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르는 소 Oct 09. 2022

같은 말, 같은 글자 쓰는 사람

구르는 소는 아름답다 - 말과 글의 중요성

제주 본태박물관 전시관을 둘러보던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상여가 이렇게 생겼구나! 나 진짜 상여를 처음 봤어"

40대 후반인 사람이 상여를 처음 봤다니. 하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자랐으니 상갓집에서 나오는 상여를 볼 기회가 없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박물관에 안내된 남해 상여 안내글

저도 시골에 살면서 어렸을 때, 1~2번 정도 길거리를 지나가는 상여와 상여꾼들, 흰 옷을 입은 유가족들이 울면서 상여를 따라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지만, 나중에 우리 부모님 돌아가시면 나도 저렇게 상여를 메고 울면서 가야 하나라는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집에 돌아와서 중학생인 딸아이한테 물어봤습니다. 

"너 상여가 무엇인지 알아?"라고 했더니

"보너스 말하는 거지? 직장인들 일 잘하면 준다는 상여금!"라고 아는 체합니다. 


박물관에서 찍어온, 죽은 이를 위한 상여 사진을 보여줬더니

"이게 뭐야? 엄청 큰 가마 같네!" 라면서 신기해하네요. 

아빠 어릴 때에는 죽은 사람들을 상여라는 가마에 담아서 묘지까지 운반했다고 알려줬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상여를 본적은 당연히 없을 테고, 죽은 자를 위한 상여의 의미도 알지 못합니다. 

뭐 삐삐나 시티폰도 모르는데요. 너무 오래 전의 얘기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봐야 3~40년 전 이야기인데요.


사진으로 보여줬으니 제 딸아이는 이제 상여를 보너스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한 가마로도 이해할 겁니다.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은 동일한 문자를 활용하여 똑같은 정신과 문화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대를 모두 다 같이 느끼는 것이지요. 

지역적 혹은 시대적으로 조금씩 다르게 형성되기도 하겠지만, 말과 글자를 통해서 삶이 구성되고 오랜 기간 생활습관이 형성되면서 문화가 됩니다. 이게 사회가치가 되며 국가관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말과 글자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직장에서 채용업무를 진행하면서, 입사 1년 차 직원들을 면담한 적이 있습니다. 입사해서 무엇이 제일 힘들었냐 물었더니 대부분 인원들이 선배들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듣기가 제일 힘들었다고 얘길 했습니다. 

수습기간 동안 열심히 일한 신입들이 왜 그렇게 실수가 많았을까요? 알고 봤더니 기존 직원들의 언어를 알아듣기가 힘들었던 것이지요. 


보통 업종별, 회사별, 업무별로 그 조직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들과 관용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군대 가면 총기 스윕(총기 손질할 때 사용/sweep에서 차용된 단어), 지에무씨(군용 트럭 제조사 GMC에서 파생된 단어), 행보관(행정보급관), GP(경계 초소/Guard Post) 등 알아듣기 힘든 용어들을 바로 알아듣는 척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죠. 


갓 대학을 졸업한 이들에겐 탕비실(물을 끓이거나 그릇을 씻을 수 있도록 싱크대 등이 구비된 방), T/O(table of organization/인원 채용규모), 품의(업무 시작을 위해 결재권자에게 승인을 요하는 문서) 등의 단어가 무척 낯설겠지요. 

일반적인 용어대신 왜 저런 용어를 사용하는지, 딱히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도 곤란할 겁니다.  


제가 속한 NGO에서 자주 쓰는 PF(Picture Folder/후원받는 아이들 사진을 담은 기록카드), 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G/2000년 UN에서 채택한 국제 의제), CDP(Community Development Project/해외 지역개발사업장) 같은 영단어 약자 표시가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실개교(실제로 참여한 학교의 수), 지엔발(기관 약자인 GN과 자원봉사자를 뜻하는 Volunteer가 합쳐진 말) 등의 약자가 무얼 말하는지 잘 몰라서 회의나 업무지시 때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사회복지 비전공자들은 ct(클라이언트를 줄여서 쓰는 약어, 고객의 의미보다는 사회복지프로그램 수혜대상자를 지칭함)라는 단어를 이해하는데도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기존 직원들은 평소 쓰는 단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지만, 그 조직에 갓 들어온 이들에겐 외래어 같은 느낌이니 업무적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겠죠. 

그래서 신입직원들을 위해 조직에서 사용하던 기본적인 용어들을 모은 용어집을 개인적으로 만들어 신입직원들한테 나눠주었던 적이 있습니다. 도움이 되었던지, 그 신입들이 대리급이 되었을 때 사업부서별로 용어집을 공식적으로 만들어 보급하더군요. 


같은 말을 사용한다고 같은 조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말의 의미도 정확하게 같이 이해해야 내 동료가 되고 직장 후배가 되는 겁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되려면, 조직 내 같은 말을 똑같이 말하고 이해하면서 상호 간에 소통해야 회사가 안 망하고 성장합니다. 


사회가 성장하고 국가가 지속하려면, 

그 구성원들이 말의 역사성을 이해하고 똑같은 정체성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한글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다시는 한글날이 빨간 날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단군신화로 바라본 시민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