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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May 05. 2021

문득 떠오르는 마음의 구멍,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여행 갔던 사진들.

<노매드랜드>를 봤다. 목 아래에서 벅차오르는데 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였다. 그중에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주인공 펀이 밴을 끌고 하염없이 달리는 미국의 광활한 도로들이었다. 이 영화를 로드무비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로드무비라면 늘상 만나는 예의 그 장면이 왜 그리 새로워 보였는지.


미국 여행도 여러 차례 다녀봤고, 거기서 차를 끌어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 장면들은 나에게 미국이 아니라 아이슬란드를 떠올리게 했다.

MBC에서 6개월 정직 징계가 끝날 즈음, 문득 떠났던 아이슬란드. 돌아오면 끝날 줄 알았던 징계는 정직이 끝나자마자 바로 유배로, 거기서 다시 해고로 이어졌지만. 


아이슬란드는 24시간 낮을 즐길 수 있는 여름이 성수기지만, 오직 오로라를 보는 것이 목표였던 나는 비수기인 11월 말에 찾았다. 여름 성수기는 밤이 없어서 오로라도 볼 수 없으니까. 덕분에 오전 10시에 해가 떠서 오후 4시에 해가 지는, 동틀 녘과 노을이 금세 서로 마주하는 짧은 낮과 긴긴밤을 누렸다. 글을 쓰며,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며 오로라를 기다렸던 밤들.


30만 국민보다 관광을 위해 드나드는 외국인이 더 많다는 아이슬란드지만, 비수기 11월에는 저 적막한 도로에서 다른 차 하나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노매드랜드>를 보며 떠올렸던 아이슬란드의 풍경.


전방주시하기 어려운 풍경들이 자꾸 눈길을 사로잡지만, 어차피 까마득한 도로 위에 나 혼자 뿐인 데다, 도로를 벗어나도 이어지는 건 평원뿐이라 크게 문제는 없었다. 


나라 전체가 화산섬이라 곳곳에 폭포가 많다. 한국이었으면 이름깨나 날렸을 규모의 폭포들이 여기선 그냥 지천이다. 심지어 바람이 너무 강해서 어지간한 규모의 폭포가 아니면 바람에 폭포가 거꾸로 솟아오른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폭포가 하늘로 솟구친다고. 

혼자 떠난 여행자가 내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트라이포드는 필수다.

웃자란 나무 하나 없는 화산섬. 이끼와 화산탄으로만 이루어진 풍경이 끝이 없다. 그래서 더 아득하고 쓸쓸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더 문득문득 떠오르는 풍경들.


아직도 화산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지역에 가면 열기가 느껴지는 간헐천을 볼 수 있다. 도로변에 흐르는 물줄기에서부터 김이 펄펄 나면서 유황 냄새가 진동을 하고, 계란을 그대로 넣었다 꺼내 익혀 먹는 광경들.


확실히 신기한 광경이 좁은 곳에 모여 있어서 그런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한 번씩 폭발하며 솟구치는 간헐천을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과, 아빠 마음을 너무 잘 아는 사랑스런 아이까지.


해양성 기후는 날씨가 변덕스럽다. 눈 앞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바로 몇 걸음 넘어가면 해가 쨍쨍한 일도 부지기수. 마치 윤슬을 흩뿌리듯, 화창한 햇살이 빗방울에 부서지는 광경도 흔하다.


비구름이 잔뜩 비를 뿌리고 있는데, 바로 그 너머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비구름 뒤로 스미던 광경을 찍은 사진은 아이슬란드 여행사진전을 했을 때 가장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고 구매까지 해준 사진이었다. 


그리고 빙하, 오로라.

덧붙일 말이 없는. 형언하기 어려웠던.

오로라는 눈으로 좇기에도 황홀해서 카메라 세팅을 맞출 겨를이 없었다. 엉망으로 찍힌 사진들이 그날의 기억을 오히려 더 생생하게 불러일으킨다.


고요하고, 적막하고, 그래서 아득했던 아이슬란드.

일상이 요란해질 때마다 마음 구석에 뚫어놓은 구멍처럼 찬찬히 풍경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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