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직업? 나쁜 직업?
“아버지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60~70년대 급속한 사회 구조의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아버지로 준비되지 못한 채 왜곡된 아버지상을 가지고, 가장의 자리에 선 아버지와 그로 인해 상처받는 가정이 많다. 유교적 전통에 의한 부계 중심 사회에서 아버지는 그 역할의 성공적 수행 여부와 상관없이 가정 내 폭군적 권위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 변혁기를 맞아 아버지의 우매한 권위행사는 거부당하기 일쑤였고, 거부당한 권위는 폭력으로 발현되어 가정을 피폐하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런 사회적 취약 상황이 있었기에 200년대 초반, 아버지 학교 사역은 이 사회 가정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아버지 학교에서 만났던 한 노년의 신사가 생각난다.
“교회에서 장로로 추대되는 날, 장로의 역할을 위해서는 이일을 계속하면 안 되겠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에 사직서를 냈고, 사업을 시작했지요.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고, 재정운영의 규모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나는 이 만남을 계기로 직업에 귀천은 있을 수 없지만,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적합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나의 직업 선택 - 엔지니어의 삶
고등학교 1학년 때 적성검사를 했다. 문과, 이과 진로를 결정하기 위한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나의 적성검사 결과는 문과 90 vs 이과 10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궁금하지만, 그 결과를 받아 들고 한 선배를 찾아갔다, 그 선배는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있던 선배였다. 나는 많은 고민 끝에 물은 질문이었는데, 내 생각과는 너무도 다르게 “뭘, 그런 걸 고민하냐, 미래는 엔지니어의 시대야. 무조건 이과를 가야 하는 거야.”라고 딱 잘라 결정을 해 주었다.
그 한마디 조언이 내 인생 30여 년 가까운 엔지니어 삶의 시작이 됐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 보면 당시 적성검사 결과가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리(숫자를 다루는 일)에 그다지 밝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수학 시간은 물론이고, 대학 시절에도 공업 수학을 비롯한 기계과 전공필수인 5대 역학(고체역학, 열역학, 유체역학, 동역학, 정역학) 과목 모두가 내가 이해하기에는 참 어려운 학문이었다. 오히려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심리, 철학, 문학사 과목은 거의 만점을 맞았지만 2학년 전공필수였던 공업수학은 백지답안을 내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험지를 받아 들었을 때의 난감함을 기억하면 지금도 속이 울렁거린다. 그렇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회사의 톱니바퀴 안에서 내 역할을 하며 살아오는 데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시절 달달 외우고, 머리를 굴려 가며 계산했던 외팔보의 하중, 안전율, 단면계수 등등은 사실 구조해석 프로그램 안에 몆 가지 숫자만 입력하면 다 자동으로 계산이 되는 것이었다. 회사에 취업을 하고 처음 엔지니어의 삶을 시작했던 시점에 생각했던 다짐이 있다. "엔지니어는 기계를 만들고 그것을 운영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 기계를 만들되 인간에게 유익한 기계를 만들자" 다짐을 했다. 조금 유치해 보이는 다짐이기는 하지만, 이 생각은 내가 일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수없이 많은 판단의 순간에 일관성 있는 기준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나를 신뢰 가는 엔지니어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자동차를 개발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프로토타입 차량을 시험평가(Test & Evaluation)해서 문제를 개선하고, 상품성을 확보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이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결정이 필요하고 그 순간마다. 처음의 다짐을 떠올리며 개선의 방향을 잡고 있다. 어떤 것이 더 사용자에게 이로운 것일까? 일을 하다 보면 이윤이 우선되는 결정, 기술적 자기만족이 우선이 되는 결정, 자신을 입장을 세우기 위해 적합하지 않은 결정을 묵인하는 경우 등이 비일비재하게 생긴다. 그래서 동일한 상황에서도 그 시점 담당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보다,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이란 때로는 나의 자아성취를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나위 삶을 영위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일을 통해 보람을 얻기 위해 직업을 결정할 수 있지만, 단순히 경제적 효용성만을 위해서 내 시간을 저당 잡힐 수도 있다. 어느 게 더 맞는 것인지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좋은 경제적 형편에 있다면 굳이 많은 소득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고, 꿈을 위해 더 적은 보수의 일이라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부양의 많은 짐이 지어져 있어서 좀 더 많은 소득이 필요하다면 꿈이나 보람은 잠시 접어 두고, 보다 좋은 보수를 위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많은 보수를 받고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사회 진입의 초입에서 경쟁은 생각보다 치열하고 내가 가진 능력은 유리병처럼 투명하게 드러나게 난다. 아직 너의 잠재된 능력이 드러나지 않은(포트폴리오가 빈약한) 시점에 사회에 진입을 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만족도 100%의 직업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게 되던지 그 일을 통해서 스스로 얻고 싶은 것, 그리고 그 일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세상은 그런 것을 직업적 소명(Calling)이라고 한다. 엔지니어인 내가 선택한 소명은 “세상에 유익한 것을 만들어 내자”였다.
내가 만난 청춘 - 타투이스트
내가 만난 청춘 중에 기억에 남은 한 사례가 있다. 어린 시절 프랑스에 가서, 그곳에서 자란 친구인데. 고국에 들어와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혼자 한국에 들어왔다, 그 친구와 인연을 맺고 1~2년 정도 지난 시점, 그 친구가 물었다. “타투이스트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문화에 몸에 문신을 하는 것을 그다지 건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특히 한국에서 "문신"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부분에서 합법의 영역을 벗어난 부분도 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사실 많이 당혹스러웠다, 그 분야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깊이 고민을 하고, 프랑스에 있는 부모님께도 이야기해서 그 일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수완이 좋아서 프리랜서 타이투리스트들에게 시술 장소와 시설을 공유하는 플랫폼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 타투의 합법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하루는 타투 합법화 집회를 하면서 경찰에 쫓겨 다니고, 하루는 청년 창업 사례 발표 같은 것을 하며 관공서에서 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헤쳐 가고 있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직업 선택 기준 - 현실적 비교
직업을 선택하는데 두 개의 관점을 고려해 볼 수 있어, 각자의 결정에 따른 장단점을 비교해 봤다.
1) 고용형태에 따른 유익
- 급여생활자 : 안정적 생활
- 자영법, 개인사업자 : 시간 활용의 융통성
- 프린랜서, 자유계약직 : 유연한 고용환경, 노매드라이프에 적합
- 일용직, 비정규직 : 상대적 소외계층에 대한 이해,
사회봉사의 창구역할 가능
2) 일의 종류에 따라 유익
-전문직 : 창조적 업무 / 창의성 발휘
-관리직 : 조직관리 능력 / 교회 공동체 운영
-영업직 : 대인관계의 확장 / 복음의 확장
-서비스업 : 프로 봉사자 / 봉사 마인드
직업 선택의 우선순위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은 분명히 존재한다. 얼마 전 어떤 사람에게 직업 선택에 대한 조언을 요청했을 때, "직업은 내가 타고 가는 배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단 직업이 주어지면 열심히 해야겠죠. 남들보다 열심히, 성과를 내면 그 배안에서 내 위치는 더욱 확고해질 수 있고요. 하지만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배의 목적지를 바꾸지는 못하죠. 그래서 좋은 목적지를 설정한 배를 찾는 게 직업 선택의 중요한 과정 아닐까요?"
나는 직업 선택 시 4개의 관점에서 순위를 가지고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하나, 사회 통념상 건전한 노동인가?
어떤 일들은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일도 있다.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그중 하나이다. 누군가의 인권을 상품처럼 사고파는 일은 우리가 피해야 할 직업 1순위다. 왜냐하면, 그 누군가도 한 사람의 인격을 파괴할 권한은 없다는 것이 내 신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매매 알선, 폭력조직, 등등, 이런 건 물론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법에는 위반되지 않지만, 인권을 파괴하는 일들도 있다, 이런 일들을 주도하는 일은 일단 직업 선택에서 제외할 것을 제안한다.)
둘, 자기 주도적 생활(시간) 관리가 용이한 가?
현대인은 언제나 시간의 부족함에 허덕이게 된다. 뭔가 세상을 주도적으로 살려고 마음먹었다면 일하는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자기 계발(인풋)과 아웃풋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일은 힘들지 않지만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일보다는 짧게 일하고 많은 시간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좋다. 전통적인 산업사회를 지나, 다양한 기회가 열리는 이 시대를 살아 내는데 부캐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셋, 창조적인 업무 분야인가?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을 거짓말하는 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 상상력)이라고 했다. AI(인공지능)이 바로 옆에 와 버린 세상, 결국은 가장 인간다움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루틴 한 일을 하는 직업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직업을 생각해 보자.
넷, 세상 변화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최근 출간된 "아웃풋 법칙" 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진정한 아웃풋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단지 나 하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영향을 주는 일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