는 아버님이었다. 아버님은 나를 무척 아끼셨다. 내가 아버님을 만나고 헤어진 것은 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으나 1936년생이셨던 아버님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전쟁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았던 이야기부터, 도쿄에 공습이 있었을 때 집 앞 개울물에 들어가 폭탄을 피하던 이야기, 전쟁이 심해져서 더 이상 도쿄에 있을 수 없어 멀리 시코쿠 어디 친척집에 피신을 갔다가 그곳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경험까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인과 지인의 어머님이나 동생 모두 내 앞에서 너무 말이 많아진 아버님을 보고 놀라워했고, 내가 아버님 눈에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렇게 아버님과 나는 국적을 넘어 부자(父子) 관계 같은 사이가 됐다.

"곤짱(권아) 첫 번째 꿈이 뭐였어? 아직 젊은데, 꼭 하고 싶은 거라면 해봐야지. 뭐였는데?"

아버님이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내게 물었고, 나는 이루지 못한 꿈을 남 앞에서 말하는 것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술기운에 말할 용기가 났다.

"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오, 그래? 곤짱(권이) 소설가가 꿈이었구나!"

"네……,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슴속 깊은 곳에 그 꿈을 간직하고 있어요. 지금은 교사로 아이들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는 것도 무척 보람되고 뜻깊은 일이라 또 안정적인 일이라 만족하며 살아요. 아버님이 예술가인 영화감독이 꿈이셨던 것처럼 저도 소설가가 꿈이었어요."

나는 말을 마치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처음이었다. 교사가 되고 나서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번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다. 나조차도 내 꿈을 잊고 있었다.

"아니야. '꿈이었어요.'가 아니야. 곤짱은 이제 서른을 갓 넘었잖아? 아직 너무 젊다고. 하고 싶은 걸 해봐야지, 도전해봐야지. 교사도 물론 정말 훌륭한 직업이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게 소설가라고 했잖아? 무릇 작가는 만인의 스승이라고 했어. 나는 곤짱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말고 이뤘으면 좋겠어. 그래서 곤짱이 쓴 소설이 출판이 되고, 일본어로 번역이 되면 나는 꼭 사서 읽을 거야. 그리고 더 큰 꿈은 그 소설이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걸로 만들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본다면, 그보다 더 멋있는 일이 어디 있겠어? 곤짱, 안 그래?"

아버님은 마치 당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껏 기대가 부풀어 오른 표정이었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만 이야기했을 뿐인데, 아버님은 이미 내가 소설가가 된 것을 가정하고 그 이상의 것들에 더 큰 희망을 품고 있는 거 같았다. 아버님의 눈동자에 희망이 넘실거리고 술이 취하셔서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눈시울에 물기가 촉촉하게 맺히기도 했다.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내가 이뤄줬으면 하는 어떤 간절한 바람 같은 것을 나는 그 순간에 느꼈다. 당신의 자식들은 '예술가'와는 전혀 다른 삶의 길을 가고 있고 '예술'에 관심과 흥미도 없었다. 그런데 국적도 다르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국의 나에게, 아버님이 이루지 못한 꿈을 발견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를 한없이 그윽하고 깊게 바라보셨다. 그날, 아버님과 나는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이야기를 했고 지인과 어머님 그리고 동생은 모두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가 가까워지면서 나도 더 이상 술을 못 마시고 몸을 못 가눌 정도가 되자 아버님이 나를 놔주셨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려는 나를 불러 세웠다.

"곤짱, 포기하지 마. 곤짱은 할 수 있어. 나는 곤짱이 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어. 곤짱이 교사로 사는 것도 좋지만, 나는 곤짱이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줬으면 좋겠어. 이 세상에는 이야기가 넘치거든. 꼭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남들이 잘 보지 않아서 모르고 있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그걸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도 훌륭한 삶이니까. 나는 곤짱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부리면 곤짱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가 되어 영상으로 보면 더 좋고. 나이가 들어서 눈이 나빠지니까 책을 읽는 게 힘들어. 나 같은 노인네들에게는. 잘 자."

나는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왔고, 개학을 했으며 수업을 하고 반 아이들을 챙기고 각종 업무를 하느라 학교에서는 일본인 지인 아버님이 한 이야기를 생각할 겨를도 틈도 없었다. 하지만, 퇴근길 내 차 안에서 나는 가끔 아버님이 내게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현실에서 발을 뗄 수 없는 내 처지에 소설가는 그저 멀고 먼, 저 멀리 어딘가 별빛처럼 반짝거려 가 닿을 수 없는 꿈같았다. 그 후로도 아버님이 내게 하신 말씀들은 문득문득 생각나 일에 지쳐있던 나에게 생기를 돌게 했다. 그러나 아버님은 결국, 내가 소설가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셨다.

아버님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나는 퇴근하고 돌아와 백지 앞에 앉았고 조금씩 뭔가를 써나갔다. 다음 해 나는 소설가로 등단했고, 아버님 덕분에 소설가가 되었다는 말을 직접 전할 수 없었다.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때였고, 연락을 받고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 김포공항으로 달려갔지만 그날 도쿄로 가는 비행기는 전편 만석이었고 무엇보다 이미 모든 비행기가 수속이 완료되었다. 인천국제공항에도 알아봤지만 자리를 얻을 수는 없었다. 표 한 장을 얻기 위해 여러 방편으로 알아보고 노력했지만, 나는 결국 일본에 갈 수 없었다.

일본인 지인이 직접 전화를 했고 지인의 어머님도 아버님이 나를 보고 싶어 하실 거라고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던 지인의 친척들에게 연락하면서 한국에 있던 내게도 연락을 했으니 감사한 일이었다. 당시 76세(지금 살아 계셨다면 85세이시다.)였지만 매우 건강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돌아가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굴을 뵙고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휴대폰을 붙들고 공항에서 서성이던 내게 온 소식은 아버님의 부고와 이미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니 급하게 오지 말고 천천히 오라는 메시지였다. 그날 나는 하염없이 울다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상태로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에게 내가 이렇게 지친(至親)에게나 느끼는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무척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일본은 그 어느 나라보다 '목욕'을 좋아하는 나라이다. 가족이 저녁 식사를 먹기 전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필수 중에 필수로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에는 저녁 식사 전 이런 말이 흔하다.

"목욕 먼저 할래? 식사 먼저 할래?"

간단히 샤워만 하는 문화가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낯선 풍경이다. 무엇보다 가족 모두가 한 욕조에 들어간다는 것도 내키지 않을 것이다. 더럽다는 생각이 강하니 말이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어떻게 한 욕조 속에 들어가나 싶었다. 일본에서는 욕조에 들어가서 몸을 씻는 것이 아니라 일단 샤워기로 간단히 샤워 후에 욕조에 들어가고, 욕조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일본 목욕의 주목적이라는 것은 뒤늦게 알게 됐다. 혼자 살면 더럽게 써도 상관이 없겠지만 가족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음 사람을 위해서 더욱 청결하게 쓰는 데 신경을 쓴다고 한다. 가족들이 욕조에 들어갈 때마다 욕조 물을 새로운 물로 바꾼다면 수도세를 감당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물 낭비가 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욕조에 물을 받아 매일같이 목욕을 한다면 물을 낭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족들이 다 쓴 욕조 물은 세탁기 호스로 연결이 되어 '애벌빨래'를 할 때 쓴다고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욕조와 세탁기 호스가 연결되어있지 않아 그렇게까지 욕조 물을 재활용하지는 않지만, 목욕을 매일 한다고 해서 허투루 물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의 욕조는 '욕조 물 다시 데우기(追い焚き-오이다키)' 기능이 있다. 나는 처음에 이 기능을 보고 매우 놀랐다. 무척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한번 쓴 욕조 물을 버리지 않고 다음 날 데워서 쓰는 것이다. 욕조와 연결되어 있는 급탕기에서 물을 데워서 욕조의 찬물과 빠르게 교환하면 마치 새로운 물처럼 욕조에 물이 채워진다. 최근에는 더욱 발전된 형태의 '욕조 물 다시 데우기' 기능이 있어 욕조 물을 필터로 정수까지 해줘서 새로운 물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반드시 욕조에는 덮개가 있다. 욕조 물이 식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목욕 문화가 발달한 만큼 '입욕제'가 아주 다양하다. 갖가지 향이 나는 입욕제부터 시작해서 쑥 같은 한방 입욕제까지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욕조에 정수 필터가 없는 경우에는 물을 맑게 하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고체형 약’ 같은 것을 넣어, 받아 놓은 물을 맑게 해주는 약품도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 일본에 살면서 이런 다양한 제품들은 필수품이 되어 나도 욕실에 '입욕제'와 물을 맑게 해주는 '고체형 약'을 많이 구비하고 있다.

일본에 살기 전에는 '왜 맨날 목욕을 해야 해?', '진짜 물 낭비가 너무 심한 거 아냐?', '아무리 가족이지만 한 욕조에 차례차례 다 들어간다고?, 더럽게?' 같은 생각들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일본에 살면서 나도 매일 목욕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욕조에 받아놓은 목욕물은 평균 삼일에서 사일 정도 사용한다. 이건 집마다 다르고 가족 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보통 이틀 정도 사용하는 것이 기본인 것 같다. 욕조 물을 데우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가스비가 더 들기는 하나, 우리나라에서 온수 급탕기 사용하는 정도의 가스비가 추가된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일본이 온천으로 유명한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도 일본에 살면서 온천에 많이 다녔다. 온천여관에서 1박 2일을 묶으면서 온천물로 목욕을 하고 여관에서 제공되는 저녁 식사를 먹고 두툼한 이불을 덮고 자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편안하다. 나는 주로 저렴한 여관에만 다녀서 고급 여관까지는 모르겠지만, 여관 시설에 따라 하룻밤 자는데 10만 엔(한화 약 110만 원)도 하는 곳도 있고 그 이상의 여관도 있을 거라고 추측된다.

지인의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나를 데리고 후지산 근처에 있는 온천 여관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직장에서 무척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고, 나를 괴롭히는 직장 내 모든 상황들 때문에 중증의 섭식장애가 있었다. 소화 기능이 많이 떨어진 나에게 일본인 지인이 온천을 다녀오면 좋아질 거라고 했고, 지인의 집에서 머물며 온천에 다녀오라고 권해서 방학을 이용해 지인의 집에 하루 신세를 진적이 있다. 지인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내가 방문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고 어서 오라고 보채시기까지 했다. 그때, 아버님이 70이 훨씬 넘은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운전을 해서 나를 후지산 근처 온천여관으로 데리고 가주셨고, 온천물에 몸을 담그게 해 주셨다. 그때도 아버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곤짱, 꼭 소설을 써야 해. 나는 곤짱이 소설책을 내는 날을 기다릴 거니까, 그때까지는 살 거니까. 알았지? 곤짱?"

나는 그때 수줍게 웃었고, 아버님이 채근을 하셔서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아버님은 나를 보며 자신의 못다 한 꿈을 보신 듯하다. 평생 이루지 못한 꿈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은 늘 아쉬움과 허전함을 남긴다는 표정이 아버님 얼굴에 가득했던 것을 기억한다.

소설가이자, 생활형 작가인 나는 그래서 앞이 깜깜한 날들에도 하늘의 별빛을 보며 한발 한발 내딛을 수 있는 거 같다. 그 별들 중 하나가 나를 응원해주신 아버님 같다는 생각에 나는 가끔 까만 밤의 별을 보며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내 일을 한다. 힘들고 어려운 날들의 연속이지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있는 한, 나는 포기하지 않고 내 길을 가려고 한다. 멈추면 그다음이 없기 때문이다. 일을 하나씩 마칠 때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알게 된다. '아, 이래서 매일 같이 목욕을 하는구나.' 온갖 스트레스와 잡생각이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순간 사라져 어느 순간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도 삶의 큰 감사함이다. ■

사진제공: H.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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