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주식은 무작위로 움직인다. GE 주식의 현재 가격은 7.8달러, 그렇다면 1970년 3월까지 10달러를 넘을 확률은?'
소프는 재빨리 타자기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구식 IBM이 거대한 냉각 팬 소음을 내면서 하루하루 확률 분포를 그리며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1961년 3월까지 확률은 12%
1963년 5월까지 확률은 28%
1966년 3월까지 확률은 35%
…
10달러를 넘을 확률이 점점 높아지다가 1970년 3월이 되자 계산이 끝나고 화면에 결과가 나왔다.
43%.
소프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워런트의 승률 43%로 돈을 벌 수 있는 알고리즘이 이미 그려지고 있었다.
43%란 GE가 10달러를 넘길 확률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기댓값으로 환산을 하였더니 0.5달러 정도 되었다. 소프는 잡지에 있는 다른 워런트 가격도 시뮬레이션하였다. AT&T 워런트가 22달러를 넘을 확률은 38%, Sperryland 워런트가 25달러를 넘을 확률은 47%였다. 시장에 있는 많은 워런트들이 과대평가되어 있었던 것이다. 도박에서 확실한 근거 없이 이길 거라고 믿는 것처럼 다수의 사람들이 워런트를 사면서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주가가 상승할 거라고 기대했다.
승률이 50%도 되지 않는 워런트라는 게임은 해서는 안 되는 도박이다. 그러나 소프는 반대로 생각했다. 승률이 50%도 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워런트를 팔면 되는 것이었다. 만약 주식이 충분히 오르지 않으면 워런트를 판 돈은 고스란히 수익이 된다. 물론 주식이 너무 많이 오르면 주식으로 교환해주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 GE가 10달러를 넘지 못할 확률은 57%다. 기대값과 실제 가격의 차이는 0.3달러. 소프에게 유리한 게임이었다.
소프는 과대평가된 워런트를 사람들에게 빌려서 팔기로 하였다. 워런트를 가진 사람들은 어차피 팔 생각이 없었고 빌려주면서 이자 수익까지 얻을 수 있으므로 기꺼이 빌려주었다. 소프는 워런트를 팔고 적힌 가격까지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고스란히 그 수익을 얻었다. 그 다음에 휴지조각이 된 워런트를 사서 갚으면 됐다.
한동안 그는 워런트로 실험을 계속했다. 소프의 예상대로 반 이상의 워런트는 교환가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유효기간이 만료되었다. 워런트의 가치는 0이 되었고 소프의 수익은 점점 늘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워런트 판매 알고리즘에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먼저 이익의 변동 폭이 너무 컸다. 만약 주식시장이 급격히 상승한다고 해보자. 모든 워런트의 가치가 급상승하고 소프는 크게 손실을 입게 된다. 반대로 주식시장이 평이하거나 하락하면 많은 워런트가 이익을 낸다. 또한 각각 주식이 교환가를 넘느냐 넘지 않느냐에 따라 자금이 크게 변하는 것 또한 불안 요소였다. 소프가 이용하려는 것은 워런트가 평균 가치에 비해 비싸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일 뿐이었지 워런트의 승패에 영향을 받고 싶진 않았다. 운이 나빠서 모든 주식이 워런트 쿠폰 가격을 한꺼번에 넘으면 파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프는 카지노에서 룰렛을 하면서 뼈저리게 배웠던 캘리 공식을 떠올렸다. 캘리 공식은 결국 유리한 만큼만의 리스크를 골고루 배분해서 베팅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는 워런트를 파는 것이 60% 승률이라면 100번의 게임을 했을 때 60번 이기고 40번 지는 것(즉, 20의 이익)이 아닌, 매 게임 0.2의 수익을 얻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소프는 패배했을 때의 시나리오를 계산해 보았다. 워런트를 팔았을 때 어떤 경우에 패배하게 될까? 패배를 한 경우는 주식이 상승하였을 때이다. 주식이 상승하면 손해를 보며, 크게 상승할수록 손해의 양 또한 엄청나게 커진다.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정량의 주식을 함께 가지고 있으면 된다. 만약 주식을 사고 워런트를 팔면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 비싸게 책정된 워런트로 돈을 벌 것이고 주가가 오를 경우 주식으로 번 돈이 워런트에서 기인한 손해를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시나리오에서 우위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GE ― 10달러 워런트]를 0.8달러에 팔고 GE 주식 1주를 8달러에 샀다고 하자. GE가 11달러가 된다면 워런트에서 0.2달러의 손해를 본다. 그러나 주식에서 3달러 이익이기 때문에 합해서 2.8달러 이익이다. 만약에 GE가 7.3달러로 하락했다고 치자. 주식에서 0.7달러 손해 보았지만 워런트 판매로 0.8달러 벌었다. 총 0.1달러 이익을 얻게 된다. 이렇듯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안정적인 이익을 내는 것이다. 소프는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손해 보는 상황을 막는 울타리 전략 바로, 헤지(Hedge)를 처음 시도하게 된다.
워런트 헤지(또는 델타 헤지) 알고리즘으로 소프는 안정적이고도 꾸준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이 거래 알고리즘은 손이 많이 가는 단점이 있었다. 워런트 자체의 물량이 많이 없었고 수수료도 비쌌기 때문에 조건에 맞는 워런트를 찾기 위해서 오랜시간 신문이나 가격표를 쳐다보아야 했다. 게다가 이미 거래를 해놓은 워런트의 조건을 갑자기 바꾸는 회사도 생겨서 뉴스를 끊임없이 체크하고 현재 거래와 비교를 해야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프가 원래 교수일에 집중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워런트 알고리즘으로 2년 정도 혼자 거래에 집중하던 중에 뉴멕시코 대학 학과장이 소프를 조용히 호출했다.
"소프 박사, 요즘 워런트인가 뭔가 하는 비학문적인 일을 자꾸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잊으셨습니까? 저희는 순수하고 고결한 수학을 추구하는 학과입니다. 당장 그만두십시오."
"학과장님, 워런트 또한 수학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소. 학생들이 수업에 안 들어오고 집중하지 않는다고 난리에요. 소프 박사,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더이상 함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학과장님, 전 이 연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뉴멕시코 대학은 옛부터 순수 수학을 지향하던 학과였는데다가 재정난까지 겹치면서 소프를 내보내게 된다. 소프는 좀 더 실용적인 학교에서 정착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학교를 찾다가 금융이나 실용 학문에 좀 더 개방적인 UC어바인의 교수로 다시 정착을 하게 되었다. 소프는 그 곳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워런트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료의 소개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바인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쉰 카수프를 만나게 되었다.
"소프 박사님, 워런트로 돈을 벌고 있다구요? 정말 굉장하네요! 제 박사 학위 논문도 워런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오 마침 잘 됐네요. 제가 사실 고민이 있습니다. 제 워런트 알고리즘은 잘 작동하지만 관리를 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쓴다는 단점이 있어요. 워런트 조건이 변경되거나 가격 상황이 급변했을 때 대처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라면 제가 한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보아하니 워런트와 주식과의 관계를 매번 새로 계산을 하고 계시는군요. 그건 정확하고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급변하는 시장에서는 좀 더 빠른 근사값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침 제 연구실에 있는 천공 카드 시스템이 시장의 변화를 근사해서 자동으로 읽어서 필요할 때만 출력을 하고 있는데 이를 워런트 시스템에 적용시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소프는 식사를 하다 말고 눈은 반짝였다.
"혹시 지금 당장 보러 갈 수 있을까요?"
카수프와 소프는 워런트 거래에 대한 정보를 천공 카드에 입력하면 변화가 있을 때 자동으로 그것을 입력 받아서 적절한 변수를 출력하는 시스템을 완성하게 된다. 비록 출력 변수를 보고 수동으로 거래를 처리해야하지만, 자동으로 시장의 변화를 입력받고 거래 방향을 알려주는 퀀트 인공지능이 처음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소프는 1967년 한 해에만 4만 달러를 10만 달러로, 약 150%의 수익을 얻게 된다.
이 글은 책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의 미리보기 글입니다.
YES24 -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 : 알고리즘, 세계 금융 시장을 침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