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요일, 오전에는 주중 한 번씩 주어지는 solo 타임 시간이다. 그야말로 혼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배고프다는 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주방으로 향했다. 제빵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윌이 1층 제빵실에서 보인다.
“윌~ 무슨 날이에요?”
“오늘은 빵 만드는 날이에요.”
“오늘은 목장에 안 나가나요?”
“네.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빵을 만들어요.”
Alt하우스에 사는 루스아저씨와 시내에서 여기까지 출퇴근하는 렉스라는 친구가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Orion하우스 1층 제빵실에서는 공동체 전체가 먹는 빵을 만든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Farmer’s Market에서 판매도 한다. 매일 오전이면 리더 1명과 장애인 몇 명이 짝을 이루어 빵을 만들고 있어서 민서가 자기도 빵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마침 잘 됐다.
“윌~ 혹시, 귀여운 학생 안 필요해요?”
“아... 누구요? 민서, 지민이요?”
“네~ 지금은 자유시간인데, 아이들이 하고 싶대요~”
“물론이죠.”
부리나케 아이들에게 옷을 입혀서 제빵실로 보냈다. 아이들에게는 여기 와서 하는 모든 작업들이 - 풀 뽑기, 청소, 설거지, 농사, 빵 만들기 - 모두 이벤트이다. 물론 아이들이 하기 싫다고 할 때도 꽤 있지만 말이다. 지민이가 하기 싫다고 때를 쓸 때면, 민서가 한 마디 한다.
“지민아. 우리는 여기서 다 공짜로 생활해~ 그러니까 우리도 할 일을 해야지!”
형 만한 아우 없다고 항상 민서가 동생을 달랜다.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좀 가져보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방문이 열린다.
“엄마.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여기서 뭐해요. 와서 봐야죠~”
“엄마. 나 피자 도우 만들었어요!”
첫날이라 둘 다 신이 났다. 온몸에 밀가루를 둘러쓰고 엄마를 데리러 왔다.
빵을 반죽해 놓고 10분 정도 기다리면 발효가 된단다. 반죽이 그릇 속에서 남산만큼 부풀려져 있다. 곁에 앉아 있으니 윌이 친절한 선생님이라는 것이 느껴진.
“자~ 지금부터 빵을 만들 거예요. 여기 저울을 세팅해 놓고 정확히 무게를 재서 나누어주세요. 민서가 한 번 해 볼래?”
“지민이도~ 지민이도”
“그래. 언니 먼저 하고 지민이 하자~!”
두 딸은 서로 하겠다고 난리이고 그 사이에서 윌이 중재를 잘해준다. 여러 가지 빵을 만드는데 빵 위에 표시를 해서 구분을 하고 있었다.
“Ray~ 민서는 내가 설명해주는 것을 잘 기억하고 따라 하는 것 같아요.”
윌이 민서를 칭찬해 준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더니 옆에 있던 렉스가 난리가 났다.
“Ray~ 나도 사진 좀 찍어줘요. 네.. 좋아요~”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매일 출퇴근을 하는 19살 렉스는 사진 찍기를 무척 좋아한단다. 아까 반죽을 할 때는 모두들 같이 하더니 빵을 만들기 시작하자 모두 가만히 앉아서 윌만 쳐다보고 있다. 렉스는 윌의 잔심부름만 겨우 하고, 루스는 바닥 쓸기만 하고 있다. 여기나 한국이나 장애인들의 특성은 비슷한 것 같다. 작은 것이라도 장애인들이 자기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도록 작업 배정을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오후에는 Morning하우스에서 저녁 공동식사에 먹을 피자를 만들어야 한단다. 오전에 우리가 만들었던 피자 도우를 챙겨서 Moring하우스에 첫 발걸음을 했다. 릭 아저씨가 재료가 어디에 있는 설명을 해 준다.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돼요. 조금 있다가 신디가 올 건데 그녀의 일은 당근 자르기예요.”
“집에 안 계시는 거예요? 저는 이 집이 처음이고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요.”
“다 할 수 있어요. 나는 오일을 사러 나갔다가 3시쯤 들어올 거예요.”
우리가 피자를 만든다니 아이들이 신이 났다. 돈을 내고 현장체험학습에서나 피자를 만드는데 이렇게 일하는 시간에 하게 되다니 말이다. 반면,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냉장고를 열어 재료들을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느껴진다. 피자 만들게 되었다고 즐거워하던 지민이가 얼마 안가 심심하다고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지민이를 달래고 꼬셔서 2시간의 작업을 마무리했다.
민서는 식탁에 앉아서 당근을 썰고 있는 신디를 보면서 신기해 한다. 신디는 60살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이다.
“엄마. 아직까지도 신디 당근 썰고 있는데요. 하하”
“그러게. 그게 신디의 일인가 보지~”
그래도 신디가 금요일 오후에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이 다행이다.
릭아저씨가 돌아왔다.
“Ray~ 아이들이 나사 박기 하는 거 함께 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너무 즐거워할 거예요.”
릭은 차를 고치고 있었다. 설명을 안 들었지만 그는 홈스테드의 총괄인 캐서린의 남편인 듯하다. 밖에서 트랙터를 몰거나 차를 고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옷이 온통 지저분하다. 앞 범퍼를 올릴 때, 타이어를 뺄 때, 나사를 조일 때마다 아이들에게 나사 박기를 해보라고 권유해준다.
“이것 봐요. 이 부분이 브레이크를 밟으면 만나는 지점인데, 오래돼서 이렇게 낡았어요.”
“아. 교체를 해야 하나 봐요~”
“Ray~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했죠?”
“네. 저는 사회복지사예요. 육아휴직을 얻어서 공동체에.........”
“나는 어릴 때, 뉴욕주 포켑시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인 캠프힐에서 자랐어요.”
“아. 그래요? 저도 캠프힐을 통해서 이곳을 알게 되었어요.”
대화를 하는 중에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릭이 한마디 한다.
“Ray~ 너무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말아요.”
릭의 말에 순간 당황해서 그냥 “네”라고 대답했다. ‘열심히 하는 게 나인걸요’라고 대답하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다. 하여튼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나 모르겠다. 여기 와서 영어 듣기 훈련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때가 많다. 빨리 얘기하면,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한 그 느낌이란... 릭의 마지막 그 한마디가 너무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