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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진 Sep 19. 2017

세계 최대의 카지노, 주식 시장

사실 소프는 주식시장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소프가 블랙잭과 룰렛을 연구하던 초창기에 은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접했다. 1960년대 전반에는 은의 수요가 치솟고 있었고 동전에도 섞어 사용했기 때문에 소프는 은에 투자하는 것이 안전하고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소프는 블랙잭으로 벌어들인 2만 5천 달러와 책 인세 1만 5천 달러를 저축하고 있었다. 



은은 상승하기 시작했고 신이 난 소프는 대출까지 하면서 은에 투자하게 된다. 그러나 온스당 2달러 하던 은은 1.3달러까지 추락하였고 담보인의 회수 요청에 따라 가지고 있던 은을 강제로 팔아 연봉의 반인 6천 달러를 손해 보았다. 이후 온스당 2.5달러까지 상승했다가 다시 1.5달러까지 떨어졌다. 소프는 뉴스에서 얻은 정보로는 투자 우위를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소프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도박과 수학의 전문가 아닌가? 섀넌의 정보 이론과 블랙잭 경험에서 배웠듯이 정보의 질은 확률로 표현할 수 있고, 이 확률의 우위가 있으면 주식 베팅에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소프는 블랙잭에서 했던 것처럼 각각 시나리오마다 어떤 식으로 주식이 움직이는지 컴퓨터에 입력하고 그 확률을 하나씩 산출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주식의 수학적 확률 접근에 대한 책과 논문을 탐독하면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당시 유진 파마(Eugene Fama) 시카고대학 교수와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MIT 교수가 정립한 ‘효율적 시장 가설’이라는 것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이 세상의 모든 정보가 이미 주식시장에 다 적용되어 있다는 이론이었다. 비밀스러운 정보를 가진 사람들은 이익을 내기 위해 거래를 할 것이고, 거래를 하면 가격이 움직이면서 해당 정보가 시장에 적용되고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는 이미 주식시장에 적용돼 있으며, 주식이 오를지 내릴지 아무도 모르는 50 대 50의 무작위 상태라는 주장이었다. 

    

소프는 이 부분에 의구심을 갖고 주식의 움직임에 대해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그러나 주식의 움직임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유망하다고 생각한 주식이 폭락하기도 했고, 갑자기 폭등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확률 계산 끝에 효율적 시장 가설대로 주식은 50 대 50, 즉 우위를 가져갈 수 없는 게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위가 없는 상태에선 아무리 해도 돈을 벌 수가 없었다. 소프는 실망하고 다시 강의와 교수 생활에 몰두하게 되었다.     

물론 소프가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러 가지 금융 정보 잡지들을 보면서 재미있는 기사나 광고를 스크랩해 놓고서 일과 후에 체크하곤 하였다. 하루는 RHM워런트서비스의 광고가 소프의 눈에 띄었다.


여러분오늘 당장 워런트로 인생 역전을 해보세요!”    

   




주식의 승률은 50 대 50?     




‘워런트(Warrant)’는 치킨 10마리를 시켜먹으면 치킨 1마리로 교환해주는 쿠폰처럼, 가지고 있으면 주식으로 바꿔주는 쿠폰이다. 유효기간이 있고 교환가도 적혀 있다. 예를 들어 ‘GE 10달러 워런트 ━ 1970년 5월 20일까지’라고 표시돼 있으면 1970년 5월 20일 전에 10달러를 주고 GE 1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GE 주식이 10달러보다 낮은 8달러라면 이 쿠폰은 아무 쓸모도 없는 휴지조각이다. 하지만 GE 주식이 40달러라면 이 쿠폰으로 10달러와 주식을 교환한 다음에 되팔면 30달러라는 이익을 얻는다.     


당시 기업들은 투자자들이나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이나 보상을 주기 위해서 워런트를 지급했다. GE 직원에게 10달러짜리 워런트를 주면 그들은 워런트가 휴지조각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일을 해서 GE의 가치를 10달러 이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한 투자자에게 워런트를 주면 지금 당장 자금이 들지 않으면서도 추가 보상을 해줄 수가 있다. 주식 가격이 충분히 올랐다면 그만큼 회사가 성장했다는 뜻이니 워런트로 생기는 손해는 메꿀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지급된 워런트가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워런트를 사는 것은 도박과 비슷했다. GE 주식이 10달러가 넘으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고, 10달러 아래라면 워런트를 구입한 돈 모두를 날리기 때문이다. 잡지에는 워런트로 인생 역전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카센터 직원에서 건물주가 된 사연, 가난한 홀어미가 최고급 자동차를 몰게 된 사연 등등. 더불어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워런트 시세표도 수록되어 있었다.     



[1970년 3월 10일 GE 10달러 워런트] ━ 0.8달러

[1970년 5월 11일 AT&T 22달러 워런트] ━ 1.7달러

[1963년 9월 15일 Sperryland 25달러 워런트] ━ 1.2달러     



소프는 워런트의 시세표가 신문에 매일 게시되는 경마 우승확률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결국 워런트는 적힌 가격만큼 주식이 오르느냐 마느냐 내기하는 것이었고, 워런트의 값은 주식이 그만큼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 즉 확률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GE 주식이 10달러를 넘으면 워런트가 가치를 가지게 되고, 10.8달러를 넘는 순간 이익을 내기 시작한다. 소프는 그 즉시 펜을 들고 컴퓨터 앞으로 가서 계산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주식은 무작위로 움직인다. GE의 현재 가격은 7.8달러, 그렇다면 1970년 3월까지 10달러를 넘을 확률은?’     


구식 IBM이 거대한 냉각 팬 소음을 내면서 하루하루 확률 분포를 그리며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1961년 3월까지 확률은 12%

1963년 5월까지 확률은 28%

1966년 3월까지 확률은 35% 


… 


10달러를 넘을 확률이 점점 높아지다가 1970년 3월이 되자 계산이 끝나고 화면에 결과가 나왔다. 


43%.     


소프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50%가 안되는 워런트의 승률 43%로 돈을 벌 수 있는 알고리즘이 이미 그려지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이 글은 책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의 미리보기 글입니다. 
YES24 -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 알고리즘, 세계 금융 시장을 침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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