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태욱 Feb 14. 2019

두 번째 유럽 여행이 끝났다.

떠나기 전에 만든 버킷리스트를 꺼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다시 열어보았다



그리고 포르투 떠나기 일주일 전에 썼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펼쳐보기로 했다.



어떻게 되었는지, 하나씩 확인해봅시다.


1. 단골가게 만들기 (성공?)


고작 3주 여행하면서 단골 가게를 만든다는 게 참 웃긴 일이긴 하고, 막상 사장님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마음속의 단골가게는 아래 두 개 정도가 있다. 각각 네다섯 번 정도씩 방문했다.


(1) Namban

세 번째 방문했을 때쯤 사장님이 내 이름을 물어봤고, 4-5번째 방문 땐 사장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해주시기까지 했다. 포르투 현지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든 일본 가정식을 먹어보는 경험은 꽤나 신선했고, 실제로 음식도 매우 훌륭했다. 포르투에서 떠나기 직전에, 주방에 계신 모습이 담긴 사진을 엽서로 뽑아서 선물로 드렸다. 가게 벽에다가 걸어도 되냐고 나한테 물어봤고, 나는 Of course!라고 했다.


(2) Guldendraak Bierhaus Porto

포르투에서 만난 벨기에 맥주가 내 인생 맥주가 되어버렸다. 전문적이고 젠틀한 서빙이 참 좋았다. 너무 소란스럽지 않고 적당히 어둑어둑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날 내 최애 맥주를 병으로 사가려 했는데, 문을 닫아서 너무 슬펐다. 또 먹고 싶다. 굴덴드락 브루마스터!




2. 50번째 러닝 맞이하기 (세모)



포르투에서 3주 지내는 동안 총 세 번의 러닝을 했다. 당연히 내 50번째 러닝은 포르투에서 맞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49번째에서 멈춰버렸다. 날씨나 타이밍. 이것저것들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 밖에 못 뛰었지만, 장비를 바리바리 싸들고 간걸 절대 후회하진 않는다. 포르투에서 처음 달렸을 때의 기분은 아마 평생 못 잊을 거야.



3. 좋아하는 것들을 부지런히 수집하기 (성공)


- 그리고 그것들을 부지런히 기록하기

- 포르투 문구점에서 조그만 노트랑 펜 사기, 그곳에 끄적이기

- 여행의 흔적들 무인양품 반투명 파우치에 차곡차곡 모으기



일단 포르투 도착한 둘 째날에 70센트짜리 까만 무지 노트를 하나 샀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펼쳐보니까 이런저런 끄적임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포르투에선 정말 부지런히 수집했다. 신나게 먹고 놀았던 기억을 잡아두고 싶어서 영수증을 모두 모았고 일자별로 정리해두었다. 그리고 좋은 감정이 들었던 장소에 있던 물건들 (어떻게 보면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도)을 착실하게 모았다. 예를 들면 마토지누스 해변가에서 먹었던 스낵랩 껍데기라던지, 바닷가 모래 같은 것들. 그리고 그것을 무인양품 반투명 파우치에 넣어두었다!




포르투에서 떠나기 하루 전, 가장 좋았던 순간들에 찍었던 사진 18장을 선정해서 엽서로 뽑았다. 그리고 내 여행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사람들에게 뽑은 엽서를 선물하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모아둔 영수증과 잡동사니들은 모두 스캔 떠서 시간순으로 묶어 둘 계획이다. (특히 영수증은 시간 지나면 글자가 사라져 버리니까) 시간 순으로 정렬된 영수증들을 랜덤 하게 펼쳐보면서 비선형적으로 예전 여행을 추억해볼 수 있는 장난감 같은걸 만들어보고 싶다. 책의 모양을 하고 있는 장난감! (말이 어렵다) 플립핑 하기에 가장 좋은 판형과 종이 종류, 두께에 대한 고민을 충분하게 해서 명확한 이유가 있는 단단한 디자인을 경험해보고 싶다.



4. 그렇지만 애써서 거창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기. (성공)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니 날씨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된다. 곧 해가 뜬다는 것을 알고, 그때도 나는 여기에 있을 테니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막연하게 나가서 빛을 즐겨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흐린 날에는 날씨가 흐리니까 특별한 무언가를 안 해도 마음이 편하다. 자연스레 더 차분하고 정적인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이것 자체가 또 다른 여행의 모습이자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어 좋다.

- PORTO.13 / 1월 23일의 일기 중에서


피곤하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 날엔 집 근처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니 요것도 성공이라고 볼 수 있겠지? 여행을 왔으니까 열심히 보고 느껴야 된다는 또 다른 강박감에 종종 사로잡히곤 하는데, 이번엔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확실히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 탓이 크다. 아마 짧게 갔으면 똑같이 조급한 마음을 먹지 않았을까. 지금 그래서 행복한 상태인지 나한테 계속 묻고, 내 마음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5. 영상은 찍고 싶은데 이런 형태의 기록은 남겨놓고 싶다. (성공)



비 오는 날의 기록은 편집까지 마무리해서 유튜브와 브런치에 업로드해두었다. 포르투갈에서의 첫 요리 그리고 공원에서 행복했던 기록은 영상으로 찍어만 두고 아직 편집은 안 된 상태. 나머지 2개도 언젠간 편집하겠지-?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일기에서도 쓴 말이지만, 그래서 31일간의 유럽 여행의 가장 좋았던 점을 꼽자면 바로 이 것.


한 달 동안 정말 내 마음대로 살았고, 그래서 내 마음을 좀 더 온전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잘 먹고 잘 놀았으니까 이제 다시 열심히 돈을 벌 차례. 앞으로도 빚을 내서라도 열심히 여행 다니는 삶을 살고 싶다! 유럽 한 달 살기 끗!


태욱이의 유럽여행 돌아보기 끝!

매거진의 이전글 VANVES.7 (fi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